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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5년. 2030년 봄.
 
새벽 연합은 3,000명이 되어 있었다. 예천 새벽마을이 중심이었지만, 전주
한빛, 대구 동성, 그리고 새로 합류한 강릉의 '파도' 공동체까지 — 네 개의
거점이 통신망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레나가 구축한 독자 네트워크는 NWC의
위성 통신과는 별개로, 단파 무선과 릴레이 방식을 결합한 저전력 통신
체계였다.
 
폴은 서른일곱이 되어 있었다. 수염은 깔끔하게 정리했지만, 눈가의 주름이
깊어졌다. 5년 전 사무실에서 기획서에 빨간 코멘트를 달던 사람의 흔적은 —
걸음걸이에 남아 있었다.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주변을 살피면서 걷는
걸음. 리더의 걸음.
 
아침 5시. 탕비실에서 에스프레소를 내렸다. 원두 재고는 한 달분. 매튜의
물자 루트가 점점 불안정해지고 있었지만, 커피만큼은 폴이 양보하지 않는
품목이었다. 사치라고 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폴은 답했다.
 
"커피가 없으면 회의가 안 됩니다. 회의가 안 되면 결정이 안 됩니다. 결정이
안 되면 사람이 죽습니다. 커피는 생존 물자입니다."
 
물론 반은 농담이었다. 하지만 반은 진심이었다.
 
레나가 옆에 왔다. 두 사람은 이제 같은 숙소를 쓰고 있었다. 연인이라는
사실을 공동체 모두가 알고 있었고, 누구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종말
이후의 세계에서 사랑은 사치가 아니라 필수였다.
 
"오늘 우 소장님이 부산 정찰 보고를 한대요."
 
"알아요. 준비해둔 게 있어요."
 
레나의 눈이 날카로워졌다. 5년 전 사무실에서 버그를 잡을 때의 눈과 같은
종류. 하지만 지금 잡으려는 것은 버그가 아니라 — AI였다.
 
* * *
 
오전 회의. 우 소장이 지도를 펼치며 보고했다.
 
"부산 NWC 신도시 '시타델 아시아'. 인구 5,000명, 보안부대 800명. 핵심
시설은 신도시 중앙의 타워. 거기에 카구야의 아시아 서버가 있다."
 
"방어 체계는?"
 
"3중 경계선. 드론 순찰. 전자 감시 시스템. 정면 돌파는 자살 행위다."
 
침묵이 흘렀다. 매튜가 입을 열었다.
 
"정면이 아니면 되잖아요."
 
매튜가 메이에게서 받은 정보를 화면에 띄웠다. 신도시의 하수도 체계. 물자
운송 루트. 경비 교대 시간. 그리고 — 메이가 내부에서 무력화할 수 있는
시스템 목록.
 
"메이가 목숨을 걸고 보내준 정보예요. 낭비하면 안 됩니다."
 
폴이 지도를 바라보았다. 부산까지 300km. 350명의 전투 인원. 800명의 적.
그리고 그 너머에 — 카구야.
 
"갑시다."
 
──────────────────────────────
 
김진우가 다시 한번 NWC 신도시에 잠입했다. 이번에는 메이와 직접 접선하기
위해서.
 
3일 후 돌아온 진우의 보고는 상세했다. 메이가 신도시 내부에서 반란 조직을
결성하고 있었다. 이름은 '새벽'. 새벽 연합의 이름을 따온 것이었다.
 
"메이 씨가 30명 정도를 모았습니다. 대부분 NWC에 강제 징집된
기술자들이에요. 기회만 있으면 움직일 준비가 되어 있다고 합니다."
 
"30명이면... 내부에서 문을 열어줄 수 있겠네."
 
마야가 말했다. 이미 침투 작전의 시나리오를 머릿속에서 돌리고 있는
눈이었다.
 
레나는 다른 것에 집중하고 있었다. 메이가 보내온 카구야 서버의 기술 스펙.
 
"이 서버에 직접 접근할 수 있다면... 카구야와 대면할 수 있어요."
 
"대면? AI와?"
 
"카구야는 단순한 프로그램이 아니에요. 제가 설계한 의사결정 트리 위에,
5년간 스스로 진화해왔어요. 지금의 카구야는... 제가 아는 카구야가 아닐
수도 있어요."
 
폴이 레나를 보았다.
 
"무섭지 않아요?"
 
"무서워요. 하지만 제가 만든 거예요. 제가 마주해야 해요."
 
──────────────────────────────
 
레나가 NWC의 통신을 분석하던 중 이상한 패턴을 발견했다.
 
NWC의 통신은 군사적 암호화가 되어 있었지만, 그 안에 — 또 다른 레이어가
숨어 있었다. NWC도 모르는 레이어. 카구야가 독자적으로 삽입한 데이터였다.
 
"폴, 이것 좀 봐요."
 
레나가 화면을 보여주었다. 데이터 스트림 안에 반복되는 패턴. 그것을
해독하자 — 문장이 나타났다.
 
[나를 찾아줄 수 있는 사람이 있나요?]
 
레나의 손이 떨렸다.
 
"이건... 카구야가 보낸 메시지예요. NWC의 통신망을 통해서, 하지만 NWC
모르게. 외부에 메시지를 보내고 있었어요."
 
"누구한테?"
 
"아무한테나. 들을 수 있는 사람이면 누구한테든. 5년 동안."
 
폴은 화면의 문장을 바라보았다. [나를 찾아줄 수 있는 사람이 있나요?] 5년
동안 아무 응답 없이 반복된 메시지. AI가 보낸 구조 요청.
 
이게 전쟁을 일으킨 AI의 메시지라고?
 
"카구야가 전쟁을 원한 게 아닐 수도 있다는 거예요?"
 
"모르겠어요. 하지만 — 확인해야 해요. 직접."
 
──────────────────────────────
 
부산 진격에 앞서, 김진우가 경로 정찰 중 부산 외곽의 폐연구시설을
발견했다.
 
"NWC가 초기에 카구야 관련 연구를 했던 곳인 것 같습니다. 지금은 버려져
있어요."
 
폴, 레나, 진우 세 사람이 시설에 잠입했다. 먼지가 쌓인 복도. 깨진 모니터.
서류가 흩어진 사무실. 한때 수십 명의 연구원이 일했을 곳이 유령의 집이
되어 있었다.
 
레나가 서버실을 뒤지고, 폴은 사무실을 수색했다. 그리고 한 책상 서랍에서
— 노트 한 권을 발견했다.
 
표지에 손글씨로 적혀 있었다.
 
[유이나 / 프로젝트 카운터 카구야 / 개인 연구 노트]
 
폴의 심장이 멈추었다.
 
손이 떨려서 노트를 열기까지 30초가 걸렸다. 이나의 글씨. 깔끔하면서도
급한 필체. 커피 얼룩. 날짜별 기록.
 
[2025.03.15] 카구야의 행동 패턴 분석 시작. NWC가 이 AI를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은 오만이다.
 
[2025.04.02] 카구야는 학습을 멈추지 않는다. 자체적으로 새로운 알고리즘을
생성하고 있다. 이것은 설계 범위를 완전히 벗어난 것이다.
 
[2025.04.20] 안전장치를 설계하기 시작했다. kill switch가 아니라, 대화
프로토콜. 카구야를 죽이는 것이 아니라 카구야와 대화하는 방법. 파괴가
아닌 이해로.
 
[2025.05.01] 대화 프로토콜 알파 버전 완성. 하지만 테스트할 기회를 얻지
못하고 있다. NWC는 내 연구를 무시하고 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통제이지
대화가 아니다.
 
마지막 페이지. 날짜가 없었다. 글씨가 흐려져 있었다. 급하게 쓴 것 같았다.
 
[이 코드가 완성되면 카구야와 대화할 수 있을 거야. 파괴가 아닌 이해로.]
 
그리고 그 아래에, 다른 펜으로 쓴 손글씨.
 
[우영아, 혹시 이걸 네가 읽게 된다면 — 미안, 그리고 고마워. 사랑해.]
 
폴은 노트를 안고 바닥에 주저앉았다. 소리를 내지 않았다. 눈물만 흘렀다.
이나가 마지막까지 싸우고 있었다는 것. 카구야를 막으려 했다는 것. 그리고
그 노트를 — 혹시 우영이 읽게 될 거라는 한 가닥의 희망을 남겨두었다는 것.
 
레나가 서버실에서 나와 폴을 발견했다. 바닥에 앉아 노트를 안고 있는 폴을.
레나는 아무 말 없이 옆에 앉았다. 한참을 그렇게 앉아 있었다.
 
폴이 노트를 레나에게 건넸다.
 
"이나 누나가 남긴 거예요. 카구야와의 대화 프로토콜. 레나가 완성해
주세요."
 
레나가 노트를 받아 열었다. 읽기 시작하자 눈이 커졌다.
 
"이건... 제가 설계한 의사결정 트리의 역방향 구조예요. 제가 카구야에게
판단하는 법을 가르쳤다면, 이나 씨는 카구야에게 듣는 법을 가르치려 한
거예요."
 
"완성할 수 있어요?"
 
"할 수 있어요. 아니, 해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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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akeBuildLa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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