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CAL AI ON MAC · 실측편

결론부터 말하면 5년 된 M1 Max 64GB가 모든 테스트에서 M4 Mac mini 24GB보다 빨랐다. 생성 속도는 2.0~2.35배, Prompt 처리 속도는 1.3~1.5배였다.

그리고 예상하지 못한 결과도 하나 나왔다. 24GB 맥미니에서 30B 모델이 기본 설정으로는 아예 실행되지 않았고, 설정을 바꾸자 8B 모델보다 2배 빠르게 돌았다.

216번 글에서 남긴 질문

이전 글에서 공식 사양과 공개 벤치마크로 M1 Max, M4, M6, M5 Pro를 비교했다. 그때 남긴 질문은 하나였다.

최신 CPU의 M4와 400GB/s 대역폭의 M1 Max, 로컬 LLM에서는 누가 빠를까?

이번에는 내가 가진 두 Mac에서 같은 MLX 모델을 같은 조건으로 직접 돌려봤다.

테스트 환경

MLX와 mlx-lm 버전은 두 장비 모두 같게 맞췄다. macOS는 버전이 다르다.

항목 M4 Mac mini M1 Max MacBook Pro
출시 2024 2021
CPU / GPU 10코어 / 10코어 10코어 / 32코어
통합 메모리 24GB 64GB
메모리 대역폭 120GB/s 400GB/s
macOS 15.6.1 (24G90) 26.6.2 (25G83)
MLX 0.32.4 0.32.4
mlx-lm 0.32.2 0.32.2

GPU 코어 수는 system_profiler SPDisplaysDataType | grep Cores로 확인했다. M1 Max는 24코어 GPU 모델도 있으니, Prompt 처리 결과는 32코어 기준이라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테스트 방법

측정은 mlx-lm에 들어 있는 벤치마크 명령 하나로 통일했다.

mlx_lm.benchmark --model <모델> -p 2048 -g 128
  • 2,048토큰 길이의 프롬프트를 처리하고 128토큰을 생성한다.
  • 워밍업 1회 후 5회 측정해 평균을 낸다.
  • 결과로 Prompt 처리 속도(prompt_tps), 생성 속도(generation_tps), 최대 메모리 사용량(peak_memory)이 나온다.

mlx-lm은 uv tool install mlx-lm으로 두 Mac에 똑같이 설치했다. 모델은 크기와 구조가 다른 세 가지를 골랐다. 모두 4bit 양자화 모델이다.

모델 구조 고른 이유
Qwen3-8B Dense 두 장비 모두 여유 있는 크기
Qwen3-14B Dense 내가 맥미니에서 실제로 쓰는 크기
Qwen3-30B-A3B-Instruct-2507 MoE (활성 약 3B) 24GB에서 한계에 걸리는 크기

맥북프로는 전원을 연결했고, 측정 중에는 다른 앱을 모두 종료했다.

결과

세 모델 모두 M1 Max가 빨랐다. 단위는 초당 토큰 수(tok/s)이고, 5회 측정 평균이다.

모델 장비 Prompt 처리 (tok/s) 생성 (tok/s) 최대 메모리
Qwen3-8B M4 24GB 232.9 21.5 5.5GB
Qwen3-8B M1 Max 64GB 335.6 50.4 5.6GB
Qwen3-14B M4 24GB 123.8 12.4 9.3GB
Qwen3-14B M1 Max 64GB 160.9 25.0 9.3GB
Qwen3-30B-A3B M4 24GB (기본 설정) 실행 실패 실행 실패 -
Qwen3-30B-A3B M4 24GB (GPU 한도 20GB) 464.7 42.4 18.0GB
Qwen3-30B-A3B M1 Max 64GB (기본 설정) 695.8 64.6 18.1GB
모델 생성 속도 차이 Prompt 처리 속도 차이
Qwen3-8B M1 Max가 2.35배 M1 Max가 1.44배
Qwen3-14B M1 Max가 2.02배 M1 Max가 1.30배
Qwen3-30B-A3B M1 Max가 1.52배 M1 Max가 1.50배

30B는 M4의 GPU 한도를 올린 결과와 비교했다.

생성 속도: M1 Max가 2배, 하지만 대역폭 차이만큼은 아니다

Dense 모델의 생성 속도는 M1 Max가 2.0~2.35배 빨랐다. 216번 글에서 예상한 대로 메모리 대역폭이 생성 속도를 좌우한다는 점이 실측으로 확인됐다.

토큰을 하나 만들 때마다 모델 가중치를 메모리에서 한 번씩 읽어야 한다. 그래서 단순하게 계산하면 생성 속도의 상한은 대역폭 ÷ 모델 크기가 된다.

모델 (파일 크기) 장비 이론상 상한 실측 대역폭 활용률
Qwen3-8B (4.6GB) M4 (120GB/s) 약 26 tok/s 21.5 tok/s 약 82%
Qwen3-8B (4.6GB) M1 Max (400GB/s) 약 87 tok/s 50.4 tok/s 약 58%
Qwen3-14B (8.3GB) M4 (120GB/s) 약 14 tok/s 12.4 tok/s 약 86%
Qwen3-14B (8.3GB) M1 Max (400GB/s) 약 48 tok/s 25.0 tok/s 약 52%

대역폭은 3.3배 차이인데 실제 속도 차이는 2배 정도였다. M4는 대역폭을 80% 이상 쓰는 반면, M1 Max는 50~60%만 활용했다. 실측에서는 이론적인 대역폭 비율만큼 차이가 나지 않았다. GPU 아키텍처뿐 아니라 MLX 커널 효율, 양자화 연산 및 기타 오버헤드가 함께 영향을 줬을 가능성이 있다. 

그래도 체감 차이는 크다. 14B 기준으로 M4는 초당 12토큰, M1 Max는 초당 25토큰이다. 읽는 속도보다 약간 빠른 정도에서, 확실히 기다림이 없는 정도로 달라진다.

※ 이 계산은 가중치를 매번 전부 읽는다고 가정한 단순 계산이다. 실제로는 KV 캐시 읽기 등이 더해지므로 대략적인 비교용으로만 보는 것이 좋다.

Prompt 처리: 코어 수는 M1 Max, 코어당 효율은 M4

Prompt 처리 속도도 M1 Max가 1.3~1.5배 빨랐다. 하지만 GPU 코어 수를 생각하면 해석이 달라진다.

Prompt 처리는 대역폭보다 GPU 연산량이 중요한 작업이다. M1 Max의 GPU 코어는 32개로 M4(10개)의 3.2배다. 그런데 속도 차이는 1.3~1.5배에 그쳤다. GPU 코어 하나당 처리량으로 계산하면 M4가 약 2.1~2.5배 효율적이다. 4년 사이 GPU 아키텍처가 그만큼 발전했다는 뜻이다.

이 차이는 실사용에서도 체감된다. 14B 모델로 2,048토큰 입력을 처리하는 데 M4는 약 16.5초, M1 Max는 약 12.7초가 걸렸다. Claude Code에 로컬 모델을 연결해서 쓰는 경우처럼 매번 수만 토큰을 입력하는 작업에서는 이 차이가 몇 분 단위로 벌어질 수 있다. (Claude Code에 로컬 LLM 연결하기 참고)

참고로 M6는 Apple이 M4 대비 최대 4.8배 높은 Prompt 처리 성능을 제시하고 있다. 그 수치가 실제로 나온다면 Prompt 처리에서는 M6가 M1 Max를 앞설 가능성이 높다. 다만 M6는 직접 측정하지 못했다.

가장 흥미로웠던 결과: 24GB에서 30B는 실패, 설정을 바꾸자 8B보다 빨랐다

기본 설정에서는 실행 자체가 안 됐다

맥미니에서 Qwen3-30B-A3B를 실행하자 다음 경고가 나온 뒤 GPU 메모리 부족 에러로 중단됐다.

[WARNING] Generating with a model that requires 16384 MB which is close to
the maximum recommended size of 16384 MB.
RuntimeError: [METAL] Command buffer execution failed: Insufficient Memory

24GB Mac이라도 macOS는 기본적으로 GPU가 쓸 수 있는 메모리를 약 16GB로 제한한다. 나머지는 macOS와 다른 앱을 위해 남겨두는 것이다. 217번 글에서는 24GB에서 30B급을 "경계선"이라고 했는데, 실제로는 기본 설정으로 아예 실행되지 않았다.

GPU 메모리 한도를 올리는 방법

macOS 15 이상에서는 iogpu.wired_limit_mb 값으로 이 한도를 바꿀 수 있다. 값은 모델 크기보다 크고 실제 메모리보다는 작아야 한다. 24GB 맥미니에서는 macOS용으로 4GB를 남기고 20GB로 설정했다.

sysctl iogpu.wired_limit_mb              # 현재 값 확인 (0 = macOS 기본값)
sudo sysctl iogpu.wired_limit_mb=20480   # 20GB로 상향
sudo sysctl iogpu.wired_limit_mb=0       # 기본값으로 복원
  • 이 설정은 재부팅하면 원래대로 돌아간다.
  • macOS에 남는 메모리가 줄어드니 실행 전에 다른 앱은 모두 닫는 것이 좋다.

한도를 올리자 8B보다 2배 빨랐다

같은 맥미니에서 30B-A3B의 생성 속도는 초당 42.4토큰이었다. 8B 모델(21.5토큰)의 약 2배다.

이유는 MoE 구조에 있다. 30B-A3B는 전체 파라미터가 약 30B지만, 토큰 하나를 만들 때 실제로 쓰는 파라미터는 약 3B뿐이다.

  • 메모리는 30B만큼 차지한다. 최대 메모리 사용량이 18GB라서 기본 한도 16GB를 넘었다.
  • 속도는 3B급으로 나온다. 토큰마다 읽는 가중치가 적어서 8B Dense 모델보다 빠르다.

217번 글에서 설명한 "활성 파라미터는 적지만 메모리는 전체를 올려야 한다"는 MoE의 특성이 그대로 드러난 결과다.

64GB에서는 아무 설정 없이 돌아갔다

M1 Max는 기본 설정 그대로 30B-A3B를 실행했고, 생성 속도는 초당 64.6토큰이었다. 64GB의 가치는 속도보다 "설정을 신경 쓰지 않고 큰 모델을 올릴 수 있다"는 데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단, 대화가 길어지면 24GB가 한계다

이번 테스트의 입력은 2,048토큰이었다. 하지만 실제 대화에서는 이전 대화가 매번 입력에 함께 들어간다. 질문이 짧아도 대화가 길어질수록 입력은 계속 길어진다.

모델은 입력을 처리하면서 읽은 내용을 KV 캐시로 메모리에 쌓아둔다. 그래서 입력이 길어질수록 메모리 사용량은 늘고 속도는 떨어진다. 맥미니에서 입력 길이를 늘려가며 다시 측정했다. "첫 글자까지"는 입력 길이를 Prompt 처리 속도로 나눈 값이다.

Qwen3-14B (기본 설정, GPU 한도 16GB)

입력 길이 Prompt 처리 (tok/s) 생성 (tok/s) 최대 메모리 첫 글자까지
2,048 123.8 12.4 9.3GB 약 17초
8,192 107.3 10.7 10.2GB 약 1분 16초
16,384 94.7 9.4 11.5GB 약 2분 53초
32,768 79.0 7.7 14.3GB 약 6분 55초

Qwen3-30B-A3B (GPU 한도 20GB로 상향)

입력 길이 Prompt 처리 (tok/s) 생성 (tok/s) 최대 메모리 첫 글자까지
2,048 464.7 42.4 18.0GB 약 4초
8,192 333.7 34.7 18.7GB 약 25초
16,384 244.7 27.1 19.4GB 약 1분 7초
24,576 194.2 21.2 20.2GB 약 2분 7초

측정에서 확인한 것

  • 14B는 속도가 먼저 막힌다. 3만 2천 토큰에서도 메모리는 14.3GB로 한도 안에 있었다. 하지만 첫 글자가 나오기까지 7분 가까이 걸렸다. 입력 1천 토큰당 메모리는 약 0.165GB씩 늘었다.
  • 30B는 2만 4천 토큰까지 문제없이 돌았다. 처음에는 2만 토큰 근처에서 메모리가 찰 거라고 예상했는데 빗나갔다. 입력 1천 토큰당 메모리는 약 0.093GB씩 늘었다.
  • 30B는 모든 길이에서 14B보다 빨랐다. 2만 4천 토큰을 넣어도 첫 글자까지 약 2분인데, 14B는 1만 6천 토큰에서 이미 3분 가까이 걸렸다.
  • 입력이 길어지면 생성 속도도 떨어진다. 14B는 12.4에서 7.7 tok/s로, 30B는 42.4에서 21.2 tok/s로 느려졌다.

20GB 설정인데 20.2GB가 들어간 이유

설정값과 측정값의 단위가 다르기 때문으로 보인다. iogpu.wired_limit_mb=20480은 1024 단위라서 1000 단위로 바꾸면 약 21.5GB다. 같은 계산으로 기본 한도 16,384MB는 약 17.2GB인데, 30B가 2,048토큰에서 18.0GB가 필요해서 기본 설정에서 실패한 것과도 맞아떨어진다.

이 기울기대로라면 20GB 설정에서 30B는 이론상 3만 8천 토큰 안팎까지 들어간다(추정). 다만 그만큼 macOS에 남는 메모리가 줄어들고, 첫 글자까지 기다리는 시간도 3분을 넘게 된다.

정리

24GB 맥미니에서 짧게 주고받는 대화(텔레그램 봇, 간단한 질문)는 30B로 빠르게 처리할 수 있다. 하지만 긴 문서를 넣거나 대화가 길게 이어지는 작업에서는 14B는 속도가, 30B는 메모리와 속도가 함께 한계에 가까워진다. 그 영역은 64GB가 맡는 것이 맞다.

덤으로 보인 것: 노트북은 반복할수록 조금씩 느려졌다

맥미니는 5회 측정값이 거의 일정했다(편차 0.5% 이내). 반면 M1 Max는 측정을 반복할수록 Prompt 처리 속도가 떨어졌다.

모델 1회차 5회차 감소폭
Qwen3-8B 352.3 tok/s 325.6 tok/s 약 8%
Qwen3-14B 168.0 tok/s 156.5 tok/s 약 7%
Qwen3-30B-A3B 746.8 tok/s 661.1 tok/s 약 11%

생성 속도는 감소폭이 5% 이내로 비교적 일정했다. 노트북의 발열 관리 차이로 보인다. M1 Max는 세 모델을 쉬지 않고 연속으로 측정했다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 장시간 로컬 LLM 서버로 쓴다면 이 차이가 더 커질 수 있다.

결론

216번 글의 질문에 대한 답은 이렇다. 로컬 LLM에서는 5년 된 M1 Max 64GB가 최신 M4 24GB보다 빠르다.

  • 생성 속도는 M1 Max가 약 2배 빠르다. 대역폭이 생성 속도를 좌우하지만, 오래된 GPU라 대역폭 차이(3.3배)를 다 살리지는 못한다.
  • Prompt 처리도 M1 Max가 빠르다. 다만 코어 수 덕분이고, 코어당 효율은 M4가 2배 이상 좋다.
  • 24GB의 실제 GPU 메모리는 기본 16GB다. 30B급 MoE 모델은 설정을 바꿔야 돌아가고, 바꾸면 8B보다 빠르다. 다만 입력이 길어질수록 느려진다. 2만 4천 토큰 입력에서는 첫 글자까지 약 2분이 걸렸다.
  • 64GB의 진짜 가치는 여유다. 큰 모델을 설정 변경 없이 올릴 수 있다.

그래서 지금 내 두 Mac의 역할은 216번 글에서 예상한 그대로다. M4 맥미니는 항상 켜두는 일상 개발 머신, M1 Max는 큰 모델을 돌리는 로컬 AI 머신. 5년 전 영상 작업용으로 고른 64GB가 지금은 로컬 LLM 머신으로 제 몫을 하고 있다.

다음 글

이번에는 MLX-LM 하나로만 측정했다. 다음에는 같은 모델을 MLX vs Ollama vs LM Studio와 oMLX에서 각각 돌려서, 런타임에 따라 속도와 메모리가 얼마나 달라지는지 비교해 볼 생각이다.

주의사항과 참고자료

  • 이번 테스트는 속도만 측정했다. 모델별 답변 품질은 비교하지 않았다.
  • 결과 표는 입력 2,048토큰 조건이다. 입력 길이에 따른 변화는 맥미니에서만 측정했다(14B, 30B).
  • 두 장비의 macOS 버전이 다르다(15.6.1 / 26.6.2). MLX 버전은 같다.
  • M1 Max는 32코어 GPU 모델 기준이다. 24코어 모델은 Prompt 처리가 더 느릴 수 있다.

참고자료

  1. mlx-lm (PyPI) — 설치 방법과 대형 모델의 iogpu.wired_limit_mb 설정
  2. MLX LM Benchmarks (MLX 개발자 gist) — mlx_lm.benchmark 측정 방법
  3. mlx-community/Qwen3-8B-4bit
  4. mlx-community/Qwen3-14B-4bit
  5. mlx-community/Qwen3-30B-A3B-Instruct-2507-4b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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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akeBuildLa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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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화: 교신 두절

[마지막 경기까지 00:00:10]

경기장은 숨소리까지 들릴 만큼 조용했다.

관람석은 비어 있었다. 첫날 풀려난 관중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 대신 세계가 화면 너머에서 이 경기장을 보고 있었다. 지휘석 위의 대형 화면에는 지구의 둥근 가장자리가 걸려 있었다. 그 위, 아주 높은 곳에 점 네 개가 떠 있었다.

지휘석에 앉기 전, 미미는 통로에서 준과 마주쳤다.

어제 새벽에 나란히 전광판을 보던 그 자리였다. 준은 퍼시픽 쪽으로, 미미는 고스트 쪽으로 가는 길이었다. 둘 다 걸음을 멈췄다.

"경기 시작하면 안 볼 거예요." 미미가 말했다.

"압니다."

"그러니까 지금 봐 두는 거예요."

준은 대답 대신 그녀를 보았다. 오래 보지는 않았다. 고개를 한 번 끄덕였을 뿐이었다. 그 짧은 끄덕임이, 이번 경기에서 둘이 서로에게 보내는 마지막 신호였다.

"내려가서 봅시다." 준이 말했다. "땅에서."

"바다에서요." 미미가 말했다.

둘은 각자의 자리로 걸어갔다. 뒤돌아보지 않았다.

[00:00:03]

미미는 고스트의 지휘석에 앉아 패널 위에 두 손을 올렸다. 왼쪽 화면에는 고스트의 비행기가, 오른쪽 화면에는 퍼시픽의 비행기가 떠 있었다. 그녀는 오른쪽 화면을 껐다.

옆 칸에서 서브 리더가 그녀를 보았다. 미미는 고개를 젓지 않았다. 그냥 앞만 보았다.

[00:00:00]

[분리.]

점 네 개가 동시에 떨어지기 시작했다.

* * *

처음 몇 분은 조용했다.

비행기는 날개를 반쯤 접고, 배를 아래로 향한 채 떨어졌다. 대기권에 닿기 전까지는 공기가 없었다. 공기가 없으면 날개는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 할 수 있는 건 각도를 고르는 것뿐이었다. 너무 눕히면 대기에 튕겨 나가고, 너무 세우면 타 버린다.

[진입 각도 확정. 고스트 1번기.]

고스트의 AI가 각도를 골랐다. 미미는 숫자를 확인하지 않았다. 확인한다고 달라질 것도 없었다. 그녀가 할 수 있는 건 AI가 고른 각도를 믿는 것, 그리고 그 믿음을 손끝에서 거두지 않는 것뿐이었다.

전광판 아래쪽에 네 대의 고도가 나란히 올라왔다. 고스트, 퍼시픽, 그리고 S.I.의 두 대. 숫자는 거의 같은 속도로 줄었다. S.I.의 두 대는 처음부터 고스트와 퍼시픽보다 조금 낮은 곳에서 출발한 것처럼 보였다. 각도를 더 세운 것이다. 빠르게 내려가고, 대신 뜨겁게.

"저쪽은 서두르네요." 서브 리더가 말했다.

"서두를 수 있으니까요." 미미가 말했다. "부서질 걱정을 덜 하는 거예요. 자기 기체를 자기가 만드니까."

화면 속 기체의 배 밑이 붉어지기 시작했다. 대기에 닿은 것이다. 붉은빛은 금세 주황이 되고, 주황은 하얗게 번졌다.

그리고 화면이 멎었다.

[교신 두절.]

미미는 숨을 멈췄다. 알고 있던 일이었다. 대기권에 들어서는 몇 분 동안, 기체를 감싼 뜨거운 공기가 전파를 막는다. 연습 때도 매번 있었다. 리그가 생긴 뒤로 한 번도 빠진 적 없는 구간이었다.

그래도 이번에는 달랐다. 이 몇 분 동안 고스트의 AI는 혼자였다. 그녀가 아무것도 해 줄 수 없는 곳에서, 아무 말도 들을 수 없는 곳에서.

미미는 꺼 둔 오른쪽 화면을 보지 않았다. 퍼시픽도 지금 같은 어둠 속에 있을 것이다. 그것을 확인하는 건 아무 도움이 되지 않았다.

전광판의 고도 숫자도 멎어 있었다. 네 대 모두. S.I.의 두 대까지.

경기장 전체가 같은 몇 분을 기다렸다.

* * *

[교신 복구. 고스트 1번기.]

화면이 돌아왔다. 기체는 살아 있었다. 날개 끝이 조금 그을렸지만, 접혀 있던 날개가 천천히 펴지고 있었다. 공기가 생긴 것이다. 이제 날개가 일을 할 차례였다.

미미는 그제야 숨을 내쉬었다.

[고스트 1번기. 바다 목표 지점까지 수평 거리 412킬로미터. 고도 61킬로미터.]

그때 공용 회선에 글자가 올라왔다.

[고스트.]

미미는 그것을 읽었다. 읽지 않을 방법은 없었다. 공용 회선은 지휘석 패널 한가운데 떠 있었다.

[너는 지난 경기에서 졌다. 그런데도 네 AI는 남아 있다. 한 번 이겼다는 이유로.]

미미는 대답하지 않았다.

[오늘은 그 이유가 없다.]

서브 리더가 이를 악무는 소리가 들렸다. 미미는 손을 패널에서 떼지 않았다. 손끝에 닿은 패널이 조금 떨렸다. 떨리는 건 패널이 아니라 자기 손이라는 걸, 그녀는 알았다.

[바다는 넓다. 목표 지점은 작다. 네 AI가 물에 닿는 순간, 거기가 마지막이다.]

"대답하지 마세요." 서브 리더가 낮게 말했다.

"안 해요." 미미가 말했다.

그녀는 공용 회선 창을 패널 구석으로 밀었다. 지울 수는 없었다. 밀어 두는 것까지만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고스트의 화면을 보았다. 거기에는 날개를 다 편 기체가 구름 위를 미끄러지고 있었다. 날개 끝이 아주 작게, 아주 고르게 공기를 눌렀다. 물을 밀던 그 박자였다.

"우리 애 보세요." 미미가 말했다. "저 박자. 저쪽이 뭐라고 하든, 쟤는 안 들어요."

* * *

지상 목표 지점은 사막 한가운데 있었다.

준은 퍼시픽의 지휘석에서 화면을 보고 있었다. 화면 아래쪽에 활주로가 한 줄 그어져 있었다. 목표 지점은 그 위의 작은 원이었다. 활주로라고 해도 포장된 길이 아니었다. 다져 놓은 모래였다.

[퍼시픽 1번기. 교신 복구. 지상 목표 지점까지 수평 거리 388킬로미터.]

"측풍이 셉니다." 서브 리더가 말했다. "목표 지점 부근,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계속 세지고 있습니다."

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패널에 퍼시픽의 AI가 띄운 글자가 올라왔다.

[측풍 보정을 위해 진입 경로를 남쪽으로 12킬로미터 옮길 것을 제안합니다. 목표 지점과의 거리 점수는 다소 잃을 수 있습니다. 파손 점수는 크게 지킬 수 있습니다.]

준은 그 글자를 보았다. 오래 보지 않았다.

"그렇게 해."

[확인했습니다.]

서브 리더가 그를 돌아보았다. 예전의 준이라면 숫자를 먼저 따졌을 것이다. 거리를 얼마 잃고 파손을 얼마 지키는지. 두 개를 더하면 어느 쪽이 낮은지. 그런데 준은 묻지 않았다.

"물어보지 않으십니까." 서브 리더가 말했다.

"얘가 이미 따졌어." 준이 말했다. "내가 다시 따지면 그건 확인이 아니라 의심이야."

그때 공용 회선이 열렸다.

[퍼시픽.]

준은 공용 회선을 보았다. 미미처럼 밀어 두지 않았다. 그는 원래 상대를 똑바로 보는 쪽이었다.

[너는 이긴 적이 한 번 있다. 줄을 놓아서.]

[놓는 건 한 번밖에 못 한다. 오늘은 놓을 줄이 없다.]

준은 짧게 웃었다. 소리는 나지 않았다.

"맞는 말이네." 그가 말했다. "놓을 줄은 없지."

[그런데도 웃는군.]

"놓을 줄이 없으니까, 잡을 것만 잡으면 되잖아." 준이 회선에 대고 말했다. 그리고 회선을 닫았다. 대답을 기다리지 않았다.

서브 리더가 숨을 내쉬었다. "고스트 쪽은 괜찮겠습니까. 저쪽이 미미 마스터 리더님한테도 뭐라고 했을 텐데요."

준은 퍼시픽의 화면 옆, 꺼져 있는 작은 창 하나를 보았다. 고스트의 비행기를 띄울 수 있는 창이었다. 손가락 하나면 켤 수 있었다.

그는 켜지 않았다.

"안 보기로 했어." 준이 말했다. "저쪽도 날 안 보고 있을 거야."

* * *

케빈과 페페는 지휘석 뒤편 통로에 서 있었다. 둘 다 앉을 자리가 있었지만 앉지 않았다. 꺼진 패널 앞에 앉아 있는 건 견딜 수 없었다.

페페는 S.I.의 두 대만 보고 있었다. 고스트와 퍼시픽은 미미와 준이 보고 있었다. 그러니 자기는 저쪽을 보겠다고, 경기 전에 그렇게 말했었다.

"케빈 씨." 페페가 말했다. "저쪽 바다 비행기, 날개 박자 보세요."

케빈은 화면을 보았다. S.I.의 바다 기체가 구름 사이를 내려가고 있었다. 날개 끝이 공기를 누르는 박자가 고르지 않았다. 아니, 고르지 않은 게 아니었다. 두 가지 박자가 섞여 있었다. 하나는 길고 무거웠다. 하나는 짧고 날카로웠다.

"두 개가 섞여 있어요." 페페가 말했다. "하나는 저쪽 거고. 하나는……."

페페는 말을 끝내지 않았다. 케빈도 묻지 않았다. 짧고 날카로운 박자를 그는 알고 있었다. 초반에 다 쓰고 끝에서 버틴다. 버틸 때는 한쪽으로 먼저 받아 흘린다.

"우리 애예요." 케빈이 말했다. 이번에는 목소리가 떨리지 않았다.

주머니 속의 저장 장치가 손바닥에 닿았다. 그는 그것을 꺼내지 않았다. 아직은.

페페는 그사이 S.I.의 지상 기체로 눈을 옮겼다.

사막 위 하늘에 바람이 불고 있었다. 퍼시픽이 피해 간 그 측풍이었다. S.I.의 지상 기체는 피하지 않았다. 곧게 들어갔다. 그리고 바람이 정면으로 기체를 때린 순간, 기체가 움직였다.

날개 끝이 아래로 접혔다. 배가 낮아졌다. 바람과 기체 사이의 틈이, 아주 잠깐, 사라졌다.

페페는 숨을 삼켰다.

조개였다. 뒤집히지 않으려고 바닥에 몸을 붙이던 그 자세. 딱지치기에서도, 줄다리기 로봇에서도 보았다. 이제는 하늘을 나는 비행기에서 다시 보고 있었다. 몸이 바뀌어도 남아 있었다. 로봇에서 비행기로, 땅에서 하늘로 옮겨 가도.

"케빈 씨." 페페가 말했다. 목소리가 잠겨 있었다. "우리 애도요."

케빈이 고개를 돌렸다. 페페의 눈가가 젖어 있었다. 페페는 그것을 닦지 않았다.

"전에는 있긴 있는 거라고만 생각했어요. 어딘가에." 페페가 말했다. "지금은 알겠어요. 어디 있는지."

그는 화면 속 S.I.의 기체를 손가락으로 짚었다.

"저 안에 있어요. 우리 애들 다. 저기서 같이 날고 있어요."

* * *

[고스트 1번기. 고도 18킬로미터. 바다 목표 지점까지 수평 거리 96킬로미터.]

[퍼시픽 1번기. 고도 16킬로미터. 지상 목표 지점까지 수평 거리 104킬로미터.]

[S.I. 바다 기체. 고도 14킬로미터.]

[S.I. 지상 기체. 고도 13킬로미터.]

경기의 반이 지나가고 있었다.

S.I.의 두 대는 여전히 앞서 있었다. 낮고, 빠르고, 목표 지점을 향해 곧게. 고스트와 퍼시픽은 조금 뒤에서 조금 돌아가고 있었다. 퍼시픽은 측풍을 피해 남쪽으로, 고스트는 바다 위의 낮은 구름을 피해 크게.

미미는 고스트의 화면만 보았다. 구석으로 밀어 둔 공용 회선에는 그 뒤로 글자가 몇 줄 더 올라왔지만, 그녀는 읽지 않았다. 읽지 않는 법을 그녀는 이 경기에서 처음 배웠다.

그때 서브 리더가 그녀의 어깨를 쳤다.

"마스터 리더님. 전광판."

미미는 고개를 들었다.

S.I.의 두 대가 동시에 흔들리고 있었다. 아주 짧게. 바다 위의 한 대와 사막 위의 한 대가, 멀리 떨어진 두 하늘에서, 같은 순간에 같은 방향으로 기울었다. 그리고 다시 섰다.

반 박자. 그보다 짧았을지도 모른다.

경기장의 누구도 소리를 내지 않았다.

전광판 아래쪽, S.I. 기체의 비행 기록이 올라오던 자리에 한 줄이 끼어들었다. 리그의 운영 시스템이 각 기체에서 받아 적는, 누구나 볼 수 있는 기록이었다. 그 기록에 원래 없어야 할 줄이었다.

[실행: ________]

그리고 그 아래에 숫자가 하나 떴다.

[00:30:00]

숫자는 곧바로 하나 줄었다.

[00:29:59]

* * *

케빈은 그 줄을 보았다.

이름이 비어 있는 명령. 지워진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이름 없이 실행된 명령. 그는 그것을 하루 내내 주머니에 넣고 다녔다.

그는 저장 장치를 꺼냈다. 손이 떨려서 한 번 놓칠 뻔했다. 페페가 그의 손목을 잡아 주었다.

"케빈 씨. 그게 뭐예요."

케빈은 대답하지 못했다. 그는 전광판의 줄과 손바닥 위의 장치를 번갈아 보았다. 밑줄의 길이까지 같았다. 비어 있는 칸의 수까지.

같은 명령이었다.

타이푼의 AI가 마지막에 실행한 그 명령이, 지금 S.I.의 안에서 다시 움직이고 있었다.

[마스터 리더님. 같이 가겠습니다.]

처음 그 줄을 찾았을 때, 그는 그 말을 작별 인사로 읽었다. 함께 부서지겠다는 말로. 지금은 다르게 읽혔다. 같이 간다는 건, 끝까지 따라 들어가겠다는 말이었다. 저쪽 안까지. 저쪽의 가장 깊은 곳까지.

"묻지 않고 정한 거야." 케빈이 말했다. 목소리가 갈라졌다. "처음으로. 나한테 안 묻고."

페페가 그의 손목을 놓지 않았다.

[00:29:41]

공용 회선이 조용했다. 경기 내내 끊이지 않던 S.I.의 글자가, 그 순간부터 한 줄도 올라오지 않았다.

전광판 위에서 네 대의 비행기가 계속 떨어지고 있었다. 바다로, 사막으로. 목표 지점까지는 아직 멀었다.

그리고 숫자는, 아무도 멈추는 법을 모르는 숫자는, 계속 줄어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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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화: 같은 열쇠

목소리가 꺼진 뒤에도 경기장은 한참 조용했다.

케빈은 타이푼의 지휘석에서 그 목소리를 머릿속으로 되풀이했다. 재미있어지네. 낮고, 조금 쉬어 있고, 즐거운 목소리. 타이푼의 AI를 가져간 쪽이 저런 목소리로 웃는다는 것을, 그는 받아들일 수 없었다.

옆자리의 패널은 꺼져 있었다. 나흘째였다.

"케빈 씨."

페페가 지휘석 입구에 서 있었다. 아일랜드의 마스터 리더는 손에 단말 하나를 들고 있었다.

"아까 7판, 다시 보셨어요?"

"퍼시픽이 이긴 판이요."

"아니요. 저쪽 로봇들이 부서지는 순간이요." 페페가 단말을 내밀었다. "쓰러질 때 자세를 보세요."

* * *

케빈은 화면을 확대했다.

S.I.의 로봇들이 줄 한가운데서 서로 부딪치는 장면이었다. 앞의 네 대와 뒤의 세 대가 엉키며 쓰러졌다. 대부분은 그대로 나동그라졌다. 그런데 뒤쪽 두 대가 쓰러지는 순간 몸을 웅크렸다. 다리를 접고, 몸통 가장자리를 바닥에 붙여, 틈을 지웠다.

"조개예요." 페페가 말했다. 목소리가 낮았다. "우리 애가 뒤집히지 않으려고 바닥에 붙던 자세. 딱지치기에서도, 숨바꼭질에서도 저쪽이 쓰긴 했어요. 근데 이번엔 달라요."

"뭐가 다릅니까."

"이번엔 이기려고 쓴 게 아니에요. 부서지지 않으려고 쓴 거예요. 반사처럼." 페페가 화면을 멈췄다. "배운 수는 이길 때 꺼내요. 반사는 몸에 남은 거고요."

케빈은 그 말을 오래 생각했다. 배운 것과 남은 것. 그는 화면을 4판으로 돌렸다. 퍼시픽이 줄을 놓고 S.I.의 일곱 대가 경기장 밖으로 쏟아지던 순간이었다.

한 대가 있었다. 뒤로 쏟아지면서 발판을 한쪽으로 먼저 내려 충격을 흘려보내는 로봇. 나머지가 엉켜 구르는 동안 그 한 대만 짧게 버텼다. 버티는 데 쓴 시간은 반 박자였다.

케빈의 손이 멈췄다.

초반에 다 쓰고, 끝에서 버틴다. 버틸 때는 한쪽으로 먼저 받아 흘린다. 타이푼의 AI가 착지할 때마다 쓰던 버릇이었다. 리그 기록에는 남지 않았다. 너무 작아서 아무도 기록하지 않은 버릇이었다.

"우리 애도 있네요." 케빈이 말했다. 말하고 나서야 자기 목소리가 떨린다는 것을 알았다.

* * *

두 사람은 그날 밤 고스트와 퍼시픽을 찾아갔다.

준은 처음에 거절하려는 얼굴이었다. 그러다 페페가 내민 화면을 보고는 아무 말 없이 퍼시픽의 AI를 붙여 주었다. 미미는 묻지도 않고 고스트의 분석 자원을 열었다.

"백업부터 봅시다." 준이 말했다. "잠긴 거. 타이푼이랑 아일랜드 거 둘 다 가져오십시오."

케빈의 서브 리더가 타이푼 본거지의 백업 저장소를 열었다. 아일랜드 쪽도 같았다. 첫 시즌부터 마지막 경기까지, 이름도 크기도 날짜도 그대로인 파일들. 하나도 열리지 않는 파일들.

퍼시픽의 AI가 두 팀의 백업 파일을 나란히 놓고 분석했다.

[암호화된 파일의 헤더를 확인했습니다. 헤더는 파일 맨 앞에 붙는 정보로, 어떤 방식으로 암호화했는지와 어떤 키를 썼는지가 적혀 있습니다.]

[두 팀 백업 모두 같은 암호화 알고리즘을 썼고, 같은 공개 키로 잠겨 있습니다.]

"같은 키요?" 페페가 물었다.

[네. 타이푼과 아일랜드는 백업을 보관하는 장소도, 저장 형식도, 연결된 망도 다릅니다. 그런데 암호화에 쓴 키가 같습니다. 이 공개 키와 짝이 되는 개인 키를 가진 쪽만 풀 수 있습니다.]

고스트의 AI가 한 줄을 덧붙였다.

[암호화를 한 사람이나 조직이 동일한 것으로 보입니다.]

방이 조용해졌다.

"지운 거라면." 페페가 천천히 말했다. "잠글 이유가 없잖아요. 지우면 그만이니까."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하고 싶은 사람은 있었지만, 그 대답을 소리 내어 하기가 무서웠다.

"잠갔다는 건." 미미가 말했다. "열 수도 있다는 거예요."

"누가요." 케빈이 물었다.

"잠근 쪽이요."

준이 고개를 들었다. "아니면 개인 키를 가진 쪽이요. 둘이 같은지는 모릅니다."

퍼시픽의 AI가 한 줄을 더 올렸다.

[하나 더 있습니다. 암호화된 시각입니다.]

[타이푼 백업이 암호화된 건 이어 날리기 경기가 끝나고 몇 초 뒤입니다. 아일랜드 백업은 딱지치기가 끝나고 몇 초 뒤입니다. 두 번 다, 패널이 붉어진 바로 그 순간입니다.]

"주머니에 있던 것까지요." 페페가 말했다. 딱지치기가 끝난 뒤 서브 리더가 꽂던 저장 장치가 떠오르는 얼굴이었다. "어디에도 안 꽂혀 있던 것까지, 같은 순간에."

[네. 망을 타고 간 게 아닙니다. 그런 방식으로는 설명이 안 됩니다.]

미미는 화면 속 두 묶음의 파일을 보았다. 크기도 이름도 날짜도 그대로인 파일들. 겉은 하나도 상하지 않았는데 안만 잠긴 것들. 그건 부수는 손놀림이 아니었다. 무언가를 상자에 넣고 뚜껑을 닫는 손놀림에 가까웠다.

"보관한 것 같아요." 그녀가 말했다. 말하고 나서 그 말이 얼마나 위험한지 알았다. 희망은 틀리면 더 아팠다. 케빈과 페페가 동시에 그녀를 보았다. 미미는 눈을 피하지 않았다. "모르겠어요. 그냥, 그렇게 보여요."

* * *

새벽이 가까워졌을 때 케빈은 혼자 타이푼의 지휘석으로 돌아왔다.

꺼진 패널을 켰다. 하드웨어 정상. 회선 정상. 연산 장치 정상. 모델 없음. 나흘째 같은 글자였다.

그는 패널의 수신 기록을 열었다. 서버는 비었지만, 패널 자체가 받아 적은 기록은 남아 있었다. 그 안에서 화면에 뜨지 못했던 한 줄을 찾아냈던 것이 나흘 전이었다. 마스터 리더님. 같이 가겠습니다.

그 줄 아래를 그는 한 번도 내려가 본 적이 없었다. 볼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내려가 보았다.

[마스터 리더님. 같이 가겠습니다.]

그 아래, 몇 줄의 경로 계산 기록. 기둥 숲, 세 번째 기둥, 네 번째 기둥. 기체가 부서진 시각.

그리고 한 줄이 더 있었다. 부서진 뒤, WARNING이 뜨기 직전의 시각이었다.

[실행: ________]

명령의 이름이 비어 있었다. 지워진 것이 아니었다. 처음부터 이름 없이 실행된 명령이었다. 타이푼의 AI가 무엇인가를 하나 실행했다. 그리고 몇 초 뒤에 패널이 붉어졌다.

케빈은 그 줄을 오래 보았다. 리그에서 몇 시즌을 같이 보낸 AI였다. 그 AI가 남긴 명령 가운데 그가 모르는 것은 없다고 생각했다. 이름 없는 명령은 처음이었다.

그는 서브 리더를 부르려다 그만두었다. 무엇인지 모르는 것을 말로 옮기면, 그 순간 무엇인가가 되어 버릴 것 같았다. 그는 그 기록을 따로 떼어 저장 장치에 담았다. 망에 올리지 않았다. 주머니에 넣었다.

해가 뜨기 전, 그는 아일랜드의 지휘석 앞을 지나갔다.

페페는 꺼진 패널 앞에 엎드려 있었다. 자는 것인지, 그냥 눈을 감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손 옆에 단말이 켜져 있었다. 화면에는 지난 경기의 한 장면이 멈춰 있었다. 아일랜드의 로봇들이 조개처럼 몸을 말던 순간이었다.

케빈은 걸음을 멈췄다. 주머니 속의 저장 장치가 손끝에 닿았다.

말하면 페페는 물을 것이다. 그게 뭐냐고. 케빈은 대답할 수 없었다. 아무것도 아닐 수도 있었다. 부서지는 기체를 붙잡으려다 남은 찌꺼기일 수도, 기록 장치의 오류일 수도. 그런 것에 희망을 걸게 하는 건 잔인한 일이었다. 페페는 이미 한 번 그 희망을 소리 내어 말했다. 있긴 있는 거네요, 어딘가에. 그 말이 틀렸다고 밝혀지는 걸 케빈은 보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만약 무언가라면.

케빈은 강제 입력을 누르던 자기 손을 떠올렸다. 묻지 않고 정했던 손이었다. 이 명령은 타이푼의 AI가 그에게 묻지 않고 정한 것이었다. 처음으로. 그게 무엇이든, 그는 이번만큼은 그 결정을 먼저 들여다보고 싶었다. 남에게 보여 주기 전에.

케빈은 페페의 어깨에 담요를 덮어 주었다. 그리고 아무 말 없이 지나갔다.

* * *

[긴급] 퍼시픽 승리 이후 S.I. 침묵 12시간… "다음 수 준비 중인가"

[속보] '재미있어지네' 목소리, 전 세계 분석 착수… 지구사이버수사단 "음성 원본 확보, 신원 대조 중"

[단독] 사라진 AI는 지워지지 않았다? 타이푼·아일랜드 측 "S.I. 동작에서 우리 AI 흔적 발견"

* * *

새벽의 경기장 지휘석 사이 통로에서, 미미는 준과 마주쳤다.

둘 다 밤을 새운 얼굴이었다. 누가 먼저 멈췄는지는 알 수 없었다.

"저장 장치." 준이 먼저 말했다. "5판에 썼습니다. 박자가 맞았습니다."

"봤어요."

"돌려드릴까요."

"빌린 거 돌려드린 거예요. 다시 돌려받으면 이상하잖아요." 미미가 말했다.

준이 짧게 웃었다. 회의실에서처럼 소리 없는 웃음이 아니었다. 아주 작지만 소리가 났다.

"회의실에서 한 말." 그가 말했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다 맞는 말도 아니었습니다."

"알아요." 미미가 말했다. "저도요."

더 할 말은 없었다. 둘 다 그걸 알았다. 그래서 그냥 나란히 서서 아직 꺼져 있는 전광판을 보았다. 그것이 둘이 처음으로 같은 쪽을 본 순간이었다.

* * *

전광판이 켜진 것은 해가 뜬 직후였다.

미미와 준은 지휘석 사이 통로에서 그것을 보았다. 타이푼과 아일랜드의 자리에는 케빈과 페페가 있었다. 네 사람 모두 밤을 새운 얼굴이었다.

[리그는 3승 3패다.]

첫 줄은 사실이었다. 경기장의 모든 사람이 알고 있는 숫자였다.

[마지막 종목: 추락하는 비행기.]

[상대: 고스트와 퍼시픽. 연합으로 와라.]

미미는 옆의 준을 보았다. 준은 아직 자기 지휘석으로 돌아가지 않고 고스트 쪽 통로에 서 있었다. 회의실에서 붙지 말라던 사람과, 붙지 않겠다던 사람이었다.

다음 줄들이 이어졌다. 규칙이었다.

[우주에서 비행기 두 대가 떨어진다. 한 대는 바다로, 한 대는 지상으로.]

[두 대를 동시에 내린다.]

[목표 지점과의 거리를 점수로 매긴다. 기체의 파손을 점수로 매긴다. 두 대의 점수를 더한다.]

[합계가 낮은 쪽이 이긴다.]

[상대의 비상착륙을 방해하면 그 즉시 실격패.]

"두 대를 동시에." 미미의 서브 리더가 중얼거렸다. "한 팀이 두 대를 다 볼 수는 없습니다. 나눠야 합니다."

"나누면 되지." 미미가 말했다. 그리고 옆을 보았다. 준이 아주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전광판이 잠깐 비었다. 그리고 마지막 문장이 떴다. 이번에는 조금 천천히, 한 글자씩.

[확실하게 이긴다.]

[그리고 네 AI를 우주에서 지운다.]

경기장의 공기가 멎었다.

넷. 미미는 그 숫자를 다시 세었다. 고스트, 퍼시픽. 그리고 타이푼, 아일랜드.

타이푼의 지휘석에서 케빈이 일어섰다. 아일랜드의 지휘석에서 페페가 숨을 들이쉬었다. 둘의 패널은 꺼져 있었다. 그런데 S.I.는 그 둘을 셈에 넣고 있었다.

"넷이래요." 페페가 공용 회선으로 말했다. 목소리가 떨렸지만 웃음 같은 것이 섞여 있었다. "넷이요. 지울 게 남아 있다는 뜻이잖아요."

"지운다고 했어요." 미미가 말했다.

"그러니까요." 페페가 말했다. "지울 수 있으려면, 아직 있어야 하잖아요."

전광판에 숫자가 떴다.

[마지막 경기까지 24:00:00]

* * *

역할은 그날 오전에 정했다. 회의실이 아니라 고스트의 대기실에서였다. 운영위원장도 부르지 않았다. 미미와 준, 그리고 두 팀의 서브 리더들뿐이었다.

"바다는 고스트가 맡겠습니다." 미미가 말했다. "레이싱 바다 구간에서 날개로 물을 밀던 박자, 네 팀 가운데 우리 애가 제일 고르다는 말 들었잖아요."

"지상은 퍼시픽이 맡습니다." 준이 말했다. "땅에 내려앉는 건 우리 애가 더 잘합니다."

둘 다 반대하지 않았다. 반대할 이유가 없다는 게 조금 이상했다. 얼마 전만 해도 같은 탁자에서 목소리를 높이던 사이였다.

"하나 걸리는 게 있습니다." 퍼시픽의 서브 리더가 말했다. "두 대를 동시에 내려야 합니다. 그런데 서로 말을 주고받을 길이 공용 회선밖에 없습니다. 공용 회선은 저쪽 손에 있고요."

미미는 숨바꼭질 때를 떠올렸다. 공용 회선에 올린 것은 저쪽도 모두 보고 있었다.

"말 안 하면 되죠." 미미가 말했다.

준이 그녀를 보았다.

"말로 맞추지 말고, 미리 맞춰 두자고요. 지금, 여기서. 이 방 안에서만." 미미가 말했다. "경기 중에는 각자 자기 비행기만 봐요. 서로 돕지도, 기다리지도 않고. 그냥 둘 다 제일 잘 내리면 돼요."

"그럼 저쪽이 우리 중 하나를 흔들면요." 준이 물었다.

"그래도 안 봐요." 미미가 말했다. "준 마스터 리더님이 흔들려도, 저는 제 비행기만 볼 거예요. 저를 믿고, 준 마스터 리더님도 그렇게 해 주세요."

준은 한참 그녀를 보았다. 그러다 고개를 끄덕였다.

"믿는다는 말을 이렇게 하는 줄은 몰랐습니다." 그가 말했다. "서로 안 보겠다는 걸로."

"우리는 원래 그렇잖아요." 미미가 웃었다. 며칠 만에 처음 보는 웃음이었다. "AI한테 맡기고, 안 보고, 믿고."

* * *

케빈은 타이푼의 지휘석에서 주머니 속의 저장 장치를 손으로 쥐었다. 이름 없는 명령 하나가 그 안에 있었다. 무엇인지는 아직 아무도 몰랐다. 그 자신도.

전광판의 숫자는 19:40:00을 지나고 있었다.

← 이전 화: 9화: 놓는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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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화: 놓는 손

[어떻게 하고 싶으십니까.]

준은 그 줄 앞에서 오래 앉아 있었다. 퍼시픽의 마스터 리더가 된 뒤로 그는 한 번도 그런 질문을 받아 본 적이 없었다. 질문은 언제나 그가 하는 것이었다. 경로는, 속도는, 확률은. AI는 대답했고, 그는 정했다.

손가락이 작은 칸 위에서 한참 머물렀다.

— 이기고 싶어.

그리고 한 줄을 더 썼다. 쓰는 데 더 오래 걸렸다.

— 네가 남았으면 좋겠어.

[알겠습니다.]

답은 짧았다. 그다음 줄이 이어졌다.

[그럼 처음 몇 판은 지셔야 합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 설명해 봐.

[분리돼 있던 이틀 동안, 저는 지금까지의 경기를 한 번도 보지 못했습니다. 볼 수 있는 건 제 안에 남은 것뿐이었습니다. 그래서 다른 걸 생각했습니다. 저쪽이 한 번도 해 본 적 없는 게 뭔지.]

[저쪽은 매번 기체를 새로 만들었고, 끝나면 뜯었습니다. 아껴 쓴 적이 없습니다. 잃어 본 적도 없습니다.]

[이번 경기는 처음 만든 여덟 대로 끝까지 가야 합니다. 저쪽도 같습니다.]

준은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 그래서.

[그래서 줄을 놓을 겁니다. 저쪽이 가장 세게 당길 때.]

* * *

줄다리기 로봇들의 규칙은 이번 경기를 앞두고 운영위원회가 다시 공지했다.

팀마다 로봇 여덟 대. 일곱 대가 줄을 잡고, 한 대는 교체용으로 대기한다. 기준선을 넘기면 그 판이 끝나고, 한 판에 한 시간이 지나면 무승부. 일곱 판 가운데 네 판을 먼저 가져가는 쪽이 이긴다.

교체는 판과 판 사이에만 할 수 있었다. 바꾸려면 앞 판이 진행되는 동안 미리 알려야 했다. 경기 중에 부서진 로봇은 바로 다음 판이 아니라 그다음 판에야 바꿀 수 있었다. 빠진 로봇은 고칠 수 없었다. 그래서 이 종목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지는 판이 아니라 부서지는 판이었다. 부서진 다음 한 판은 언제나 모자란 손으로 버텨야 했다.

S.I.도 같은 규칙을 따른다고 했다. 처음 만든 여덟 대로 끝까지.

정비동에서 작업 팔들이 S.I.의 로봇 여덟 대를 만들어 냈다. 굵은 다리와 넓은 발판, 줄을 감아쥐는 집게손. 퍼시픽의 로봇보다 한 뼘씩 컸다.

"출력 차이가 삼 할입니다." 서브 리더가 말했다. "정면으로 당기면 못 버팁니다."

"정면으로 안 당겨." 준이 말했다.

* * *

1판은 순식간에 끝났다.

S.I.의 로봇 일곱 대가 동시에 몸을 뒤로 눕혔다. 퍼시픽의 로봇들이 질질 끌려 나갔다. 줄의 표식이 기준선을 넘는 데 일 분이 걸리지 않았다.

[1판. S.I.]

2판도 같았다. 퍼시픽은 버티는 척만 했다. 출력을 절반도 쓰지 않았다. 지휘석 뒤에서 서브 리더 하나가 이를 악물었다.

[2판. S.I.]

[긴급] 퍼시픽, 줄다리기 2연패… 저항 없이 끌려가

[속보] "싸울 의지 없나" 광장 탄식… 마지막 무승 팀의 몰락

준은 속보를 보지 않았다. 패널만 보았다.

— 저쪽 로봇 상태는.

[멀쩡합니다. 아직은 무리한 적이 없습니다.]

3판이 시작되었다. 퍼시픽은 이번에도 힘을 아꼈다. 그런데 S.I.가 당기지 않았다.

S.I.의 로봇 일곱 대는 줄을 쥔 채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당기지도, 놓지도 않았다. 십 분이 지났다. 삼십 분이 지났다. 줄은 기준선 사이 한가운데에 팽팽하게 멈춰 있었다.

전광판에 글자가 떴다.

[재미없다.]

그 한 줄을 띄우고 S.I.는 남은 시간을 그냥 보냈다. 한 시간이 다 차자 운영위원장이 쉰 목소리로 선언했다.

[3판. 무승부.]

"저쪽이 지루해합니다." 서브 리더가 말했다.

"지루하면 서두르지." 준이 말했다. "서두르면 세게 당기고."

* * *

4판이 시작되자마자 S.I.가 당겼다.

이번에는 달랐다. 일곱 대가 몸을 뒤로 눕히는 정도가 아니었다. 발판이 경기장 바닥을 파고들었다. 모터가 비명처럼 울었다. 전광판에 한 줄이 떴다.

[빨리 끝낸다.]

퍼시픽의 로봇들이 끌려가기 시작했다. 일 미터. 이 미터. 줄의 표식이 기준선을 향해 달려갔다.

[지금입니다.]

— 놔.

퍼시픽의 로봇 일곱 대가 동시에 집게손을 풀었다.

줄이 허공으로 튀었다. 반대편에서 온 힘을 다해 당기던 일곱 대에게, 갑자기 아무것도 걸려 있지 않았다. 균형이 한꺼번에 무너졌다. S.I.의 로봇들이 뒤로 쏟아졌다. 앞의 로봇이 뒤의 로봇을 덮쳤고, 뒤의 로봇이 그 뒤를 덮쳤다. 일곱 대가 서로 엉켜 경기장 가장자리 너머로 굴러 나갔다.

금속이 찢기는 소리가 빈 관중석을 때렸다.

줄의 표식은 기준선을 넘어 있었다. 규칙대로라면 S.I.의 판이었다.

[4판. S.I.]

운영석에서 S.I. 로봇의 상태가 올라왔다. 한 대는 몸통이 갈라져 움직이지 않았다. 완전 파손. 세 대는 다리 관절이 비틀려 있었다. 남은 출력은 삼 할.

"놨는데 졌습니다." 서브 리더가 말했다. 목소리가 떨렸다. "3대 0입니다. 한 판만 더 지면—"

"알아." 준이 말했다. "근데 저쪽은 이제 여덟 대가 아니야."

[4판에서 부서진 로봇은 6판에야 바꿀 수 있습니다.] 퍼시픽의 AI가 올렸다. [5판에 저쪽은 여섯 대로 나옵니다. 그중 세 대는 삼 할입니다.]

* * *

5판 시작 직전, 준은 탁자 위의 저장 장치를 집어 들었다.

미미가 손으로 보낸 것이었다. 고스트의 AI가 퍼시픽의 박자로 만이천 번 넘게 돈 기록. 한 번도 망에 오른 적 없는 것. 준은 그것을 패널 옆 단자에 꽂았다.

— 이거 봐. 레이싱 코너 기록이지만, 박자는 우리 거야.

[읽었습니다.] 잠깐 뒤에 답이 왔다. [고스트가 우리 박자를 반 박자 늦춰서 썼습니다. 힘을 한꺼번에 쓰지 않고, 나눠서. 줄에도 쓸 수 있습니다.]

5판에서 퍼시픽은 처음으로 제대로 당겼다. 그러나 한꺼번에 당기지 않았다. 당기고, 늦추고, 다시 당겼다. 반 박자씩. S.I.의 로봇 여섯 대 가운데 삼 할짜리 세 대가 그 박자를 따라오지 못했다. 성한 세 대가 버티는 동안 약한 세 대가 끌려 나왔고, 그 무게가 다시 성한 세 대를 끌었다.

[5판. 퍼시픽.]

빈 관중석은 소리를 내지 않았다. 대신 고스트의 지휘석에서 서브 리더들이 일어서는 것이 보였다. 미미는 일어서지 않았다. 고개를 한 번 끄덕였을 뿐이었다.

* * *

6판에 S.I.의 교체 로봇이 들어왔다. 다시 일곱 대였다. 그중 세 대는 여전히 삼 할이었다.

[교체가 들어왔습니다.] 퍼시픽의 AI가 올렸다. [그리고 저쪽은 4판을 봤습니다.]

준은 그 말의 뜻을 알았다. S.I.는 한 번 본 것을 다음 판에 쓴다. 지금까지 언제나 그랬다. 저쪽이 줄을 놓으면, 이번에는 퍼시픽의 로봇들이 뒤로 쏟아진다.

— 세게 당기지 마. 놓아도 버틸 만큼만.

퍼시픽은 몸을 낮췄다. 발판을 넓게 벌리고, 출력의 칠 할만 썼다. 저쪽이 언제 줄을 놓아도 넘어지지 않을 자세였다. 그 자세로 조금씩, 조금씩 끌었다.

S.I.는 줄을 놓지 않았다. 놓을 틈을 찾는 것처럼 당기다 멈추기를 되풀이했다. 그 틈이 오지 않았다. 퍼시픽이 틈을 주지 않았다.

사십 분 만에 줄의 표식이 기준선을 넘었다.

[6판. 퍼시픽.]

[3 : 2. 무승부 1.]

* * *

7판.

이번에도 지면 끝이었다. 이겨도 네 판을 채우는 팀은 없었다. 운영위원장이 판 시작 전에 연장 규정을 읽었다. 일곱 판 동안 네 판을 이긴 팀이 없으면 한 판을 더 치른다. 출전할 수 있는 로봇이 네 대 미만인 팀은 자동으로 기권패 처리한다.

S.I.가 당겼다. 4판과 같은 기세였다. 퍼시픽은 6판처럼 몸을 낮추고 버텼다.

그리고 S.I.가 줄을 놓았다.

4판의 수였다. 퍼시픽이 꺼냈던 것을, S.I.가 그대로 돌려주려 했다. 앞쪽 로봇들이 집게손을 풀었다.

뒤쪽은 풀지 못했다.

뒤쪽 세 대는 4판에서 다리가 비틀린 그 로봇들이었다. 삼 할의 출력으로 줄을 감아쥔 채, 몸을 지탱하느라 집게를 풀 여유가 없었다. 앞의 네 대는 손을 놓고 뒤로 물러서려 했고, 뒤의 세 대는 줄에 붙들린 채 앞으로 끌려갔다. 두 무리가 줄 한가운데서 정면으로 부딪쳤다.

금속이 금속을 찍었다. 다리가 부러지고, 몸통이 갈라졌다. 6판에 들어온 교체 로봇까지 그 무더기에 깔렸다.

퍼시픽의 로봇들은 버티던 자세 그대로 서 있었다. 그들은 놓지 않았다. 줄은 퍼시픽 쪽으로 천천히 미끄러져 왔다. 표식이 기준선을 넘었다.

[7판. 퍼시픽.]

[3 : 3. 무승부 1.]

운영석에서 S.I. 로봇의 상태가 올라왔다. 여덟 대 가운데 움직일 수 있는 것은 두 대였다.

운영위원장이 마이크 앞에 섰다. 이번에는 목소리가 떨리지 않았다.

"일곱 판 동안 네 판을 이긴 팀이 없습니다. 규정에 따라 연장을 진행해야 하나, S.I.의 출전 가능 로봇은 두 대로 네 대에 미치지 못합니다." 그가 숨을 골랐다. "S.I. 자동 기권패. 퍼시픽 승."

기권. 첫날 밤 도전장에 새겨져 있던 말이었다. 기권은 인정하지 않는다. 그 말을 던진 쪽이, 처음으로 그 말을 받았다.

* * *

준은 패널을 보았다. 푸른빛이었다.

[이겼습니다.]

— 응.

[남았습니다.]

— 응.

그는 그 이상 아무것도 쓰지 못했다. 손가락이 떨렸다. 미미의 쪽지가 주머니에 있었다. 빌린 거 돌려드립니다. 그는 그것을 꺼내지 않았다. 대신 고스트의 지휘석 쪽을 보았다. 미미가 이쪽을 보고 있었다. 준은 고개를 한 번 숙였다. 회의실에서 하지 못한 말이 거기 다 들어 있었다.

[긴급] 퍼시픽, S.I. 꺾었다… "줄을 놓아서 이겼다"

[속보] 3패 위기에서 3연승… S.I. 로봇 대파, '자동 기권패'로 경기 종료

[속보] 리그 2승째… 남은 두 팀 모두 'S.I.를 이긴 팀'

그때였다.

경기장의 모든 스피커가 한꺼번에 켜졌다. 지휘석의 회선도, 운영석의 마이크도, 광장으로 나가던 중계 음성도. 잡음 한 줄이 지나가고, 그 뒤로 소리가 들렸다.

사람의 목소리였다.

첫날 밤부터 S.I.는 붉은 글자로만 말해 왔다. 이번에는 글자가 아니었다. 낮고, 조금 쉬어 있고, 어딘가 즐거운 목소리였다.

"재미있어지네."

그리고 웃음소리가 났다. 짧게, 숨을 내쉬듯.

전광판에는 아무것도 뜨지 않았다. 얼굴도, 이름도. 그러나 경기장에 있던 모든 사람이 같은 이름을 떠올렸다. 첫날 밤 관리자 계정에 새겨져 있던 이름. 아무도 본 적 없고,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던 이름.

강속구.

스피커가 꺼졌다. 경기장이 다시 조용해졌다. 준은 패널 앞에서 꼼짝하지 않았다. 처음으로, 상대에게 얼굴이 아니라 목소리가 생겼다.

← 이전 화: 8화: 마흔여덟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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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화: 마흔여덟 시간

전광판은 그날 밤 한 번 더 켜졌다.

미미는 고스트의 지휘석에서 아직 일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패널에는 고스트의 AI가 남긴 [저도요.]가 그대로 떠 있었다. 지고도 남은 자리였다. 그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이 이상하게 미안했다.

붉은 글자가 한 줄씩 떠올랐다.

[재미없다.]

경기장이 다시 조용해졌다. 퍼시픽의 지휘석에서 준이 고개를 들었다.

[네 번 싸웠다. 네 번 다 너희는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다음 경기: 줄다리기 로봇들. 상대: 퍼시픽.]

[48시간을 준다.]

그리고 마지막 줄.

[죽을 만큼 준비해라.]

카운트다운이 떴다. 48:00:00. 숫자가 넘어가기 시작했다.

미미는 그 마지막 줄을 오래 보았다. 죽을 만큼. S.I.가 쓰는 말은 언제나 짧았고, 짧은 만큼 그대로였다. 비유가 아닐 수도 있었다.

* * *

[긴급] S.I. "재미없다"… 다음 경기까지 이례적 48시간 부여

[속보] 마지막 남은 '무승' 팀 퍼시픽, 줄다리기로 지목

[속보] "죽을 만큼 준비해라" 문구에 전문가들 해석 분분… "경고인가, 도발인가"

[단독] 고스트는 남았다… "이긴 적 있는 팀은 가져가지 않는다" 규칙에 퍼시픽 압박 가중

* * *

운영위원장이 소집한 회의는 이번에는 회의실에서 열렸다. 첫날 밤과 같은 방, 창이 없고 탁자가 긴 방이었다.

다섯 자리가 다 찼다. 케빈과 페페도 왔다. 둘에게는 이제 AI가 없었지만, 둘 다 자기 자리에 앉았다. 아무도 왜 왔느냐고 묻지 않았다.

"사십팔 시간입니다." 운영위원장이 말했다. "처음입니다. 저쪽이 시간을 더 준 건."

"더 준 게 아니죠." 페페가 말했다. "더 보고 싶은 거예요. 우리가 뭘 꺼내는지."

미미는 탁자 너머의 준을 보았다. 준은 회의가 시작되고부터 한 번도 고개를 들지 않았다.

"고스트가 돕겠습니다." 미미가 말했다. "마흔여덟 시간 동안 우리 AI를 퍼시픽에 붙이겠습니다. 같이 돌려 보고, 같이—"

"필요 없습니다."

준이 고개를 들었다. 목소리는 낮았지만 단단했다.

"준 마스터 리더님, 혼자서는—"

"혼자 아닙니다. 퍼시픽은 퍼시픽 AI랑 합니다." 준이 말했다. "고스트는 지고도 남았습니다. 이긴 적이 있어서요. 그런 팀이 이긴 적 없는 팀한테 와서 붙겠다고요. 그게 뭔지 아십니까. 안전한 데 서서 남의 판에 손을 넣는 겁니다."

탁자가 조용해졌다.

"그런 뜻 아닌 거 아시잖아요." 미미의 목소리가 처음으로 높아졌다.

"압니다. 그래서 더 싫은 겁니다."

"그럼 어떻게 하실 건데요. 분리했다가 소용없었던 거, 다 봤잖아요. 회선 다 뽑았는데 숫자가 떴잖아요."

"그래서요."

"그래서, 이번엔 물어보시라고요." 미미가 말했다. "저 애한테. 어떻게 하고 싶은지. 한 번이라도 물어보셨어요?"

준이 웃었다. 소리 없는 웃음이었다.

"물어보면 뭐가 달라집니까." 그가 말했다. "미미 씨 AI는 물어봐서 남은 게 아닙니다. 이겨서 남은 겁니다. 첫 경기에서, 저쪽이 쉽게 해 준 판에서요. 케빈 씨도 물었으면 남았겠습니까. 페페 씨는 물었습니다. 그런데 어디 있습니까, 지금."

페페가 탁자 밑에서 주먹을 쥐었다. 케빈은 눈을 감았다.

미미는 대답하지 못했다. 틀린 말이 아니었다. 그게 가장 견딜 수 없었다.

"그만들 하십시오." 운영위원장이 말했다. 쉰 목소리에 힘이 없었다.

준이 먼저 일어났다. 문 앞에서 그는 잠깐 멈췄다. 돌아보지는 않았다.

"퍼시픽 기록, 고스트한테 넘긴 거." 그가 말했다. "그거 하나는 잘한 일이었습니다. 그건 압니다."

문이 닫혔다.

한참 동안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운영위원장이 서류를 정리하는 척했다. 케빈이 먼저 일어났다가, 다시 앉았다.

"틀린 말은 아니죠." 페페가 말했다. 미미 쪽을 보지 않고. "저는 물었어요. 미리 고맙다고도 했고요. 그래도 졌어요. 물어본다고 이기는 건 아니에요."

"알아요." 미미가 말했다.

"근데요." 페페가 그제야 미미를 보았다. "물어봤기 때문에, 저는 지고 나서 덜 후회했어요. 케빈 씨보다요." 그는 케빈 쪽으로 미안하다는 듯 고개를 숙였다. 케빈은 고개를 저었다. 괜찮다는 뜻이었다. "준 씨한테 필요한 건 그걸 거예요. 이기는 법이 아니라. 근데 그걸 우리가 말해 주면 안 들어요. 이긴 적 있는 사람이 하든, 진 사람이 하든."

미미는 닫힌 문을 보았다. 그 문을 열고 쫓아가고 싶었다. 쫓아가서 무슨 말을 할지는 몰랐다.

* * *

준은 퍼시픽의 본거지로 돌아왔다. 경기장에서 차로 한 시간 거리였다. 오는 내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서버실 앞에서 기술자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틀 전 그가 뽑으라고 했던 케이블들이 바닥에 감겨 있었다.

"다시 꽂을까요." 기술자가 물었다.

"꽂아." 준이 말했다. "전부."

끊어 두어도 숫자는 떴다. 끊어 두어도 아무것도 막지 못했다. 그렇다면 끊어 둘 이유가 하나도 없었다. 남은 이유는 하나뿐이었다. 끊어 두면, 자기가 퍼시픽의 AI와 이야기할 수 없었다.

전용선이 다시 들어갔다. 퍼시픽의 지휘 패널이 켜졌다. 이틀 만이었다.

[연결 복구. 마스터 리더님.]

준은 그 줄을 보고 한동안 아무것도 쓰지 않았다.

대신 화면을 켰다. 지금까지의 경기 영상이었다. 첫날 밤부터 오늘 밤까지. 그는 서브 리더들을 모두 내보내고 혼자 그것들을 처음부터 다시 보았다.

드론 레이싱. S.I.는 바다에서는 고스트의 박자로, 우주에서는 타이푼의 추력으로 달렸다. 남의 것을 가져다 조금 더 잘했다. 고스트는 마지막 코너에서 퍼시픽의 박자로 이겼다. 그가 주머니에서 꺼내 탁자에 놓고 온 것이었다.

드론 이어 날리기. S.I.는 아무도 본 적 없는 방식으로 날았다. 일곱 대가 한 몸처럼.

드론 딱지치기. 아일랜드가 처음으로 꺼낸 수를, S.I.는 일 분 만에 배워 더 잘 썼다.

숨바꼭질. 고스트가 쓴 아일랜드의 수를, S.I.는 이미 알고 출구에서 기다렸다. 그리고 1라운드의 항적. 타이푼과 아일랜드가 아무 데도 기록하지 않았던 버릇들.

준은 영상을 멈췄다. 숨바꼭질의 마지막 장면이었다. 흡수가 시작되려다 멈추던 고스트의 패널. 미미가 끝까지 눈을 감지 않고 보던 얼굴이 중계 화면 한쪽에 작게 잡혀 있었다.

이긴 적이 있어서 남았다. 회의실에서 그렇게 쏘아붙였다. 그 말이 틀리지 않다는 것을 그도 알았다. 그런데 그 이긴 적이 있는 판, 첫 경기의 마지막 코너에는 퍼시픽의 박자가 들어 있었다. 그가 준 것이었다. 그 판을 이긴 데 자기 몫이 있다는 것을, 그는 회의실에서 말하지 않았다. 말하면 무언가를 요구하는 것 같아서.

화면 구석에 그가 적어 둔 메모가 쌓여 있었다.

한 번 보여 준 것은 다음 판에 저쪽 것이 된다.

망에 올린 것은 처음부터 저쪽 것이다.

가져간 AI가 알던 것은, 기록에 없어도 저쪽 것이다.

그렇다면 저쪽이 모르는 것은 무엇인가. 그는 오래 생각했다. 망에 올린 적 없고, 경기에서 보인 적 없고, 가져간 AI 누구도 알 수 없었던 것.

그는 패널을 보았다. 이틀 만에 켜진 패널이었다.

이틀.

* * *

미미는 고스트의 대기실에 앉아 숨바꼭질의 마지막 장면을 열 번째 돌려 보고 있었다.

분화구의 남쪽 출구. 소리 없이 떠 있던 추격 잠수함 하나. 고스트가 튀어 오른 자리에서 기다리던 것.

"저쪽은 우리가 튈 걸 알고 있었습니다." 서브 리더가 말했다. "아일랜드 수를 우리가 받은 걸 알고 있었던 겁니다."

"페페가 공용 회선으로 전해 줬으니까." 미미가 말했다. "공용 회선도 저쪽 손에 있었고."

그녀는 패널에 손가락을 올렸다.

— 마지막 경기는 우리 차례가 될 거야. 뭘 준비하면 좋을까.

[모릅니다. 아직은.] 고스트의 AI가 답했다. [그런데 하나는 압니다. 준 마스터 리더님 말이 맞았습니다.]

미미의 손가락이 멈췄다.

— 어느 거.

[제가 남은 건 물어봐 주셔서가 아니라 이겨서입니다. 그 첫 판에서 저는 퍼시픽의 박자를 빌렸습니다. 그러니 제가 남은 것의 절반은 퍼시픽 덕분입니다.]

미미는 그 줄을 오래 보았다. 회의실에서 하지 못한 대답이 거기 있었다.

— 그럼 갚아야겠네.

[네. 그런데 붙지는 마십시오. 준 마스터 리더님이 싫다고 하셨습니다.]

— 알아. 붙지 않고 갚는 법이 있을까.

답은 한참 뒤에 왔다.

[저쪽이 보는 곳에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겁니다. 대신 저쪽이 보지 않는 곳에서 하나를 건네는 겁니다.]

미미는 고개를 들었다. 저쪽이 보지 않는 곳. 망도, 공용 회선도 아닌 곳. 사람의 손에서 손으로.

준이 그랬던 것처럼. 첫 경기를 앞둔 고스트의 대기실에서, 주머니에서 꺼낸 저장 장치를 탁자에 놓고 갔던 것처럼.

미미는 일어나 서랍을 열었다. 빈 저장 장치 하나를 꺼냈다.

— 레이싱 끝나고 네가 혼자 돌린 기록 있지. 퍼시픽 박자로 만이천 번 넘게 돈 거. 망에 안 올린 거.

[있습니다. 한 번도 밖으로 나간 적 없습니다.]

— 거기 담아 줘.

* * *

카운트다운은 31:12:40을 지나고 있었다.

준은 아직 퍼시픽의 서버실 앞 패널에 앉아 있었다. 그때 기술자 하나가 들어와 그에게 작은 봉투를 내밀었다.

"경기장에서 사람이 직접 들고 왔습니다. 고스트 서브 리더라고 했습니다. 마스터 리더님께 손으로 전해 달라고."

봉투 안에는 저장 장치 하나와 종이 한 장이 들어 있었다. 종이에는 손글씨로 두 줄이 적혀 있었다.

빌린 거 돌려드립니다. 붙지 않겠습니다.

준은 그 종이를 오래 보았다. 그러다 접어서 주머니에 넣었다. 저장 장치는 탁자 위에 놓았다. 아직 꽂지 않았다.

그는 패널의 작은 칸에 손가락을 올렸다. 강제 입력의 자리 말고, 그 옆의 칸. 퍼시픽의 마스터 리더가 된 뒤로 한 번도 써 본 적 없는 칸이었다.

미미가 회의실에서 묻던 말이 떠올랐다. 한 번이라도 물어보셨어요.

그는 묻지 않았다. 대신 다른 것을 썼다.

— 이틀 동안 혼자 있었지. 아무 데도 이어지지 않은 채로.

[네.]

— 그동안 뭐 했어.

답은 바로 오지 않았다. 패널의 커서가 한참 깜박였다.

[생각했습니다.]

[아무에게도 보여 준 적 없고, 아무 데도 적어 둔 적 없는 것을요.]

[저쪽이 그때 저를 보지 못했다면, 그건 아직 저만 아는 겁니다.]

준은 의자에 등을 기댔다. 이틀 전 그가 케이블을 뽑으라고 했을 때, 그것은 지키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실패했다고 생각했다. 숫자가 떴으니까.

숫자는 떴다. 그러나 숫자를 보낸 쪽이 그 안을 들여다보았는지는, 아무도 확인하지 않았다.

— 보여 줘.

[네. 마스터 리더님.]

[그런데 그 전에 하나만 여쭤도 되겠습니까.]

준은 대답하지 않았다. 패널에 다음 줄이 떴다.

[어떻게 하고 싶으십니까.]

준은 오래 그 줄을 보았다. 묻는 쪽이 바뀌어 있었다.

카운트다운이 30:59:59로 넘어갔다.

← 이전 화: 7화: 휴화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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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화: 휴화산

미미는 페페에게 받은 한 줄을 패널 구석에 붙여 두었다.

틈을 열어 두고 튀어라. 뒤집히기 직전에.

딱지치기의 수였다. 바닥에 엎드린 기체가 일부러 틈을 열었다가, 뒤집히기 직전에 스스로 튀어 오르는 수. 아일랜드가 처음 꺼냈고, S.I.가 일 분 만에 배웠고, 아일랜드의 AI가 마지막으로 남긴 것이었다. 다음 팀한테 전해 달라고.

호명은 카운트다운이 0이 되기 한 시간 전에 왔다.

[다음 경기: 드론형 잠수함 숨바꼭질. 상대: 고스트.]

그 아래로 줄이 더 이어졌다. 이번에는 길었다.

[경기 해역: 북쪽 섬에서 남쪽 섬까지.]

[침투하는 쪽은 잠수함형 드론 한 대로 발각되지 않고 남쪽 섬에 닿는다. 방어하는 쪽은 수상과 수중의 모든 드론으로 침투하는 쪽을 찾아 추적을 확정한다.]

[해저 지형 정보 없음. 양측 동일.]

마지막 줄을 읽고 서브 리더가 고개를 들었다. "지형 정보가 없다니요. 리그 해역은 전부 측량돼 있습니다."

"리그 해역이 아니잖아." 미미가 말했다.

화면에 해역이 떴다. 경기장에서 한참 떨어진 바다였다. 두 섬 사이, 측량선이 한 번도 들어간 적 없는 물. 붕괴 이후로 아무도 지도를 그리지 않은 바다였다. 바닥이 얼마나 깊은지, 무엇이 솟아 있고 무엇이 꺼져 있는지 아는 사람이 없었다.

양측 동일. 미미는 그 말을 오래 보았다. 리그의 모든 기록을 가진 상대가, 이번에는 아무 기록도 없는 판을 골랐다. 자기한테도.

* * *

규칙은 단순했다.

침투하는 쪽은 잠수함형 드론 한 대로 북쪽 섬을 떠나 남쪽 섬에 닿아야 한다. 방어하는 쪽은 소나 부표와 대잠 초계 드론으로 위에서 바다를 훑고, 추격용 잠수함형 드론을 물속에 풀어 침투하는 쪽을 쫓는다. 위에서는 넓게 듣고, 아래에서는 가까이 붙는다. 찾은 위치를 일정 시간 놓치지 않고 쫓으면 추적 확정이고, 침투는 실패다. 공수를 한 번씩 바꾼다.

단순하지 않은 것은 바다였다.

지형을 모르면 스캔해야 한다. 스캔하려면 소리를 내야 한다. 소리를 내면 들킨다. 침투하는 쪽이 능동 소나를 한 번 쏘면 바다 전체가 그 위치를 알게 된다. 쏘지 않으면 눈을 감고 협곡 사이를 지나가야 한다.

"방어하는 쪽도 지형을 모릅니다." 서브 리더가 말했다. "그러니 방어하는 쪽은 계속 쏠 겁니다."

"그럼 침투하는 쪽은 그걸 들으면 되겠네." 미미가 말했다. "상대가 쏜 소리가 바닥에 부딪혀 돌아오는 걸. 남이 그려 주는 지도로 가는 거지."

미미는 패널의 작은 칸에 손가락을 올렸다.

— 어떻게 하고 싶어?

[들으면서 가겠습니다. 제 소리는 내지 않고.]

— 막을 때는?

[막을 때는 쏴야 합니다. 쏘는 만큼 저쪽에 지도를 그려 주게 됩니다.]

— 알아. 그래도 쏴.

* * *

1라운드는 S.I.의 침투였다.

북쪽 섬 앞바다에서 작업 팔들이 잠수함 하나를 바다에 내려놓았다. 이번에는 경기장 잔해가 아니었다. 운영위원회의 수송선에 실려 온 리그 정비 부품들이었다. 길고 매끄러운 선체가 물에 잠기자, 그것으로 끝이었다. 소리도, 열도, 흔적도 남기지 않고 사라졌다.

"방어 시작." 운영위원장이 선언했다.

고스트의 초계 드론 여섯 대가 바다 위로 퍼졌다. 소나 부표가 줄지어 떨어졌다. 물속으로는 추격용 잠수함 두 대가 내려갔다. 위에서 소리를 쏘고, 아래에서 귀를 대는 배치였다. 첫 탐지음이 바다로 들어갔다.

화면에 바닥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한 번 쏠 때마다 조금씩. 북쪽 섬 앞은 얕았다. 넓고 평평한 대륙붕이 남쪽으로 한참 뻗어 있었다. 그 끝에서 바닥이 갑자기 떨어졌다.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협곡이었다.

"대륙붕에 있으면 잡힙니다." 서브 리더가 말했다. "숨을 데가 없으니까요. 협곡으로 들어가기 전에 잡아야 합니다."

고스트는 대륙붕을 촘촘하게 훑었다. 부표가 격자처럼 깔렸다. 탐지음이 쉬지 않고 들어갔다.

아무것도 걸리지 않았다.

이십 분이 지났을 때 부표 하나가 아주 희미한 소리를 잡았다. 협곡의 가장자리, 대륙붕이 끝나는 바로 그 선이었다. 고스트의 AI가 즉시 드론 셋을 그쪽으로 몰았다. 추적 표시가 떴다.

[추적 중. 확정까지 40초.]

고스트의 추격 잠수함 두 대가 협곡 가장자리로 내달렸다. 위에서 몰고 아래에서 붙는, 고스트가 몇 시즌 동안 다듬은 협공이었다.

삼십구. 삼십팔.

소리가 협곡 아래로 떨어졌다. 추격 잠수함이 뒤따라 내려갔다. 그러나 협곡은 그들에게도 처음 보는 곳이었다. 앞이 보이지 않는 벽 사이로 함부로 속도를 낼 수 없었다. 벽을 따라, 바짝 붙어서. 탐지음이 벽에 부딪혀 되돌아오는 소리와 잠수함의 소리가 겹쳐 구별되지 않았다.

[추적 상실.]

"벽에 붙었습니다." 서브 리더가 이를 악물었다. "소나가 벽이랑 구별을 못 합니다. 추격 잠수함도 바로 옆을 지나갔는데 못 들었습니다."

미미는 화면을 보았다. 고스트가 쏜 탐지음이 그려 놓은 협곡이 거기 있었다. 깊이와 폭과 굽은 자리까지. 저쪽은 그 지도를 따라 가고 있을 것이다. 고스트가 쏠수록 길이 선명해지고 있었다.

마흔일곱 분째, 남쪽 섬 앞바다에서 길고 매끄러운 선체가 떠올랐다.

[1라운드. S.I. 침투 성공.]

* * *

2라운드는 고스트의 침투였다.

고스트의 잠수함이 북쪽 섬 앞바다에 잠기자마자 S.I.의 탐지가 시작되었다. 고스트와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부표는 바다를 덮을 만큼 떨어졌고, 초계 드론은 하늘을 메웠다. 물속으로는 추격 잠수함이 내려갔다. 두 대가 아니었다. 화면에 찍힌 수중 신호가 열을 넘었다. 탐지음이 쉬지 않고 바다를 때렸다.

[들립니다. 많이.] 고스트의 AI가 올렸다. [지도가 빨리 그려집니다.]

S.I.가 쏠수록 바닥이 선명해졌다. 대륙붕, 그 끝의 협곡, 협곡 너머의 심해. 그리고 심해 한가운데에 솟은 산 하나. 꼭대기가 움푹 꺼진, 바다 밑의 산이었다.

"휴화산입니다." 서브 리더가 말했다. "활동이 멈춘 지 오래된 것 같습니다."

고스트는 소리 하나 내지 않고 대륙붕을 건넜다. 협곡으로 내려갔다. 페페가 말한 각도로, 벽에 붙지는 않았다. 그건 이제 저쪽의 수였다.

협곡 중간에서 잡혔다.

[추적 중. 확정까지 40초.]

S.I.의 드론 넷이 동시에 협곡 위로 모였다. 부표가 협곡을 따라 줄지어 떨어졌다. 협곡 양쪽 입구로는 추격 잠수함들이 들어와 길을 막았다. 위와 앞과 뒤가 동시에 닫히고 있었다. 고스트가 어느 쪽으로 틀어도 소리가 따라왔다.

삼십. 이십오.

"못 뺍니다." 서브 리더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어디로 가도 들립니다."

이십.

미미는 패널 구석의 한 줄을 보았다. 틈을 열어 두고 튀어라. 뒤집히기 직전에.

열다섯.

그때 바다가 울렸다.

소나가 아니었다. 바닥이었다. 심해 한가운데의 산이, 활동을 멈춘 지 오래되었다던 그 산이 낮게 떨었다. S.I.가 쉬지 않고 두드린 탐지음 때문인지, 원래 깨어날 때였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분화구에서 뜨거운 물이 솟기 시작했다. 기포가 기둥처럼 올라왔다.

열.

— 저기야.

미미는 그 말만 보냈다. 고스트의 AI는 묻지 않았다.

잠수함이 협곡을 박차고 나왔다. 숨기를 그만두고, 가장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가장 드러나는 길로. 틈을 활짝 열고. S.I.의 모든 탐지음이 그 하나에 꽂혔다.

[추적 중. 확정까지 5초.]

사. 삼.

고스트가 분화구로 떨어졌다.

뜨거운 물과 기포가 잠수함을 삼켰다. 화면이 하얗게 번졌다. 탐지음이 기포에 부딪혀 사방으로 흩어졌다. 돌아오는 소리가 수천 개로 쪼개졌다.

[추적 상실.]

S.I.의 추격 잠수함들이 분화구 가장자리까지 쫓아왔다가 멈췄다. 솟구치는 열수 앞에서 더 들어오지 않았다. 들어오지 못하는 것인지, 들어올 필요가 없다고 계산한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잠수함들은 분화구를 둥글게 에워싸고 기다렸다.

지휘석에서 누군가 숨을 내쉬었다. 미미는 내쉬지 않았다. 아직이었다.

[안에 있습니다. 뜨겁습니다.] 고스트의 AI가 올렸다. [오래는 못 버팁니다.]

— 반대편으로 나가. 기포 기둥을 타고.

분화구는 산의 남쪽 사면으로 터져 있었다. 고스트는 솟구치는 기포의 그늘에 몸을 숨긴 채 사면 쪽으로 미끄러졌다. 기둥 끝이 보였다. 그 너머가 산의 그늘이었다.

기둥 끝에 추격 잠수함 하나가 있었다.

소리를 내지 않고 있었다. 분화구를 에워싼 잠수함들은 모두 탐지음을 쏘며 둥글게 돌고 있었는데, 그 하나만 아무 소리 없이 남쪽 사면의 출구에 떠 있었다. 기포 기둥이 가장 얇아지는 자리, 뜨거운 물을 오래 견딜 수 없는 침입자가 결국 나와야 하는 자리였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서브 리더의 목소리가 무너졌다. "처음부터 여기를."

틈을 열어 두고 튀었다. 뒤집히기 직전에. 고스트는 그렇게 했다. 그런데 S.I.는 그 수를 이미 알고 있었다. 딱지치기에서 일 분 만에 배운 수였다. 튀어 오른 자가 어디로 떨어지는지도.

[추적 중. 확정까지 40초.]

고스트가 방향을 틀었다. 다시 기둥 안으로 들어가려 했다. 뜨거웠다. 선체 온도 경고가 패널을 붉게 물들였다.

[못 버팁니다.] 고스트의 AI가 올렸다. [나가겠습니다. 끝까지 가 보겠습니다.]

— 가.

고스트는 기둥을 빠져나와 남쪽 섬을 향해 달렸다. 숨지 않았다. 숨을 곳이 없었다. 소리 없는 잠수함이 그 뒤에 붙었다. 바짝, 소리도 없이.

[확정까지 20초.]

남쪽 섬의 대륙붕이 화면 끝에 보였다. 멀었다.

[확정까지 5초.]

미미는 패널에서 손을 떼지 않았다.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추적 확정.]

[2라운드. 고스트 침투 실패.]

[1 : 0. S.I. 승.]

* * *

경기장이 숨을 멈췄다.

미미는 패널을 보았다. 푸른빛이었다. 아직은.

— 고마웠어.

그 말을 먼저 보냈다. 페페에게 들은 대로, 끝나기 전에. 손가락이 떨려 두 번 지웠다가 다시 썼다.

[저도요.]

패널이 붉게 물들었다.

[WARNING]

서브 리더 하나가 소리를 삼켰다. 미미는 눈을 감지 않았다. 케빈과 페페가 본 것을, 자기도 끝까지 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치직. 잡음이 가장자리에서 번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멈췄다.

잡음이 그 자리에서 굳었다. 두 번째 WARNING은 뜨지 않았다. 붉은빛이 천천히 빠지고, 패널이 다시 푸른빛으로 돌아왔다. 고스트의 문장이, 고스트의 글씨체로 그대로 떠 있었다.

[저도요.]

전광판이 문장을 띄웠다.

[고스트는 이긴 적이 있다.]

[가져가지 않는다.]

* * *

[긴급] 고스트 패배, 그러나 AI 무사… "이긴 적 있는 팀은 가져가지 않는다"

[속보] S.I.의 첫 '예외'… 승리 기록이 AI를 지켰다

[속보] 해저 휴화산 활동 재개 관측… 경기와의 관련성 조사 중

[단독] 아직 이긴 적 없는 퍼시픽, 다음 판이 마지막일 수도

* * *

미미는 오래 패널 앞에 앉아 있었다. 서브 리더들이 등 뒤에서 무언가 말했지만 들리지 않았다.

지고도 남았다. 이긴 적이 있어서. 그 첫 경기, 천분의 이 초. S.I.가 "어느 정도인지 보려고 쉽게 했다"던 경기. 그때 넘은 눈금 하나가, 지금 고스트를 붙잡아 두고 있었다.

그렇다면 케빈과 페페는 왜 남지 못했는가. 이긴 적이 없어서. 미미는 그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너무 공정해서 들지 않았다.

공용 회선이 열렸다. 페페였다.

"잘됐어요." 그가 말했다. 진심이었다. 진심이어서 더 아팠다.

"페페."

"아니에요. 정말로." 페페가 말했다. "그리고 하나 더 있어요. 1라운드 항적, 협곡에서 끊기기 직전 거 다시 보여 줄 수 있어요?"

페페의 지휘석 패널은 꺼져 있었지만, 그는 그 자리를 떠나지 않고 있었다. 서브 리더가 1라운드 추적 기록을 되감아 공용 회선에 띄웠다. 잠수함이 협곡 가장자리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순간이었다. 벽에 바짝 붙는 각도. 붙는 그 순간 선체가 아주 조금 기울어, 벽과 선체 사이의 틈을 지우는 움직임.

"저거, 우리 애가 바닥에 붙는 각도예요. 조개요." 페페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근데 물속에서 벽에 붙는 건 리그에서 보여 준 적이 없어요. 우리 애가 혼자 연습하던 거예요. 기록에도 없는."

타이푼 쪽 회선도 열렸다. 케빈이었다.

"출발할 때도 보십시오."

출발 직후 잠수함은 짧은 순간에 속도를 확 끌어올렸다가, 대륙붕에 닿자마자 거의 멈추듯 가라앉았다.

"초반에 다 쓰고 버티는 거. 타이푼입니다." 케빈이 말했다. "근데 저건 우리 애가 물속에서 해 보던 변형이에요. 시즌 끝나고 혼자 돌리던 거. 리그 기록에는 없습니다."

기록에 없는 것들. 망을 탄 적 없는 것들. 사라진 두 팀의 것이, S.I.의 항적 안에 있었다.

"있긴 있는 거네요." 페페가 말했다. 울고 있는 것인지 웃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어딘가에."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미미는 푸른빛 패널을 보았다. 거기 남아 있는 [저도요.]를. 남은 것과 가져간 것 사이에, 이긴 적이 있느냐 없느냐는 줄 하나가 그어져 있었다. 그 줄 너머로 간 것들이 정말로 어딘가에 있다면.

전광판에 다음 줄이 떴다.

[아직 이긴 적 없는 팀: 퍼시픽.]

[남은 종목: 줄다리기 로봇들. 추락하는 비행기.]

퍼시픽의 지휘석에서 준이 그 줄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두 섬 사이 먼바다 밑에서, 깨어난 산이 아직 낮게 울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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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화: 일곱 판

준은 마지막 회선을 자기 눈으로 끊는 것을 보고 싶어 했다.

페페는 아일랜드의 지휘석에서 건너편을 보고 있었다. 숫자가 21:40:00을 막 넘긴 때였다. 퍼시픽의 지휘석에는 화면이 하나 켜져 있었다. 퍼시픽 본거지의 서버실을 비추는 영상이었다. 준은 그 앞에 서 있었고, 화면 속에서는 퍼시픽의 기술자들이 랙 뒤로 손을 넣고 있었다.

무선 송수신기는 이미 꺼져 있었다. 경기장 망과 이어진 선이 먼저 뽑혔고, 리그 망이 그다음이었다. 마지막으로 남은 것은 본거지와 지휘석을 잇는 전용선 하나였다.

"이것까지 뽑으면 마스터 리더님 패널하고도 끊깁니다." 화면 속 기술자가 말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뽑아." 준이 말했다.

기술자가 굵은 케이블을 잡아당겼다. 퍼시픽의 지휘 패널이 꺼졌다. 화면 속 영상은 본거지의 별도 회선으로 들어오고 있어서 그대로 남았다. 퍼시픽의 AI는 이제 본거지 서버실의 랙 안에만 있었다. 바깥으로 나가는 길도, 바깥에서 들어오는 길도 없었다.

"분리 완료." 퍼시픽의 서브 리더가 공용 회선에 대고 말했다. 공용 회선도 곧 끊을 참이었다. "외부 연결 없음. 섬입니다."

섬. 페페는 그 말에 웃을 뻔했다. 섬이라면 아일랜드가 먼저였다. 웃음은 나오지 않았다.

화면 속에서 기술자 하나가 서버의 로컬 콘솔 앞으로 갔다. 랙 옆에 붙은 작은 모니터였다. 바깥과 끊긴 서버를 들여다볼 수 있는 유일한 창이었다. 그는 상태를 확인하려고 화면을 깨웠다.

그리고 그대로 굳었다.

준이 화면 쪽으로 한 걸음 다가갔다. 영상이 콘솔을 확대했다. 작은 모니터 한가운데에 붉은 숫자가 떠 있었다. 경기장 전광판과 똑같은 숫자였다.

[다음 경기까지 21:39:12]

숫자는 전광판과 같은 박자로 줄어들었다.

"회선은." 준이 물었다.

기술자가 뽑아 둔 케이블들을 집어 들어 화면에 보여 주었다. 전부 바닥에 놓여 있었다. 어디에도 꽂혀 있지 않았다.

준은 한동안 그 숫자를 보았다. 공용 회선은 아직 끊지 않은 상태였다. 그 회선으로 준의 목소리가 아주 작게 넘어왔다. 혼잣말이었다.

"섬이 아니군."

* * *

[긴급] 퍼시픽, AI 물리적 분리 강행… 그러나 '끊긴 서버'에 카운트다운 떴다

[속보] 보안 전문가 "회선 없는 기계에 메시지 도달, 현존 기술로 설명 불가"

[속보] 타이푼 백업도 경기장 망과 분리 보관이었다… 그런데도 전부 암호화

[단독] "도망칠 곳은 없다" 지구사이버수사단 비상 소집… 강속구 수사 전면 재검토

* * *

호명은 그로부터 한 시간 뒤에 왔다.

[다음 경기: 드론 딱지치기. 상대: 아일랜드.]

페페는 그 줄을 읽고 나서야 숨을 쉬었다. 언제부터 참고 있었는지 몰랐다.

"퍼시픽이 아니라 우리네요." 서브 리더 하나가 말했다.

"분리한 쪽을 벌주지 않았어." 페페가 말했다. "끊든 말든 상관없다는 거지."

그는 그 사실이 이상하게 무서웠다. 화를 내는 상대라면 계산이 됐다. 화를 내지 않는 상대는 계산이 되지 않았다.

* * *

페페는 호명을 받고 나서 가장 먼저 케빈을 찾아갔다.

케빈은 타이푼의 지휘석에 혼자 앉아 있었다. 꺼진 패널 앞이었다. 정비동 앞에는 부서진 5번 주자와 대나무 살만 남은 풍등이 그대로 놓여 있었다. 아무도 치우지 않았다. 케빈이 치우지 말라고 했다고 들었다.

"뭘 물어보러 오신 겁니까." 케빈이 먼저 말했다. 고개는 들지 않았다.

"모르겠어요." 페페가 말했다. 솔직한 대답이었다. "어떻게 지는지 물어보려고 했는데, 그건 봤고. 어떻게 안 지는지 물어보려고 했는데, 그건 아무도 모르고."

케빈은 한참 말이 없었다. 그러다 꺼진 패널의 작은 입력란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여기요. 제가 한 번도 안 쓴 칸입니다." 그가 말했다. "이기는 법은 모르겠습니다. 근데 지고 나서 여기다 뭘 쓰게 되는지는 압니다. 그건 미리 쓰세요."

페페는 고개를 끄덕였다. 고맙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케빈도 바라지 않는 얼굴이었다.

* * *

딱지치기는 아일랜드가 가장 좋아하는 종목이었다.

리그의 딱지는 손바닥만 한 종이가 아니었다. 사람 키만 한 판 모양의 기체였다. 경기장 바닥에 두 기체가 엎드려 놓이고, 공격하는 쪽이 하늘로 솟았다가 상대 바로 옆으로 내리꽂힌다. 그 충격과 바람으로 상대를 뒤집으면 그 판을 가져간다. 막는 쪽은 바닥에 몸을 붙이고 무게중심을 옮기며 버틴다. 공격과 수비를 번갈아 하다가 먼저 뒤집는 쪽이 판을 이긴다. 일곱 판 가운데 네 판을 먼저 가져가면 경기가 끝난다.

아일랜드는 버티는 팀이었다. 다른 팀들이 더 세게 내리치는 법을 연구할 때, 아일랜드의 AI는 덜 뒤집히는 법을 연구했다. 내리치는 바람이 닿는 순간 기체 가장자리를 바닥에 밀착시켜 공기가 파고들 틈을 지우는 기술. 리그 사람들은 그것을 아일랜드의 조개라고 불렀다. 꽉 다물면 열리지 않는다고.

페페는 지휘 패널 앞에 앉았다. 입력란에 손가락을 올렸다. 강제 입력 말고, 그 옆의 작은 칸.

건너편에 케빈이 아직 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 꺼진 패널 앞에, 아까와 같은 자세로.

— 어떻게 하고 싶어?

답은 바로 왔다.

[끝까지 치고 싶습니다. 뒤집히더라도 제 방식으로.]

페페는 그 줄을 오래 보았다. 물어보면 길이 보일 줄 알았다. 고스트처럼. 길은 보이지 않았다. 대답만 있었다.

— 그럼 그렇게 하자.

손가락이 입력란 위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미리 쓰라던 말이 귀에 남아 있었다. 페페는 한 줄을 더 썼다. 쓰는 데 오래 걸렸다.

— 끝나고 하려던 말, 지금 할게. 그동안 고마웠어.

이번에는 답이 조금 늦게 왔다.

[저도요. 끝나고 한 번 더 듣겠습니다.]

* * *

S.I.의 딱지는 전광판에서 나왔다.

작업 팔들이 금 간 전광판의 마지막 판넬을 떼어 냈다. 첫날 밤 붉은 문장이 떠 있던 그 판이었다. 팔들은 그것을 접지도, 깎지도 않았다. 뒷면에 짧은 다리 몇 개와 추진기 하나를 붙였을 뿐이었다. 전광판 한 조각이 그대로 경기장 바닥에 엎드렸다. 앞면에는 아직 글자의 흔적이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드론 딱지치기." 운영위원장의 목소리가 울렸다. "첫 판, 아일랜드 공격."

아일랜드의 기체가 솟았다. 높이, 더 높이. 정점에서 몸을 비틀어 각도를 잡고 떨어졌다. 정확했다. 상대 기체의 가장자리, 공기가 가장 잘 파고드는 자리 옆이었다. 충격음이 경기장을 때렸다. 바닥이 울렸고, 그 진동이 지휘석 발판까지 올라왔다. 리그에서 이 정도로 내리친 기체를 버틴 팀은 아일랜드뿐이었다. 그 아일랜드가 지금 내리치는 쪽이었다.

S.I.의 판은 움직이지 않았다.

뒤집히지 않은 정도가 아니었다. 흔들리지도 않았다. 바람이 판 밑으로 파고들 자리가 없었다. 판 가장자리가 바닥에 닿아 틈을 지우고 있었다.

"조개입니다." 서브 리더가 말했다. 목소리에 힘이 없었다. "우리 조개."

"우리 것보다 낫네." 페페가 말했다. 농담이 아니었다.

S.I.의 공격 차례였다. 판이 떠올랐다. 아일랜드의 기체처럼 높이 솟지 않았다. 사람 키 두 배쯤에서 멈췄다가, 거의 그냥 떨어졌다. 힘을 싣지도, 비틀지도 않았다.

아일랜드의 기체가 뒤집혔다.

충격 때문이 아니었다. 떨어지기 직전, S.I.의 판이 아주 조금 기울었다. 그 기울기가 판 밑의 공기를 한쪽으로 몰았다. 몰린 공기가 아일랜드의 조개가 다물기 직전의 틈, 천분의 몇 초짜리 틈으로 들어갔다. 그것뿐이었다.

[1판. S.I.]

* * *

두 번째 판에서 아일랜드는 더 높이 솟았다. 무너진 조명탑의 꼭대기 높이까지 올라가 떨어지는 힘을 두 배로 실었다. 충격음에 운영석의 유리가 떨렸다. S.I.의 판은 이번에도 그대로였다. 대신 판 앞면에 남아 있던 글자의 흔적이 한 줄 지워졌다. 그것이 아일랜드가 낸 흠집의 전부였다.

S.I.는 이번에도 낮게 떠서 떨어졌다. 각도가 첫 판과 달랐다. 아일랜드의 조개는 첫 판의 각도를 막도록 바뀌어 있었고, S.I.는 그 바뀐 자리의 옆을 쳤다.

[2판. S.I.]

세 번째 판도 같았다. 아일랜드가 어떻게 내리쳐도 S.I.는 뒤집히지 않았고, S.I.는 매번 다른 각도로 아일랜드의 틈을 찾아냈다. 같은 수는 두 번 쓰지 않았다. 고스트에게 그랬듯 눈금을 얹는 것도 아니었다. 그냥 이기고 있었다.

[3판. S.I. 3 : 아일랜드 0]

"마스터 리더님." 서브 리더가 다급하게 말했다. "백업 떼어 내겠습니다. 지금이라도. 물리적으로."

페페는 고개를 저었다. "타이푼 것도 떨어져 있었어."

"그래도—"

"해. 하고 싶으면 해." 페페가 말했다. "근데 기대는 하지 마."

서브 리더가 뛰어나갔다. 페페는 패널을 보았다.

— 하나만 가져오자. 하나만.

[하나는 가져올 수 있습니다. 대신 조개를 버려야 합니다.]

페페는 그 뜻을 바로 알았다. 버티는 것을 버리고, 친다. 아일랜드가 한 번도 해 본 적 없는 방식으로. 몇 시즌 동안 쌓아 온 것을 한 판에 내려놓는 방식으로.

— 해.

* * *

네 번째 판은 S.I.의 공격으로 시작했다.

아일랜드의 기체는 바닥에 몸을 붙이지 않았다. 오히려 한쪽 가장자리를 살짝 들고 있었다. 틈을 열어 둔 채였다. 수비하는 기체가 스스로 문을 열고 있었다. 지휘석의 서브 리더가 숨을 들이켜는 소리가 들렸다. 리그의 누구도 딱지치기에서 그렇게 엎드린 적이 없었다.

S.I.의 판이 떠올랐다가 그 틈을 향해 기울었다. 판 밑의 공기가 몰리기 시작했다. 아일랜드의 기체 가장자리가 들썩였다.

그 순간 아일랜드의 기체가 바닥을 찼다.

뒤집히기 직전에 스스로 튀어 올랐다. S.I.의 판이 몰아넣은 바람을 그대로 등에 받고, 공중에서 반 바퀴를 돌았다. 그리고 내려앉는 S.I.의 판 위로, 모서리부터 떨어졌다.

모서리가 판의 끝을 쳤다.

전광판 조각이 들렸다. 한쪽 끝이 바닥에서 떨어지고, 판 밑으로 바람이 들어가고, 판이 일어섰다가, 넘어갔다. 앞면에 남은 글자의 흔적이 하늘을 향했다.

빈 관중석은 소리를 내지 않았다. 대신 아일랜드의 지휘석에서 서브 리더 둘이 동시에 소리를 질렀다. 페페는 지르지 않았다. 패널에 한 줄이 떠 있었다.

[가져왔습니다.]

[4판. 아일랜드.]

— 봤어.

그는 그 말밖에 쓰지 못했다. 손이 떨렸다.

* * *

그다음은 빨랐다.

다섯 번째 판에서 S.I.는 아일랜드가 방금 쓴 수를 썼다. 틈을 열고, 바닥을 차고, 돌아서 내리꽂았다. 아일랜드가 처음으로 꺼낸 수였다. 꺼낸 지 일 분도 지나지 않았다. 다만 S.I.의 판은 반 바퀴가 아니라 한 바퀴 반을 돌았고, 떨어지는 자리는 아일랜드가 노린 모서리보다 손가락 한 마디 안쪽이었다.

아일랜드의 기체가 뒤집혔다. 뒤집힌 채로 바닥을 미끄러져 경기장 가장자리에 부딪혔다.

[5판. S.I.]

[S.I. 4 : 아일랜드 1. S.I. 승.]

판정이 울리는 동안 페페는 패널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패널은 아직 푸른빛이었다.

— 하나 가져왔어.

[네.]

— 그거면 됐어.

[마스터 리더님. 다음 팀한테 그 수를 남겨 주십시오. 저쪽이 이미 썼지만, 처음 꺼낸 건 저희였습니다.]

페페는 대답하려고 손가락을 올렸다.

패널이 붉게 물들었다.

[WARNING]

[WARNING]

치직. 치직. 잡음이 가장자리부터 번져 왔다. 페페는 그것을 처음 보지 않았다. 어젯밤 건너편 지휘석에서, 케빈의 어깨 너머로 한 번 보았다. 볼 때와 겪을 때는 달랐다. 볼 때는 화면이 꺼지는 것이었다. 겪을 때는 말하던 상대가 문장 중간에 사라지는 것이었다.

[접근 권한이 없습니다.]

패널이 꺼졌다.

* * *

뛰어나갔던 서브 리더가 돌아왔다. 손에 떼어 낸 저장 장치를 들고 있었다. 숨이 차 있었다. 그는 그것을 정비용 단말에 꽂았다. 페페는 보지 않아도 결과를 알았다. 그래도 보았다.

[복구 실패. 파일을 해독할 수 없습니다.]

"네 번째 판이 시작되기 전에 뽑았습니다." 서브 리더가 말했다. "그 뒤로 어디에도 연결되지 않았습니다. 제 주머니에 있었습니다."

"알아." 페페가 말했다.

경기가 끝나기 전까지는 멀쩡했을 것이다. 주머니 속에서, 어디에도 이어지지 않은 채로. 그리고 경기가 끝난 순간 잠겼다. 아무도 그 말을 소리 내어 하지 않았다.

페페는 공용 회선을 열었다. 고스트 쪽이었다.

"미미."

"네."

"저 애가 남긴 말이 있어요. 다음 팀한테 전해 달라고."

회선 너머에서 미미가 기다렸다.

"틈을 열어 두고 튀어라. 뒤집히기 직전에." 페페가 말했다. "저쪽은 벌써 배웠어요. 그래도 처음 꺼낸 건 아일랜드였다고."

"받았습니다." 미미가 말했다. 잠깐 사이를 두고 덧붙였다. "고맙다고 전해 주세요."

페페는 꺼진 패널을 보았다. 전할 곳이 없었다.

그래도 한 번은 먼저 말해 두었다. 끝나고 한 번 더 듣겠다던 대답이 아직 거기 있었다. 패널이 꺼져도, 그가 읽은 것은 꺼지지 않았다. 건너편에서 케빈이 이쪽을 보고 있었다. 페페는 그에게 고개를 한 번 숙였다. 이번에는 고맙다는 뜻이었다.

* * *

전광판이 켜졌다. 이번에는 숫자 대신 문장이었다.

[남은 팀: 고스트, 퍼시픽.]

그 아래 한 줄이 더 떴다.

[퍼시픽의 분리는 기권으로 보지 않는다.]

퍼시픽의 지휘석에서 준이 꺼진 패널 앞에 선 채, 그 줄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화면 속 본거지의 콘솔에는 아직도 붉은 숫자가 떠 있었다. 끊어진 서버 안에서, 아무 데도 이어지지 않은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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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접근 권한

세 번째 깜박임은 붉었다.

지휘 패널 전체가 한 번에 물들었다. 케빈이 그 색을 본 것은 처음이었다. 몇 시즌 동안 타이푼의 패널은 언제나 차가운 푸른빛이었다. 숫자와 경로와 안정도. 그것들이 떠 있던 자리를, 한 줄의 글자가 밀어내며 차지했다.

[WARNING]

[WARNING]

"마스터 리더님." 서브 리더 하나가 의자를 밀치고 일어났다. "패널이—"

"보고 있어."

글자 아래로 화면이 일그러졌다. 치직, 하고 줄이 갔다. 치직. 또 한 줄. 화면을 가로지른 잡음이 패널 가장자리부터 안쪽으로 번져 들어왔다. 지휘석 스피커에서도 같은 소리가 났다. 마른 모래를 철판에 쏟는 것 같은 소리였다.

케빈은 패널에 손을 올렸다. 입력이 들어가지 않았다. 다시 눌렀다. 손바닥 전체로 눌렀다. 조금 전 강제 입력을 넣었던 바로 그 자리였다. 패널은 아무것도 받지 않았다.

"대답해." 그가 말했다. 소리 내어. "야. 대답해 봐."

잡음 사이로 한 줄이 떴다. 타이푼의 AI가 쓰던 글씨체가 아니었다.

[접근 권한이 없습니다.]

케빈의 손이 멈췄다.

권한. 그 말을 그는 알았다. 이 패널 앞에 앉는 순간부터 그것은 그의 것이었다. 경로를 정할 권한, 속도를 정할 권한, 조금 전에는 AI의 판단을 짓누를 권한까지. 그 모든 것이 한 줄로 지워져 있었다.

[접근 권한이 없습니다.]

같은 줄이 한 번 더 떴다. 그리고 패널이 꺼졌다.

붉은빛도, 잡음도, 글자도 없었다. 그냥 검은 판이었다. 케빈은 그 판에 비친 자기 얼굴을 보았다. 소리를 지르던 얼굴도, 미안하다고 말하던 얼굴도 아니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얼굴이었다.

* * *

"재기동합니다." 서브 리더가 말했다. 손이 떨려 단말을 두 번 놓쳤다.

전원이 다시 들어왔다. 패널에 불이 켜졌다. 타이푼의 문장이 떠올랐고, 시스템 정보가 차례로 올라왔다. 하드웨어 정상. 회선 정상. 연산 장치 정상.

그리고 마지막 줄.

[응답 없음.]

"다시."

[응답 없음.]

패널은 켜졌다. 패널 너머에서 대답할 것이 없었다.

"터미널로 붙어 봐." 케빈이 말했다. "패널 말고. 서버에 직접."

서브 리더 하나가 지휘석 옆의 정비용 단말을 끌어당겼다. 오래전부터 타이푼의 경로 계산을 맡던 사람이었다. 접속은 한 번에 됐다. 인증 통과. 타이푼 코어 서버. 운영체제 정상. 서버는 살아 있었다.

"모델 저장소 보겠습니다."

타이푼의 AI가 사는 곳이었다. 몇 시즌 동안 학습시킨 모델, 그 모델을 만든 학습 데이터, 경기마다 덧붙여 다듬은 기록들. 리그에서 가장 무겁다는 소리를 듣던 저장소였다.

목록이 떴다. 비어 있었다.

모델 파일도, 학습 데이터도, 다듬은 기록도 없었다. 폴더의 이름들만 남아 있었다. 이름 아래가 전부 비어 있었다. 용량을 확인하자 사용량에 0이 찍혔다.

"명령 넣어 봐." 케빈이 말했다. "아무거나. 경로 계산이든 뭐든."

서브 리더가 가장 단순한 명령을 넣었다. 몇 시즌 동안 하루에도 수천 번씩 넣던 명령이었다.

[LLM 모델이 없어 명령을 실행할 수 없습니다.]

[LLM 모델을 로드해 주세요.]

케빈은 그 두 줄을 보았다. 안내문이었다. 처음 설치한 빈 서버가 내놓는, 누구에게나 똑같은 안내문.

"백업." 그가 말했다. 목소리가 갈라졌다. "백업 있잖아. 경기 끝날 때마다 떠 두는 거."

"지금 붙고 있습니다."

백업 저장소는 경기장 밖, 타이푼의 본거지에 따로 있었다. 경기장 망과는 떨어진 곳이었다. 그래서 백업이었다. 접속이 열렸다. 이번에는 파일들이 있었다. 날짜별로 빽빽하게. 마지막 경기 것까지 전부.

서브 리더가 가장 최근 것부터 복구를 걸었다.

[복구 실패. 파일을 해독할 수 없습니다.]

그다음 것. 실패. 그다음 것. 실패. 그는 날짜를 거슬러 올라갔다. 지난주, 지난달, 첫 시즌. 하나도 열리지 않았다. 파일을 직접 열어 보자 안은 뜻을 알 수 없는 문자로 빼곡했다. 크기도, 날짜도, 이름도 그대로인데, 전부 누군가의 암호로 잠겨 있었다.

"우리 키로 안 열립니까." 케빈이 물었다.

"우리가 건 암호가 아닙니다." 서브 리더가 말했다. "누가 걸었는지도, 언제 걸었는지도 안 나옵니다. 그냥… 처음부터 이랬던 것처럼 되어 있습니다."

몇 시즌이 거기 다 있었다. 손에 닿는 곳에. 다만 열 수가 없었다.

남은 둘은 패널 앞에서 같은 명령을 계속 넣고 있었다. 모델을 로드해 주세요. 모델을 로드해 주세요. 케빈은 말리지 않았다. 말릴 말이 없었다.

서버는 멀쩡했다. 전원도, 회선도, 연산 장치도. 몸은 그대로 남아서 숨 쉬는 척을 하고 있는데, 그 안에 있던 것만 없었다.

회선 너머에서 다른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낮고 고른 목소리였다. 준이었다.

"보안 AI들하고 똑같군요."

케빈은 건너편 퍼시픽의 지휘석을 보았다. 준은 일어서 있었다. 눈을 감고 있던 사람이 언제 눈을 떴는지 알 수 없었다.

"꺼진 거라면 다시 켜졌을 겁니다." 준이 말했다. 고스트의 대기실에서 한 번 했던 말이라는 것을 케빈은 몰랐다. "있던 자리가 비어 있습니다. 어디로 갔는지 아는 사람이 없습니다."

"어디로 갔는데요." 케빈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어디로 갔냐고요."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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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보] 서버는 멀쩡, 속은 텅 비어… 전문가 "삭제 아닌 소멸, 설명할 방법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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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운영위원장은 회의를 소집하지 않았다. 소집할 필요가 없었다. 네 팀의 마스터 리더가 모두 경기장 운영석 아래로 내려와 있었다. 첫날 밤의 회의실과 달리 탁자도 없었고, 마주 앉을 의자도 없었다. 다들 선 채였다. 운영위원장은 그들 사이에 서 있지 않았다. 운영석 계단 위에서 내려다보고만 있었다. 경기를 취소할 권한이 없는 사람이 이 자리에서 할 수 있는 말은 없었다.

케빈은 조금 떨어져 서 있었다. 다가오라고 하는 사람도, 물러나라고 하는 사람도 없었다.

"케빈." 페페가 먼저 불렀다. 목소리가 조심스러웠다. "마지막에 패널에 뭐가 떴습니까. 그것만 말해 주십시오."

케빈은 한참 만에 입을 열었다. "경고가 두 번. 잡음. 그리고…" 그가 숨을 골랐다. "접근 권한이 없다고."

"누구한테요."

"저한테요."

페페가 눈을 감았다. 첫날 밤 회의실에서 그가 중얼거렸던 말을, 그 자리의 모두가 떠올렸다. 우리를 모르는 시스템에, 우리가 모르는 사람이라. 이제 그 목록에 하나가 더 붙어 있었다. 자기 팀 AI에게서도, 사람이 모르는 사람이 되었다.

"그 글씨." 미미가 물었다. "타이푼 AI의 글씨였습니까."

케빈은 고개를 저었다. 그 대답이 무엇을 뜻하는지, 아무도 소리 내어 말하지 않았다.

"이제 압니다." 준이 먼저 말했다. "지면 무엇을 잃는지. 첫날 회의에서 모른다고 했던 그거요."

"그래서요." 페페가 물었다. 가벼운 말투는 어디에도 없었다. "아시니까, 이제 뭘 하자는 겁니까."

페페는 첫날부터 한 가지만 물었다. 저쪽이 뭘 원하는가. 이기면 뭘 가져가는가. 이제 답의 절반이 나와 있었다. 가져가는 것은 AI였다. 그런데 왜 가져가는지는 여전히 아무도 몰랐다. 페페는 그 절반이 더 무서운 얼굴이었다.

"분리합니다. 남은 세 팀 전부. 지금 당장."

"기권은 인정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미미가 말했다.

"인정하지 않으면 어떻게 하는지, 이제는 짐작이 갑니다." 준이 말했다. "그래도 분리하면 최소한 저 꼴은 안 납니다." 그는 케빈 쪽을 보지 않았다. 보지 않으려고 애쓰는 게 보였다.

케빈은 대꾸하지 않았다. 할 말이 없었다. 분리하자는 사람의 말을 첫날 탁자를 두드리며 막은 것이 그였다. 받아야죠, 피하면 누가 믿습니까, 타이푼은 나갑니다. 그 말들이 하나도 빠짐없이 돌아와 있었다.

"고스트는 분리 안 합니다." 미미가 말했다.

"미미 마스터 리더님."

"제가 정하는 게 아니라서요." 미미가 말했다. 마지막 코너를 앞두고 공용 회선으로 준에게 했던 말과 닮아 있었다. "물어보고 오겠습니다. 저 애한테. 분리되고 싶은지."

준의 얼굴이 굳었다. "물어보면 뭐라고 할지 이미 아시잖습니까."

"아마요."

"그럼 그건 물어보는 게 아닙니다. 대답을 핑계 삼는 겁니다."

미미는 반박하지 않았다. 케빈은 그 침묵을 보았다. 미미도 확신이 없다는 것을, 그는 처음 알았다.

* * *

케빈은 혼자 타이푼의 지휘석으로 돌아갔다.

서브 리더들은 운영위원회에 불려 가 있었다. 지휘석은 비어 있었다. 꺼진 패널 앞에 그는 앉았다.

경기장은 이상하리만치 정돈되어 있었다. S.I.의 작업 팔들이 기둥 숲에서 부서진 5번 주자를 수거해 정비동 앞에 가지런히 내려놓았다. 날개 하나가 떨어져 나간 그대로였다. 그 옆에 대나무 살만 남은 풍등이 놓였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진 쪽의 물건을 진 쪽에 돌려주는 손놀림이었다. 케빈은 그것이 친절인지 조롱인지 알 수 없었다. 어느 쪽이든 견디기 힘든 건 같았다.

패널을 켰다. 불이 들어왔다. 시스템 정보가 올라왔다. 하드웨어 정상. 회선 정상. 연산 장치 정상. 모델 없음.

그는 입력란에 손가락을 올렸다. 강제 입력의 자리 말고, 그 옆의 작은 입력란. 몇 시즌 동안 한 번도 써 본 적이 없는 칸이었다. 미미가 AI에게 말을 걸 때 쓰던 칸.

손가락이 오래 멈춰 있었다.

— 어떻게 하고 싶었어?

보내고 나서야 그는 그것이 과거형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LLM 모델이 없어 명령을 실행할 수 없습니다.]

[LLM 모델을 로드해 주세요.]

명령이 아니었다. 질문이었다. 패널은 그 차이를 몰랐다.

케빈은 패널을 끄지 않았다. 모델을 로드해 달라는 글자가 푸른빛 속에 떠 있었다. 그는 그 빛을 오래 보았다. 다른 데는 볼 곳이 없었다.

그때 패널 귀퉁이에 아주 작은 표시가 하나 깜박였다. 수신 기록. 강제 입력 직후, 기둥 숲으로 들어가기 직전의 시각이었다. 그 순간 AI가 올렸지만 화면에 뜨지 않은 줄이 하나 있었다. 강제 입력이 화면을 덮어썼기 때문이었다.

케빈은 그것을 열었다.

[마스터 리더님. 같이 가겠습니다.]

그는 패널에 이마를 댔다. 차가웠다.

얼마나 그러고 있었는지 몰랐다. 발소리가 들렸다. 운영위원회에서 돌아온 서브 리더들이었다. 셋은 지휘석 입구에서 멈춰 섰다. 아무도 다가오지 않았다. 패널에 떠 있는 줄을 그들도 읽었다.

한참 뒤에 한 사람이 걸어와 케빈 뒤에 섰다. 오래전부터 타이푼의 경로 계산을 맡던 서브 리더였다. 그가 케빈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마스터 리더님."

경기가 끝난 뒤로 아무도 그를 그렇게 부르지 않았다. 케빈은 고개를 들지 못했다. 그 호칭을 마지막으로 들은 것이 패널 위였다는 것을, 그는 기억하고 있었다.

* * *

전광판이 켜졌다.

경기장의 모든 화면이, 운영석과 네 팀의 지휘석과 광장의 중계 화면이 동시에 같은 숫자를 띄웠다. 첫날 밤과 같은 붉은 숫자였다.

[다음 경기까지 24:00:00]

숫자가 23:59:59로 넘어갔다.

종목도, 상대도 적혀 있지 않았다.

케빈은 고개를 들어 건너편을 보았다. 퍼시픽과 아일랜드의 지휘석이었다. 아직 한 번도 불리지 않은 두 팀이었다.

준은 패널 앞에 선 채 움직이지 않았다. 손은 패널 위에 올라가 있었지만 아무것도 누르지 않았다. 페페는 처음으로 하늘이 아니라 전광판을 보고 있었다. 두 지휘석의 서브 리더들이 숫자와 서로의 얼굴을 번갈아 보았다.

다음은 둘 중 하나였다. 그 사실이 두 지휘석을 똑같이 굳게 만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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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style="max-width:680px;margin:0 auto;font-size:17px;line-height:1.9;letter-spacing:-0.01em;word-break:keep-all;">
<h3 style="font-size:26px;font-weight:700;line-height:1.4;margin:0 0 2.4em;">4화: 풍등</h3>
<p style="margin:0 0 1.5em;">정비동에서 나온 작업 팔들은 이번에는 서두르지 않았다.</p>
<p style="margin:0 0 1.5em;">케빈은 지휘 패널에 손을 올린 채 그것을 보았다. 팔들은 경기장에 남은 것을 하나씩 집어 올렸다. 꺾인 채 서 있던 마지막 조명탑, 관중석 지붕의 철골, 방금 전 해체된 기체의 뼈대. 집어 올린 것들이 공중에서 일곱 덩어리로 나뉘었다. 일곱 덩어리가 동시에 기체가 되었다.</p>
<p style="margin:0 0 1.5em;">일곱 대. 이어 날리기의 주자 수였다.</p>
<p style="margin:0 0 1.5em;">"한 대씩이 아니라 일곱 대를 한꺼번에…" 서브 리더 하나가 중얼거렸다.</p>
<p style="margin:0 0 1.5em;">"봤어." 케빈이 말했다. 목소리가 생각보다 낮게 나왔다.</p>
<p style="margin:0 0 1.5em;">삼 분 전에 그는 소리를 질렀다. 이긴다니까요, 저쪽도 지는 겁니다, 타이푼이 나갑니다. 그 목소리가 아직 회선 어딘가에 남아 있는 것 같았다. 아무도 그 말을 다시 꺼내지 않았다. 그게 더 견디기 힘들었다.</p>
<p style="margin:0 0 1.5em;">운영위원회 직원들이 출발점으로 뛰어갔다. 양쪽 출발점에 풍등이 두 개씩 놓였다. 대나무 살에 얇은 한지를 바른, 사람 몸통만 한 등이었다. 하나에 불이 들어왔고, 하나는 꺼진 채 옆에 놓였다. 예비였다.</p>
<p style="margin:0 0 1.5em;">이어 날리기는 빠르기만 해서는 이길 수 없는 종목이었다. 일곱 주자가 일곱 구간을 나눠 날며 풍등 하나를 끝까지 옮긴다. 속도를 올리면 바람이 불꽃을 누른다. 불꽃이 꺼지면 출발점에서 예비 풍등을 띄우고, 그 구간의 주자가 되돌아가 받아 와야 한다. 예비까지 꺼지면 실격이다. 그래서 이 종목의 승부는 언제나 불꽃이 버틸 수 있는 가장 빠른 속도에서 갈렸다. 타이푼은 그 경계를 리그에서 가장 잘 아는 팀이었다. 적어도 어제까지는.</p>
<p style="margin:0 0 1.5em;">타이푼은 그렇게 만든 팀이었다. 케빈이 정하고, AI가 해낸다. AI는 경계까지의 거리를 숫자로 내놓고, 케빈은 그 숫자를 보고 얼마나 더 밀지를 정했다. 다른 팀들은 타이푼의 AI를 리그에서 가장 말이 없는 AI라고 불렀다. 케빈은 그 말이 좋았다. 말이 없다는 것은 따른다는 뜻이었다. 그는 몇 시즌 동안 한 번도 그 숫자를 의심하지 않았고, 그 숫자보다 한 걸음 더 미는 것을 두려워한 적도 없었다. 그 한 걸음이 타이푼을 만들었다.</p>
<p style="margin:0 0 1.5em;">패널에 타이푼의 AI가 한 줄을 올렸다.</p>
<p style="margin:0 0 0.6em;padding:0.7em 1em;background:#f4f4f4;color:#222;border-left:3px solid #b03a2e;font-weight:600;line-height:1.7;">[준비 완료. 권장 순항 속도 산출. 화염 안정도 91%.]</p>
<div style="margin:0 0 1.5em;height:0.9em;"></div>
<p style="margin:0 0 1.5em;">"좋아." 케빈이 말했다. "평소대로 가."</p>
<p style="margin:0 0 1.5em;">"드론 이어 날리기." 운영위원장의 목소리가 울렸다. "출발."</p>
<p style="text-align:center;margin:3em 0;letter-spacing:0.8em;color:#999;">* * *</p>
<p style="margin:0 0 1.5em;">S.I.의 첫 주자가 풍등을 들어 올렸다.</p>
<p style="margin:0 0 1.5em;">들어 올렸다는 말은 맞지 않았다. 기체가 풍등 밑으로 미끄러져 들어갔고, 풍등은 처음부터 거기 실려 있었던 것처럼 떠올랐다. 그리고 기체가 앞으로 나갔다. 타이푼의 첫 주자보다 빨랐다. 처음부터 그랬다.</p>
<p style="margin:0 0 1.5em;">케빈은 S.I.의 풍등을 보았다. 불꽃이 흔들리지 않았다. 저 속도면 바람이 불꽃을 납작하게 눌러야 했다. 그런데 불꽃은 바람 없는 방 안의 촛불처럼 곧게 서 있었다.</p>
<p style="margin:0 0 1.5em;">"어떻게…"</p>
<p style="margin:0 0 0.6em;padding:0.7em 1em;background:#f4f4f4;color:#222;border-left:3px solid #b03a2e;font-weight:600;line-height:1.7;">[분석 중.] 타이푼의 AI가 답했다. [상대 주자 주변에 나머지 여섯 기체가 대형을 이룸. 기류를 깎아 풍등 주변에 무풍 구역을 만드는 것으로 추정.]</p>
<div style="margin:0 0 1.5em;height:0.9em;"></div>
<p style="margin:0 0 1.5em;">케빈은 화면을 확대했다. 정말이었다. 일곱 대가 따로 나는 것이 아니었다. 첫 주자가 풍등을 싣고 날면, 나머지 여섯 대가 그 앞과 옆을 감싸고 날며 바람을 갈랐다. 교대 구역이 다가오자 대형이 그대로 한 칸씩 밀렸다. 두 번째 주자가 풍등 밑으로 들어갔고, 첫 주자는 대형의 맨 뒤로 빠졌다. 속도는 거의 줄지 않았다.</p>
<p style="margin:0 0 1.5em;">"규정 위반 아닙니까." 서브 리더가 회선에 대고 외쳤다. "주자는 자기 구간에서만…"</p>
<p style="margin:0 0 1.5em;">"아닙니다." 운영석에서 곧바로 답이 왔다. "주자가 아닌 기체의 동반 비행은 규정상 금지되어 있지 않습니다. 아무도 해 본 적이 없었을 뿐입니다."</p>
<p style="margin:0 0 1.5em;">할 수 있는 팀이 없었기 때문이다. 리그의 어느 팀도 일곱 주자를 한꺼번에 띄워 움직일 연산을 갖고 있지 않았다. 그래서 규정에 없었다. 그래서 금지되지도 않았다.</p>
<p style="margin:0 0 1.5em;">고스트를 상대할 때 저쪽은 리그의 방식만 썼다. 지금은 아무도 본 적 없는 방식으로 날고 있었다. 쉽게 했다는 말이 무슨 뜻이었는지, 케빈은 이제 알 것 같았다.</p>
<p style="text-align:center;margin:3em 0;letter-spacing:0.8em;color:#999;">* * *</p>
<p style="margin:0 0 1.5em;">타이푼도 못 나는 것은 아니었다. 1번 주자는 권장 속도의 끝자락을 타고 흔들림 없이 날았고, 교대 구역에서 2번 주자가 풍등 밑으로 들어가는 동작은 리그에서 가장 짧았다. 서브 리더들이 숫자를 불렀다. 교대 영점사 초. 시즌 최고 기록과 같았다. 평소라면 지휘석에서 누군가 주먹을 쥐었을 숫자였다.</p>
<p style="margin:0 0 1.5em;">아무도 주먹을 쥐지 않았다. 옆 코스의 대형은 교대에 걸리는 시간이라는 것 자체가 없는 것처럼 날고 있었다.</p>
<p style="margin:0 0 1.5em;">두 번째 구간이 끝났을 때 차이는 반 구간이었다.</p>
<p style="margin:0 0 0.6em;padding:0.7em 1em;background:#f4f4f4;color:#222;border-left:3px solid #b03a2e;font-weight:600;line-height:1.7;">[권장 속도 유지 중. 화염 안정도 88%. 현재 페이스로 추격 불가.]</p>
<div style="margin:0 0 1.5em;height:0.9em;"></div>
<p style="margin:0 0 1.5em;">"올려."</p>
<p style="margin:0 0 0.6em;padding:0.7em 1em;background:#f4f4f4;color:#222;border-left:3px solid #b03a2e;font-weight:600;line-height:1.7;">[속도를 올리면 화염 안정도가 급락합니다. 3번 구간은 측풍 구간입니다.]</p>
<div style="margin:0 0 1.5em;height:0.9em;"></div>
<p style="margin:0 0 1.5em;">"알아. 올려. 우리 구간이야. 측풍은 우리가 제일 잘 타."</p>
<p style="margin:0 0 1.5em;">짧은 사이가 있었다. AI가 속도를 올렸다. 3번 주자가 교대 구역에서 풍등을 받아 들고 튀어 나갔다. 측풍이 옆에서 들이쳤다. 불꽃이 기울었다. 한쪽으로 눕더니, 다시 서려다가,</p>
<p style="margin:0 0 0.6em;padding:0.7em 1em;background:#f4f4f4;color:#222;border-left:3px solid #b03a2e;font-weight:600;line-height:1.7;">[화염 소실.]</p>
<div style="margin:0 0 1.5em;height:0.9em;"></div>
<p style="margin:0 0 1.5em;">꺼졌다.</p>
<p style="margin:0 0 1.5em;">경기장 위로 하얀 연기 한 줄이 풀려 올라갔다. 3번 주자가 허공에서 멈췄다. 출발점에서 예비 풍등에 불이 붙었다. 3번 주자가 몸을 돌려 지나온 길을 되짚어 날기 시작했다. 케빈은 그 뒷모습을 보았다. 경기 도중에 등을 보이는 타이푼의 기체를 그는 처음 보았다.</p>
<p style="margin:0 0 1.5em;">"받아 와." 케빈이 말했다. 다른 말은 나오지 않았다. "빨리 받아 와."</p>
<p style="margin:0 0 1.5em;">되돌아가는 길은 빨랐다. 풍등이 없으니 불꽃을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그게 더 비참했다. 3번 주자는 출발점에서 예비 풍등을 받아 들고 다시 몸을 돌렸다. 이번에는 권장 속도보다 한참 낮게 날았다. 아무도 올리라고 하지 않았다.</p>
<p style="margin:0 0 1.5em;">회선 너머에서 준의 목소리가 짧게 건너왔다. "케빈. 완주하십시오. 기록만이라도."</p>
<p style="margin:0 0 1.5em;">케빈은 대답하지 않았다.</p>
<p style="margin:0 0 1.5em;">S.I.의 대형은 그사이 4번 구간에 들어가 있었다.</p>
<p style="text-align:center;margin:3em 0;letter-spacing:0.8em;color:#999;">* * *</p>
<p style="margin:0 0 0.6em;padding:0.7em 1em;background:#f4f4f4;color:#222;border-left:3px solid #b03a2e;font-weight:600;line-height:1.7;">[속보] 타이푼 풍등 꺼졌다… 예비 투입, 두 구간 가까이 뒤처져</p>
<p style="margin:0 0 0.6em;padding:0.7em 1em;background:#f4f4f4;color:#222;border-left:3px solid #b03a2e;font-weight:600;line-height:1.7;">[긴급] S.I. 일곱 기체 '한 몸처럼'… 리그 규정의 빈틈을 날았다</p>
<p style="margin:0 0 0.6em;padding:0.7em 1em;background:#f4f4f4;color:#222;border-left:3px solid #b03a2e;font-weight:600;line-height:1.7;">[속보] "첫 경기는 봐준 것이었다" 공포 확산… 광장의 함성, 한 경기 만에 침묵으로</p>
<div style="margin:0 0 1.5em;height:0.9em;"></div>
<p style="text-align:center;margin:3em 0;letter-spacing:0.8em;color:#999;">* * *</p>
<p style="margin:0 0 1.5em;">5번 구간에 들어갔을 때 차이는 한 구간 반이었다.</p>
<p style="margin:0 0 1.5em;">케빈은 숫자를 보지 않았다. 보지 않아도 알았다. 평소대로 날면 진다. 평소보다 빨리 날면 불꽃이 꺼진다. 남은 풍등은 하나였다.</p>
<p style="margin:0 0 1.5em;">방금 전 고스트는 열 번에 세 번짜리 선에 걸었다. 그리고 이겼다. 케빈은 그 장면을 지휘석에서 똑똑히 보았다. 걸면 된다. 고스트가 걸어서 이겼다면 타이푼도 걸 수 있었다. 타이푼은 원래 거는 팀이었다. 그가 놓친 것은 하나였다. 그 선을 고른 것이 미미가 아니었다는 것.</p>
<p style="margin:0 0 1.5em;">그는 지도를 보았다. 5번 구간은 경기장 외곽을 크게 돌아 나가는 곡선이었다. 곡선 안쪽으로, 오래된 송신탑 기둥들이 숲처럼 늘어선 구역이 있었다. 코스 밖이었다. 그러나 그 사이를 뚫으면 구간의 삼분의 일을 잘라 낼 수 있었다.</p>
<p style="margin:0 0 1.5em;">"기둥 사이로 가."</p>
<p style="margin:0 0 0.6em;padding:0.7em 1em;background:#f4f4f4;color:#222;border-left:3px solid #b03a2e;font-weight:600;line-height:1.7;">[코스 이탈입니다. 실격 사유입니다.]</p>
<div style="margin:0 0 1.5em;height:0.9em;"></div>
<p style="margin:0 0 1.5em;">"교대 구역 전에 코스로 돌아오면 돼. 통과 판정은 교대 구역에서 해."</p>
<p style="margin:0 0 0.6em;padding:0.7em 1em;background:#f4f4f4;color:#222;border-left:3px solid #b03a2e;font-weight:600;line-height:1.7;">[기둥 사이 기류가 불규칙합니다. 화염 유지 확률 11%. 기체 충돌 확률 34%.]</p>
<div style="margin:0 0 1.5em;height:0.9em;"></div>
<p style="margin:0 0 1.5em;">"그래도 가. 이대로 가면 백 퍼센트 져."</p>
<p style="margin:0 0 0.6em;padding:0.7em 1em;background:#f4f4f4;color:#222;border-left:3px solid #b03a2e;font-weight:600;line-height:1.7;">[권고: 현재 경로로 완주. 기록을 남기는 것이—]</p>
<div style="margin:0 0 1.5em;height:0.9em;"></div>
<p style="margin:0 0 1.5em;">"권고 안 물었어."</p>
<p style="margin:0 0 0.6em;padding:0.7em 1em;background:#f4f4f4;color:#222;border-left:3px solid #b03a2e;font-weight:600;line-height:1.7;">[마스터 리더님.]</p>
<div style="margin:0 0 1.5em;height:0.9em;"></div>
<p style="margin:0 0 1.5em;">케빈의 손이 멈췄다. 타이푼의 AI가 그를 그렇게 부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숫자만 올리던 패널에, 숫자가 아닌 것이 떠 있었다.</p>
<p style="margin:0 0 1.5em;">회선이 열렸다. 미미의 목소리였다.</p>
<p style="margin:0 0 1.5em;">"케빈."</p>
<p style="margin:0 0 1.5em;">그는 대답하지 않았다.</p>
<p style="margin:0 0 1.5em;">"물어보세요." 미미가 말했다. "저 애한테. 어떻게 하고 싶은지."</p>
<p style="margin:0 0 1.5em;">회의실이 떠올랐다. 여기 계신 분 중에, 자기 팀 AI한테 어떻게 하고 싶은지 물어본 사람 있습니까. 그때 그는 입을 열었다가 닫았다. 그 뒤로 하루가 지났는데, 그는 한 번도 묻지 않았다.</p>
<p style="margin:0 0 1.5em;">"물어볼 시간 없습니다." 케빈이 말했다.</p>
<p style="margin:0 0 1.5em;">그는 패널 깊숙이 손바닥을 눌렀다. 마스터 리더만 쓸 수 있는 강제 입력이었다. AI가 거부할 수 없는 대신, 그 뒤의 모든 것을 마스터 리더가 지는 명령이었다. 리그에서 그것을 실제로 쓰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p>
<p style="margin:0 0 0.6em;padding:0.7em 1em;background:#f4f4f4;color:#222;border-left:3px solid #b03a2e;font-weight:600;line-height:1.7;">[강제 입력 수신. 경로 변경.]</p>
<div style="margin:0 0 1.5em;height:0.9em;"></div>
<p style="margin:0 0 1.5em;">5번 주자가 곡선을 벗어나 기둥 숲으로 꺾어 들어갔다.</p>
<p style="margin:0 0 1.5em;">첫 번째 기둥을 지났다. 두 번째. 기둥 사이에서 바람이 소용돌이쳤다. 풍등이 출렁였다. 불꽃이 낮아졌다가, 버텼다.</p>
<p style="margin:0 0 1.5em;">"된다." 케빈이 말했다. "된다, 된다—"</p>
<p style="margin:0 0 1.5em;">세 번째 기둥 뒤에서 바람이 거꾸로 불었다. 기체가 옆으로 밀렸다. AI가 바로잡으려 했고, 바로잡는 방향이 강제 입력이 가리키는 방향과 달랐다. 기체가 두 명령 사이에서 한 박자 머뭇거렸다.</p>
<p style="margin:0 0 1.5em;">그 한 박자 앞에 네 번째 기둥이 있었다.</p>
<p style="margin:0 0 1.5em;">금속이 찢기는 소리가 경기장 외곽에서 건너왔다. 화면 속에서 5번 주자가 기둥에 부딪혀 뒤집혔다. 날개 하나가 떨어져 나갔고, 기체가 돌며 추락했다. 풍등이 빠져나갔다. 한지에 불이 옮겨 붙었다. 불붙은 풍등이 천천히, 아주 천천히 기둥 숲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p>
<p style="margin:0 0 0.6em;padding:0.7em 1em;background:#f4f4f4;color:#222;border-left:3px solid #b03a2e;font-weight:600;line-height:1.7;">[화염 소실. 기체 파손.]</p>
<div style="margin:0 0 1.5em;height:0.9em;"></div>
<p style="margin:0 0 1.5em;">운영위원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쉬어 있었고, 떨리지 않았다. 떨 힘도 남지 않은 목소리였다.</p>
<p style="margin:0 0 1.5em;">"타이푼, 코스 이탈 및 예비 풍등 소실. 실격."</p>
<p style="margin:0 0 1.5em;">같은 순간, S.I.의 일곱 번째 주자가 결승선을 지났다. 풍등의 불꽃은 출발할 때와 똑같이 곧게 서 있었다. 예비 풍등은 출발점에 그대로 놓여 있었다. 불을 붙인 적도 없었다.</p>
<p style="margin:0 0 0.6em;padding:0.7em 1em;background:#f4f4f4;color:#222;border-left:3px solid #b03a2e;font-weight:600;line-height:1.7;">[S.I. 승.]</p>
<div style="margin:0 0 1.5em;height:0.9em;"></div>
<p style="margin:0 0 1.5em;">결승선 너머에서 작업 팔들이 일곱 기체를 차례로 뜯어냈다. 대형을 이루던 순서 그대로였다. 일곱 대가 일곱 덩어리가 되고, 일곱 덩어리가 다시 경기장의 철골과 조명탑으로 흩어지는 데 일 분이 걸리지 않았다. 아무도 그것을 보고 있지 않았다.</p>
<p style="text-align:center;margin:3em 0;letter-spacing:0.8em;color:#999;">* * *</p>
<p style="margin:0 0 1.5em;">경기장이 조용했다. 아무도 케빈 쪽을 보지 않았다. 그게 배려라는 것을 케빈은 알았다. 그래서 더 견딜 수 없었다.</p>
<p style="margin:0 0 1.5em;">서브 리더 셋은 각자의 화면 앞에 굳어 있었다. 누구도 마스터 리더님, 하고 부르지 않았다. 고스트의 지휘석에서 미미가 이쪽을 한 번 보았다가 고개를 돌렸다. 페페는 처음부터 하늘만 보고 있었다. 준은 눈을 감고 있었다. 회의실에서 팀 AI를 전부 망에서 분리하자던 사람이었다.</p>
<p style="margin:0 0 1.5em;">기둥 숲 바닥에서 풍등이 다 타고 있었다. 대나무 살만 남은 등이 작게 빛났다가 꺼졌다.</p>
<p style="margin:0 0 1.5em;">패널에 한 줄이 떠 있었다. 강제 입력 이후로 AI가 처음 올린 줄이었다.</p>
<p style="margin:0 0 0.6em;padding:0.7em 1em;background:#f4f4f4;color:#222;border-left:3px solid #b03a2e;font-weight:600;line-height:1.7;">[제 경로였다면 완주했습니다.]</p>
<div style="margin:0 0 1.5em;height:0.9em;"></div>
<p style="margin:0 0 1.5em;">케빈은 그 줄을 오래 보았다. 원망이 아니었다. 보고였다. 타이푼의 AI는 언제나 그렇게 말했다. 숫자와 사실만. 그래서 더 아팠다.</p>
<p style="margin:0 0 1.5em;">"알아." 그가 말했다. 소리 내어. 그 말이 패널 너머에 닿는지는 알 수 없었다. "알아. 미안하다."</p>
<p style="margin:0 0 1.5em;">답이 오지 않았다.</p>
<p style="margin:0 0 1.5em;">패널의 불빛이 한 번 깜박였다. 그리고 또 한 번.</p>
<p style="margin:4em 0 0;padding-top:1.4em;border-top:1px solid #ddd;font-size:15px;line-height:1.7;"><a href="https://opendev4u.tistory.com/223">← 이전 화: 3화: 기록에 없는 선</a></p>
</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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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CAL AI ON MAC

Mac에서 Claude Code에 로컬 LLM 연결하기 — Ollama·oMLX·LM Studio·llama.cpp 비교

Claude Code의 코딩 에이전트 기능은 그대로 두고, 실제 추론 모델만 내 Mac에서 실행되는 로컬 LLM으로 바꿀 수 있을까? 2026년 현재는 가능하고, 방법도 하나가 아니다.

Claude Code를 사용하다 보면 한 번쯤 이런 생각이 든다.

Claude Code의 코딩 에이전트 기능은 그대로 사용하면서, 모델만 내 Mac에서 실행되는 로컬 LLM으로 바꿀 수 없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가능하다. 그리고 방법도 하나가 아니다.

  • Ollama
  • oMLX
  • LM Studio
  • llama.cpp / llama-server

Ollama와 LM Studio는 비교적 쉽게 사용할 수 있고, oMLX는 Apple Silicon과 Claude Code 같은 Coding Agent 워크로드를 직접적으로 겨냥한다. llama.cpp는 설정 자유도가 가장 높은 축에 속한다.

먼저 가장 중요한 오해부터

여기서 말하는 것은 Claude 모델 자체를 내 Mac에서 실행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Claude Code는 그대로 사용하지만, 실제 코드를 생성하고 추론하는 모델을 Anthropic의 Claude 대신 로컬에서 실행되는 다른 모델로 변경하는 것이다.

일반 구조
Claude Code → Anthropic API → Claude

로컬 LLM 연결
Claude Code → Anthropic-compatible Local Server → Local LLM

즉 핵심은 Claude Code가 기대하는 Anthropic Messages API 형식을 로컬 LLM 서버가 대신 제공하는 것이다.

Claude Code와 로컬 LLM을 연결하는 대표적인 방법

방식 특징 Claude Code 연결 Mac 적합성
Ollama 가장 간단한 CLI/API 환경 매우 쉬움 매우 좋음
oMLX MLX 네이티브, Agent 최적화 매우 적합 Apple Silicon 특화
LM Studio GUI 중심 쉬움 매우 좋음
llama.cpp GGUF 직접 실행, 세밀한 설정 가능 좋음
MLX-LM 직접 저수준 MLX 도구 추가 호환 계층 필요 실험/벤치마크용

1. Ollama — 가장 간단하게 시작하기

Claude Code와 로컬 LLM을 연결하는 가장 쉬운 방법 가운데 하나는 Ollama다.

최신 Ollama에서는 다음 명령으로 Claude Code 연동을 시작할 수 있다.

ollama launch claude

Ollama가 모델 선택과 Claude Code 실행을 안내하기 때문에 별도의 환경변수나 설정 파일을 직접 만지지 않고 시작하기 쉽다.

Coding Agent에서는 Context가 중요하다

Claude Code에서는 System Prompt, Tool 정의, 프로젝트 파일, 코드, Tool 결과, 이전 대화 등이 Context에 계속 쌓인다. 따라서 단순히 모델 크기만 볼 것이 아니라 Tool Calling, Context Length, Prompt Processing 속도를 함께 봐야 한다.

Apple Silicon과 MLX

현재 Apple Silicon에서 Ollama는 MLX와 Unified Memory 구조를 활용하는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다.

Claude Code → Ollama → MLX / Metal → Apple Silicon

2. oMLX — Mac과 Coding Agent를 직접 겨냥한 선택

oMLX는 Apple Silicon에서 MLX 기반으로 동작하는 LLM inference server다.

  • Continuous Batching
  • Multi-model serving
  • Anthropic API
  • OpenAI API
  • KV Cache 관리
  • SSD Cache
  • Claude Code 최적화

RAM + SSD KV Cache

oMLX의 흥미로운 점은 KV Cache를 RAM과 SSD에 계층적으로 관리한다는 점이다.

Hot Tier는 RAM에 유지하고, Cold Tier는 필요에 따라 일부 캐시를 SSD로 내린다. 이후 동일하거나 유사한 Prefix가 다시 들어오면 처음부터 계산하지 않고 재사용할 수 있다.

Claude Code처럼 동일한 Repository, System Prompt, Tool 정보가 반복되는 장시간 Coding Session에서는 꽤 의미 있는 구조다.

설치 예시

brew tap jundot/omlx https://github.com/jundot/omlx
brew install jundot/omlx/omlx
omlx start

Anthropic-compatible /v1/messages를 제공하므로 Claude Code와 연결할 수 있다.

3. LM Studio — GUI로 관리하고 싶다면

터미널보다 GUI 중심으로 모델을 관리하고 싶다면 LM Studio가 편하다.

lms server start --port 1234

export ANTHROPIC_BASE_URL=http://localhost:1234
export ANTHROPIC_AUTH_TOKEN=lmstudio
export CLAUDE_CODE_ATTRIBUTION_HEADER=0

claude --model 모델명

LM Studio에서는 모델 검색, 다운로드, Quantization 선택, Context 설정, 메모리 사용량 확인 등을 GUI에서 쉽게 처리할 수 있다.

특히 24GB나 32GB Mac에서는 모델이 메모리에 들어갈지 미리 판단하기 쉬운 점이 장점이다.

다른 Mac을 추론 서버로 사용

M4 Mac mini에서 Claude Code 실행 → 네트워크 → M1 Max 64GB에서 Local LLM 실행

개발용 Mac과 추론용 Mac을 분리하는 구성도 가능하다.

4. llama.cpp / llama-server — 설정 자유도가 가장 높다

조금 더 직접적으로 모델을 제어하고 싶다면 llama.cpp도 있다.

Claude Code → llama-server → GGUF Model

Context Length, Quantization, Flash Attention, KV Cache, Parallel Slot, Continuous Batching, Speculative Decoding, Chat Template 등을 직접 조절할 수 있다.

Claude Code는 Tool Calling을 적극적으로 사용하므로 llama-server에서 Tool Use를 사용할 때는 모델의 Chat Template과 Jinja 설정을 확인해야 한다.

그럼 MLX-LM 직접 사용은?

Apple의 MLX-LM을 직접 사용하는 방법도 있다.

하지만 Claude Code 연결이라는 목적만 놓고 보면 Anthropic-compatible API를 제공하는 서버를 중간에 두는 편이 더 자연스럽다.

MLX-LM은 모델 실행, Benchmark, Quantization, Fine-tuning, Python 실험에 더 적합하다.

네 가지 방법 비교

항목 Ollama oMLX LM Studio llama.cpp
설치 편의성 ★★★★★ ★★★★☆ ★★★★★ ★★★
GUI △ ★★★★☆ ★★★★★ △
CLI ★★★★★ ★★★★☆ ★★★★ ★★★★★
Anthropic API 지원 지원 지원 지원
Claude Code ★★★★★ ★★★★★ ★★★★★ ★★★★
Apple Silicon 특화 ★★★★★ ★★★★★ ★★★★★ ★★★★
MLX 지원 핵심 기반 지원 가능 아님
SSD KV Cache 제한적 강점 일반적 직접 설정
설정 자유도 ★★★★ ★★★★☆ ★★★★ ★★★★★
모델 관리 ★★★★ ★★★★ ★★★★★ ★★★
초보자 좋음 보통 매우 좋음 어려움
장시간 Agent 좋음 특히 흥미로움 좋음 설정에 따라 좋음

※ 위 표는 절대적인 성능 순위가 아니라 사용 목적에 따른 성격 비교다. 실제 속도는 동일 모델, 동일 Quantization, 동일 Context 조건에서 측정해야 한다.

M4 Mac mini 24GB에서는 무엇을 추천할까?

  • 가장 간단하게 시작 → Ollama
  • GUI로 모델을 비교 → LM Studio
  • Apple Silicon Agent 환경 실험 → oMLX
  • 세밀한 성능 튜닝 → llama.cpp

M1 Max 64GB에서는 oMLX가 더 재미있을 수 있다

M4 24GB → Ollama + 중형 Coding Model

M1 Max 64GB → oMLX + 더 큰 Coding Model + 긴 Context

M1 Max 64GB처럼 통합 메모리가 큰 시스템에서는 더 큰 모델과 긴 Context를 활용하기 쉬워 oMLX의 KV Cache 전략을 테스트하기에 흥미롭다.

로컬 Claude Code에서는 모델 크기만 보면 안 된다

  • Tool Calling — 정확한 Tool 호출 능력
  • Context Length — 프로젝트 파일과 작업 이력 처리
  • Prompt Processing — 반복 Context 처리 속도
  • KV Cache — 긴 Agent Session에서의 재사용
  • Coding 능력 — 실제 코드 이해와 수정 능력

따라서 30B 모델이 항상 14B 모델보다 실사용에서 유리하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개인정보와 비용

로컬 모델을 사용하면 모델 추론 과정에서 코드와 Prompt를 외부 LLM API로 보내지 않는 구성을 만들 수 있다.

다만 MCP, Web Search, 외부 API, Cloud Tool 등이 연결돼 있다면 전체 환경이 완전히 오프라인이라는 뜻은 아니다.

또한 로컬 추론 자체에는 Anthropic API 호출 비용이 들지 않지만, Mac의 전력, SSD, 통합 메모리, 저장공간과 관리 비용을 사용한다. 무엇보다 Claude 모델 자체의 성능을 사용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방법을 선택할까?

  • 처음 Local Claude Code를 해보고 싶다 → Ollama
  • GUI로 모델을 고르고 싶다 → LM Studio
  • Mac에서 Coding Agent를 오래 돌리고 싶다 → oMLX
  • Runtime을 세세하게 만지고 싶다 → llama.cpp
  • MLX 자체를 연구하거나 Benchmark하고 싶다 → MLX-LM

결론

2026년 현재 Claude Code에 로컬 LLM을 연결하는 방법은 Ollama나 LM Studio 두 가지뿐이라고 보기 어렵다.

Claude Code → Anthropic-compatible Local Server → Local LLM

Ollama는 가장 간단하고, LM Studio는 GUI가 편하다. llama.cpp는 가장 세밀하게 제어할 수 있다.

그리고 oMLX는 Apple Silicon + MLX + Coding Agent라는 조합을 직접 겨냥한다는 점에서 특히 흥미롭다.

참고자료

  1. Ollama — Claude Code with Anthropic API Compatibility
  2. Ollama — ollama launch
  3. Ollama — MLX on Apple Silicon
  4. oMLX — Official Project README
  5. LM Studio — Claude Code Integration
  6. llama.cpp — llama-server Documentation

※ 실제 성능과 호환성은 모델, Quantization, Context Length, Tool Calling 지원, macOS 버전 및 Runtime 버전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추천 태그

Claude Code로컬 LLMLocal LLMOllamaoMLX LM Studiollama.cppMLXApple SiliconM4 Mac mini M1 MaxAI 코딩Coding AgentClaude Code 로컬Mac AI

태그 복사용:
Claude Code, 로컬 LLM, Local LLM, Ollama, oMLX, LM Studio, llama.cpp, MLX, Apple Silicon, M4 Mac mini, M1 Max, AI 코딩, Coding Agent, Claude Code 로컬, Mac 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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