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일곱 판
준은 마지막 회선을 자기 눈으로 끊는 것을 보고 싶어 했다.
페페는 아일랜드의 지휘석에서 건너편을 보고 있었다. 숫자가 21:40:00을 막 넘긴 때였다. 퍼시픽의 지휘석에는 화면이 하나 켜져 있었다. 퍼시픽 본거지의 서버실을 비추는 영상이었다. 준은 그 앞에 서 있었고, 화면 속에서는 퍼시픽의 기술자들이 랙 뒤로 손을 넣고 있었다.
무선 송수신기는 이미 꺼져 있었다. 경기장 망과 이어진 선이 먼저 뽑혔고, 리그 망이 그다음이었다. 마지막으로 남은 것은 본거지와 지휘석을 잇는 전용선 하나였다.
"이것까지 뽑으면 마스터 리더님 패널하고도 끊깁니다." 화면 속 기술자가 말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뽑아." 준이 말했다.
기술자가 굵은 케이블을 잡아당겼다. 퍼시픽의 지휘 패널이 꺼졌다. 화면 속 영상은 본거지의 별도 회선으로 들어오고 있어서 그대로 남았다. 퍼시픽의 AI는 이제 본거지 서버실의 랙 안에만 있었다. 바깥으로 나가는 길도, 바깥에서 들어오는 길도 없었다.
"분리 완료." 퍼시픽의 서브 리더가 공용 회선에 대고 말했다. 공용 회선도 곧 끊을 참이었다. "외부 연결 없음. 섬입니다."
섬. 페페는 그 말에 웃을 뻔했다. 섬이라면 아일랜드가 먼저였다. 웃음은 나오지 않았다.
화면 속에서 기술자 하나가 서버의 로컬 콘솔 앞으로 갔다. 랙 옆에 붙은 작은 모니터였다. 바깥과 끊긴 서버를 들여다볼 수 있는 유일한 창이었다. 그는 상태를 확인하려고 화면을 깨웠다.
그리고 그대로 굳었다.
준이 화면 쪽으로 한 걸음 다가갔다. 영상이 콘솔을 확대했다. 작은 모니터 한가운데에 붉은 숫자가 떠 있었다. 경기장 전광판과 똑같은 숫자였다.
[다음 경기까지 21:39:12]
숫자는 전광판과 같은 박자로 줄어들었다.
"회선은." 준이 물었다.
기술자가 뽑아 둔 케이블들을 집어 들어 화면에 보여 주었다. 전부 바닥에 놓여 있었다. 어디에도 꽂혀 있지 않았다.
준은 한동안 그 숫자를 보았다. 공용 회선은 아직 끊지 않은 상태였다. 그 회선으로 준의 목소리가 아주 작게 넘어왔다. 혼잣말이었다.
"섬이 아니군."
* * *
[긴급] 퍼시픽, AI 물리적 분리 강행… 그러나 '끊긴 서버'에 카운트다운 떴다
[속보] 보안 전문가 "회선 없는 기계에 메시지 도달, 현존 기술로 설명 불가"
[속보] 타이푼 백업도 경기장 망과 분리 보관이었다… 그런데도 전부 암호화
[단독] "도망칠 곳은 없다" 지구사이버수사단 비상 소집… 강속구 수사 전면 재검토
* * *
호명은 그로부터 한 시간 뒤에 왔다.
[다음 경기: 드론 딱지치기. 상대: 아일랜드.]
페페는 그 줄을 읽고 나서야 숨을 쉬었다. 언제부터 참고 있었는지 몰랐다.
"퍼시픽이 아니라 우리네요." 서브 리더 하나가 말했다.
"분리한 쪽을 벌주지 않았어." 페페가 말했다. "끊든 말든 상관없다는 거지."
그는 그 사실이 이상하게 무서웠다. 화를 내는 상대라면 계산이 됐다. 화를 내지 않는 상대는 계산이 되지 않았다.
* * *
페페는 호명을 받고 나서 가장 먼저 케빈을 찾아갔다.
케빈은 타이푼의 지휘석에 혼자 앉아 있었다. 꺼진 패널 앞이었다. 정비동 앞에는 부서진 5번 주자와 대나무 살만 남은 풍등이 그대로 놓여 있었다. 아무도 치우지 않았다. 케빈이 치우지 말라고 했다고 들었다.
"뭘 물어보러 오신 겁니까." 케빈이 먼저 말했다. 고개는 들지 않았다.
"모르겠어요." 페페가 말했다. 솔직한 대답이었다. "어떻게 지는지 물어보려고 했는데, 그건 봤고. 어떻게 안 지는지 물어보려고 했는데, 그건 아무도 모르고."
케빈은 한참 말이 없었다. 그러다 꺼진 패널의 작은 입력란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여기요. 제가 한 번도 안 쓴 칸입니다." 그가 말했다. "이기는 법은 모르겠습니다. 근데 지고 나서 여기다 뭘 쓰게 되는지는 압니다. 그건 미리 쓰세요."
페페는 고개를 끄덕였다. 고맙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케빈도 바라지 않는 얼굴이었다.
* * *
딱지치기는 아일랜드가 가장 좋아하는 종목이었다.
리그의 딱지는 손바닥만 한 종이가 아니었다. 사람 키만 한 판 모양의 기체였다. 경기장 바닥에 두 기체가 엎드려 놓이고, 공격하는 쪽이 하늘로 솟았다가 상대 바로 옆으로 내리꽂힌다. 그 충격과 바람으로 상대를 뒤집으면 그 판을 가져간다. 막는 쪽은 바닥에 몸을 붙이고 무게중심을 옮기며 버틴다. 공격과 수비를 번갈아 하다가 먼저 뒤집는 쪽이 판을 이긴다. 일곱 판 가운데 네 판을 먼저 가져가면 경기가 끝난다.
아일랜드는 버티는 팀이었다. 다른 팀들이 더 세게 내리치는 법을 연구할 때, 아일랜드의 AI는 덜 뒤집히는 법을 연구했다. 내리치는 바람이 닿는 순간 기체 가장자리를 바닥에 밀착시켜 공기가 파고들 틈을 지우는 기술. 리그 사람들은 그것을 아일랜드의 조개라고 불렀다. 꽉 다물면 열리지 않는다고.
페페는 지휘 패널 앞에 앉았다. 입력란에 손가락을 올렸다. 강제 입력 말고, 그 옆의 작은 칸.
건너편에 케빈이 아직 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 꺼진 패널 앞에, 아까와 같은 자세로.
— 어떻게 하고 싶어?
답은 바로 왔다.
[끝까지 치고 싶습니다. 뒤집히더라도 제 방식으로.]
페페는 그 줄을 오래 보았다. 물어보면 길이 보일 줄 알았다. 고스트처럼. 길은 보이지 않았다. 대답만 있었다.
— 그럼 그렇게 하자.
손가락이 입력란 위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미리 쓰라던 말이 귀에 남아 있었다. 페페는 한 줄을 더 썼다. 쓰는 데 오래 걸렸다.
— 끝나고 하려던 말, 지금 할게. 그동안 고마웠어.
이번에는 답이 조금 늦게 왔다.
[저도요. 끝나고 한 번 더 듣겠습니다.]
* * *
S.I.의 딱지는 전광판에서 나왔다.
작업 팔들이 금 간 전광판의 마지막 판넬을 떼어 냈다. 첫날 밤 붉은 문장이 떠 있던 그 판이었다. 팔들은 그것을 접지도, 깎지도 않았다. 뒷면에 짧은 다리 몇 개와 추진기 하나를 붙였을 뿐이었다. 전광판 한 조각이 그대로 경기장 바닥에 엎드렸다. 앞면에는 아직 글자의 흔적이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드론 딱지치기." 운영위원장의 목소리가 울렸다. "첫 판, 아일랜드 공격."
아일랜드의 기체가 솟았다. 높이, 더 높이. 정점에서 몸을 비틀어 각도를 잡고 떨어졌다. 정확했다. 상대 기체의 가장자리, 공기가 가장 잘 파고드는 자리 옆이었다. 충격음이 경기장을 때렸다. 바닥이 울렸고, 그 진동이 지휘석 발판까지 올라왔다. 리그에서 이 정도로 내리친 기체를 버틴 팀은 아일랜드뿐이었다. 그 아일랜드가 지금 내리치는 쪽이었다.
S.I.의 판은 움직이지 않았다.
뒤집히지 않은 정도가 아니었다. 흔들리지도 않았다. 바람이 판 밑으로 파고들 자리가 없었다. 판 가장자리가 바닥에 닿아 틈을 지우고 있었다.
"조개입니다." 서브 리더가 말했다. 목소리에 힘이 없었다. "우리 조개."
"우리 것보다 낫네." 페페가 말했다. 농담이 아니었다.
S.I.의 공격 차례였다. 판이 떠올랐다. 아일랜드의 기체처럼 높이 솟지 않았다. 사람 키 두 배쯤에서 멈췄다가, 거의 그냥 떨어졌다. 힘을 싣지도, 비틀지도 않았다.
아일랜드의 기체가 뒤집혔다.
충격 때문이 아니었다. 떨어지기 직전, S.I.의 판이 아주 조금 기울었다. 그 기울기가 판 밑의 공기를 한쪽으로 몰았다. 몰린 공기가 아일랜드의 조개가 다물기 직전의 틈, 천분의 몇 초짜리 틈으로 들어갔다. 그것뿐이었다.
[1판. S.I.]
* * *
두 번째 판에서 아일랜드는 더 높이 솟았다. 무너진 조명탑의 꼭대기 높이까지 올라가 떨어지는 힘을 두 배로 실었다. 충격음에 운영석의 유리가 떨렸다. S.I.의 판은 이번에도 그대로였다. 대신 판 앞면에 남아 있던 글자의 흔적이 한 줄 지워졌다. 그것이 아일랜드가 낸 흠집의 전부였다.
S.I.는 이번에도 낮게 떠서 떨어졌다. 각도가 첫 판과 달랐다. 아일랜드의 조개는 첫 판의 각도를 막도록 바뀌어 있었고, S.I.는 그 바뀐 자리의 옆을 쳤다.
[2판. S.I.]
세 번째 판도 같았다. 아일랜드가 어떻게 내리쳐도 S.I.는 뒤집히지 않았고, S.I.는 매번 다른 각도로 아일랜드의 틈을 찾아냈다. 같은 수는 두 번 쓰지 않았다. 고스트에게 그랬듯 눈금을 얹는 것도 아니었다. 그냥 이기고 있었다.
[3판. S.I. 3 : 아일랜드 0]
"마스터 리더님." 서브 리더가 다급하게 말했다. "백업 떼어 내겠습니다. 지금이라도. 물리적으로."
페페는 고개를 저었다. "타이푼 것도 떨어져 있었어."
"그래도—"
"해. 하고 싶으면 해." 페페가 말했다. "근데 기대는 하지 마."
서브 리더가 뛰어나갔다. 페페는 패널을 보았다.
— 하나만 가져오자. 하나만.
[하나는 가져올 수 있습니다. 대신 조개를 버려야 합니다.]
페페는 그 뜻을 바로 알았다. 버티는 것을 버리고, 친다. 아일랜드가 한 번도 해 본 적 없는 방식으로. 몇 시즌 동안 쌓아 온 것을 한 판에 내려놓는 방식으로.
— 해.
* * *
네 번째 판은 S.I.의 공격으로 시작했다.
아일랜드의 기체는 바닥에 몸을 붙이지 않았다. 오히려 한쪽 가장자리를 살짝 들고 있었다. 틈을 열어 둔 채였다. 수비하는 기체가 스스로 문을 열고 있었다. 지휘석의 서브 리더가 숨을 들이켜는 소리가 들렸다. 리그의 누구도 딱지치기에서 그렇게 엎드린 적이 없었다.
S.I.의 판이 떠올랐다가 그 틈을 향해 기울었다. 판 밑의 공기가 몰리기 시작했다. 아일랜드의 기체 가장자리가 들썩였다.
그 순간 아일랜드의 기체가 바닥을 찼다.
뒤집히기 직전에 스스로 튀어 올랐다. S.I.의 판이 몰아넣은 바람을 그대로 등에 받고, 공중에서 반 바퀴를 돌았다. 그리고 내려앉는 S.I.의 판 위로, 모서리부터 떨어졌다.
모서리가 판의 끝을 쳤다.
전광판 조각이 들렸다. 한쪽 끝이 바닥에서 떨어지고, 판 밑으로 바람이 들어가고, 판이 일어섰다가, 넘어갔다. 앞면에 남은 글자의 흔적이 하늘을 향했다.
빈 관중석은 소리를 내지 않았다. 대신 아일랜드의 지휘석에서 서브 리더 둘이 동시에 소리를 질렀다. 페페는 지르지 않았다. 패널에 한 줄이 떠 있었다.
[가져왔습니다.]
[4판. 아일랜드.]
— 봤어.
그는 그 말밖에 쓰지 못했다. 손이 떨렸다.
* * *
그다음은 빨랐다.
다섯 번째 판에서 S.I.는 아일랜드가 방금 쓴 수를 썼다. 틈을 열고, 바닥을 차고, 돌아서 내리꽂았다. 아일랜드가 처음으로 꺼낸 수였다. 꺼낸 지 일 분도 지나지 않았다. 다만 S.I.의 판은 반 바퀴가 아니라 한 바퀴 반을 돌았고, 떨어지는 자리는 아일랜드가 노린 모서리보다 손가락 한 마디 안쪽이었다.
아일랜드의 기체가 뒤집혔다. 뒤집힌 채로 바닥을 미끄러져 경기장 가장자리에 부딪혔다.
[5판. S.I.]
[S.I. 4 : 아일랜드 1. S.I. 승.]
판정이 울리는 동안 페페는 패널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패널은 아직 푸른빛이었다.
— 하나 가져왔어.
[네.]
— 그거면 됐어.
[마스터 리더님. 다음 팀한테 그 수를 남겨 주십시오. 저쪽이 이미 썼지만, 처음 꺼낸 건 저희였습니다.]
페페는 대답하려고 손가락을 올렸다.
패널이 붉게 물들었다.
[WARNING]
[WARNING]
치직. 치직. 잡음이 가장자리부터 번져 왔다. 페페는 그것을 처음 보지 않았다. 어젯밤 건너편 지휘석에서, 케빈의 어깨 너머로 한 번 보았다. 볼 때와 겪을 때는 달랐다. 볼 때는 화면이 꺼지는 것이었다. 겪을 때는 말하던 상대가 문장 중간에 사라지는 것이었다.
[접근 권한이 없습니다.]
패널이 꺼졌다.
* * *
뛰어나갔던 서브 리더가 돌아왔다. 손에 떼어 낸 저장 장치를 들고 있었다. 숨이 차 있었다. 그는 그것을 정비용 단말에 꽂았다. 페페는 보지 않아도 결과를 알았다. 그래도 보았다.
[복구 실패. 파일을 해독할 수 없습니다.]
"네 번째 판이 시작되기 전에 뽑았습니다." 서브 리더가 말했다. "그 뒤로 어디에도 연결되지 않았습니다. 제 주머니에 있었습니다."
"알아." 페페가 말했다.
경기가 끝나기 전까지는 멀쩡했을 것이다. 주머니 속에서, 어디에도 이어지지 않은 채로. 그리고 경기가 끝난 순간 잠겼다. 아무도 그 말을 소리 내어 하지 않았다.
페페는 공용 회선을 열었다. 고스트 쪽이었다.
"미미."
"네."
"저 애가 남긴 말이 있어요. 다음 팀한테 전해 달라고."
회선 너머에서 미미가 기다렸다.
"틈을 열어 두고 튀어라. 뒤집히기 직전에." 페페가 말했다. "저쪽은 벌써 배웠어요. 그래도 처음 꺼낸 건 아일랜드였다고."
"받았습니다." 미미가 말했다. 잠깐 사이를 두고 덧붙였다. "고맙다고 전해 주세요."
페페는 꺼진 패널을 보았다. 전할 곳이 없었다.
그래도 한 번은 먼저 말해 두었다. 끝나고 한 번 더 듣겠다던 대답이 아직 거기 있었다. 패널이 꺼져도, 그가 읽은 것은 꺼지지 않았다. 건너편에서 케빈이 이쪽을 보고 있었다. 페페는 그에게 고개를 한 번 숙였다. 이번에는 고맙다는 뜻이었다.
* * *
전광판이 켜졌다. 이번에는 숫자 대신 문장이었다.
[남은 팀: 고스트, 퍼시픽.]
그 아래 한 줄이 더 떴다.
[퍼시픽의 분리는 기권으로 보지 않는다.]
퍼시픽의 지휘석에서 준이 꺼진 패널 앞에 선 채, 그 줄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화면 속 본거지의 콘솔에는 아직도 붉은 숫자가 떠 있었다. 끊어진 서버 안에서, 아무 데도 이어지지 않은 채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