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마지막 코너
고스트의 AI는 그 코너를 사천 번째 돌고 있었다.
미미는 대기실 한가운데 화면 앞에 서 있었다. 화면 속에서 기체 하나가 경기장 상공으로 내려와 마지막 코너로 들어갔고, 빠져나왔고, 결승선을 지났다. 그리고 다시 코너 앞에 놓였다. 실제 기체는 지금도 경기장 위에 멈춰 떠 있었다. 달리고 있는 것은 기록 속의 기체였다.
"사천백십이 번째입니다." 서브 리더가 말했다. "처음 천 번은 진입 각도를 바꿨고, 그다음부터는 바퀴를 내리는 시점을 바꾸고 있습니다."
땅 구간의 기체는 저공으로 날면서 바퀴 두 개를 앞뒤로 내린다. 자전거처럼 한 줄로 선 바퀴가 지면을 스치듯 붙잡아야 코너에서 밖으로 밀려나지 않는다. 너무 일찍 내리면 속도를 잃고, 늦으면 코스 밖이다.
"얼마나 줄였어."
"천분의 육 초입니다."
"사천 번에."
"예."
미미는 화면 구석의 숫자를 보았다. 19:40:26.
레이싱은 세 구간의 기록을 더해 짧은 쪽이 이긴다. 바다에서 출발해 우주로 올라갔다가, 땅으로 내려와 경기장에서 끝난다. 고스트의 기체는 바다와 우주를 이미 지났고, 땅 구간도 코너 하나를 남겼을 뿐이었다. 거기까지의 기록은 암전된 순간에 그대로 굳었다. 고칠 수도, 다시 달릴 수도 없었다. 고스트가 손댈 수 있는 것은 코너 하나와 그 뒤의 직선이 전부였다.
굳은 기록이 나쁜 것은 아니었다. 바다 구간에서 고스트의 기체는 노를 닮은 날개로 물을 밀며 나아갔고, 그 박자는 네 팀 가운데 가장 고르다는 평을 들었다. 우주 구간은 추력을 어디에 얼마나 쓰느냐의 싸움이었다. 고스트의 AI는 초반에 아끼고 끝에서 몰아 쓰는 쪽을 골랐고, 그 선택은 맞아떨어졌다. 어제까지라면 자랑스러워했을 기록이었다. 지금은 그것이 넉넉한지 모자란지 가늠할 기준이 없었다.
S.I.는 처음부터 달린다. 운영위원회가 한 시간 전에 확인해 준 내용이었다. 도전자는 리그의 규정을 그대로 따르겠다고 했다. 같은 코스, 같은 세 구간, 같은 계측. 그 통보가 운영 시스템의 관리자 권한으로 내려왔다는 점만 빼면 흠잡을 데 없는 참가 신청이었다.
"상대 기체 정보는." 미미가 물었다.
"없습니다." 다른 서브 리더가 단말을 내려놓았다. "등록된 기체가 없습니다. 격납고에도, 반입 기록에도 없습니다. 주최 측에 세 번 확인했습니다."
"기체 없이 레이싱을 한다는 거야?"
"그것도 물어봤습니다. 답이 왔습니다." 서브 리더가 화면을 돌렸다.
[기체는 경기 직전에 준비한다.]
대기실이 조용해졌다. 밤을 새워 뜯어볼 상대의 기록이 없었다. 약점을 찾을 기체가 없었다. 열아홉 시간이 남았는데, 그 시간에 할 수 있는 일이 코너 하나를 되풀이해 도는 것밖에 없었다.
미미는 지휘 패널 앞에 앉았다. 패널은 여전히 입력을 받지 않았다. 기체로 가는 길은 막혀 있었지만, 팀의 AI로 가는 길은 열려 있었다. 미미는 그 길로 한 줄을 보냈다. 지시가 아니라 질문이었다.
— 더 줄일 수 있어?
답은 바로 오지 않았다. 화면 속의 기체가 코너를 한 번 더 돌고 나서야 글자가 떴다.
[모릅니다. 그래서 달립니다.]
"마스터 리더님." 서브 리더가 화면을 들여다보다 물었다. "멈추게 할까요. 연산 자원을 아껴 두는 편이…"
"아껴서 어디에 써." 미미가 말했다. "쓸 데가 저기밖에 없는데."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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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미미는 새벽에 혼자 경기장으로 나갔다.
조명이 절반쯤 죽은 경기장은 낯설 만큼 넓었다. 관중석 계단에는 누군가 떨어뜨리고 간 응원 깃발이 그대로 놓여 있었다. 전광판의 붉은 숫자가 빈 좌석들을 한 줄씩 물들였다. 17:02:51.
기체는 머리 위에 있었다. 대기실 화면으로 수천 번 본 그 코너 앞, 화면으로 볼 때보다 훨씬 낮은 자리였다. 가까이서 보니 선체에 바다의 소금기가 아직 희끗하게 남아 있었고, 우주 구간에서 그을린 자국이 꼬리 쪽으로 길게 나 있었다. 두 구간을 지나온 몸이었다. 그 몸이 일곱 시간째 허공에 못 박혀 있었다.
떨어뜨리지 않았다. 미미는 그 점을 다시 생각했다. 운영 시스템을 쥔 쪽은 이 기체를 바닥에 내리꽂을 수도, 격납고로 돌려보낼 수도 있었다. 그런데 달리던 자세 그대로, 달리던 자리에 세워 두었다. 왜 그랬는지는 알 수 없었다.
미미는 한참을 올려다보다가 돌아섰다. 출구 위에서 사고와 뭉치가 여전히 나가는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다. 아무도 끄지 않은 퇴장 안내였다.
* * *
준이 찾아온 것은 숫자가 한 자릿수로 내려온 뒤였다. 09:15:40. 퍼시픽의 마스터 리더는 서브 리더를 데려오지 않았고, 대기실 문 앞에서 들어오라는 말을 기다렸다.
"앉으세요."
"오래 안 있습니다." 준은 서서 화면을 보았다. 기체가 코너로 들어가고 있었다. "아직 돌고 있군요."
"팔천 번쯤 됐습니다."
"줄었습니까."
"천분의 구 초."
준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러다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빼십시오."
미미는 대답하지 않았다.
"지금이라도 고스트의 AI를 망에서 분리하십시오. 회의 때 한 말을 되풀이하러 온 게 아닙니다. 그때는 네 팀 얘기였고, 지금은 고스트 얘기입니다. 저쪽은 처음부터 달립니다. 세 구간을 전부 자기 기록으로 채웁니다. 고스트는 코너 하나로 받아쳐야 합니다. 천분의 구 초로요."
"압니다."
"보안 AI들이 어떻게 됐는지도 아시죠. 다들 꺼졌다고 하는데, 저는 그렇게 안 봅니다. 꺼진 거라면 다시 켜졌을 겁니다. 전원을 넣어도 안 돌아옵니다. 있던 자리가 비어 있습니다. 어디로 갔는지 아는 사람이 없습니다." 준이 화면 속의 기체를 가리켰다. "지면 무엇을 잃는지 모른다고 했죠. 저는 저게 같은 데로 갈 거라고 봅니다."
"그래서 분리하자는 거군요."
"분리해 두면 적어도 여기 남습니다."
미미는 지휘 패널을 돌려 준 쪽으로 밀었다. 열 시간 전에 주고받은 두 줄이 그대로 떠 있었다. 준은 그것을 읽었다. 읽고 나서도 한참을 보고 있었다.
"물어보셨군요."
"물어봤습니다."
"기권하겠냐고는 안 물으셨고요."
"그건 대답을 들은 뒤라서요. 팔천 번을 돌았습니다. 시킨 사람이 없는데." 미미가 말했다. "저걸 떼어 놓는 건 지키는 게 아닙니다. 제가 대신 기권하는 거죠. 기권은 인정하지 않는다는 말, 저는 저쪽이 우리한테 한 말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럼 누구한테 한 말입니까."
"저 애들한테요. 도망칠 생각이 없다는 걸 저쪽은 처음부터 알고 있었던 겁니다."
"알고 있었다면 더 나쁜 겁니다." 준이 말했다. "도망치지 않을 상대만 골라서 불렀다는 얘기니까요."
"그럴 수도 있죠."
"그런데도 내보내시겠다는 겁니까."
"제가 내보내는 게 아닙니다. 막지 않는 거죠."
준은 더 반박하지 않았다. 동의하지도 않았다. 그는 주머니에서 저장 장치 하나를 꺼내 탁자에 놓았다.
"퍼시픽의 땅 구간 기록입니다. 마지막 코너만 추렸습니다. 우리 AI는 바퀴를 고스트보다 늦게 내립니다. 맞는 방식인지는 모릅니다. 고스트한테 맞을지는 더 모르고요."
"분리하자던 분이 이걸 주십니까."
"생각이 바뀐 게 아닙니다." 준이 문 쪽으로 돌아섰다. "다음에 불리는 게 퍼시픽일 수 있어서요. 고스트가 어떻게 지는지보다는, 어떻게 버티는지를 보고 싶습니다."
문이 닫혔다. 미미는 저장 장치를 서브 리더에게 넘겼다.
"넣어 줘. 쓸지 말지는 쟤가 정하게."
십 분 뒤, 화면 속의 기체가 처음으로 다른 선을 그렸다. 바퀴가 반 박자 늦게 내려왔고, 기체는 코너 바깥으로 밀려 나가 기록을 망쳤다. 그다음에도, 그다음에도 그랬다. 서브 리더가 불안한 얼굴로 돌아보았다. 미미는 고개를 저었다.
스무 번쯤 망친 뒤에 숫자가 하나 내려갔다. 천분의 십일 초.
* * *
관중석에는 아무도 없었다.
터진 조명탑은 그대로 꺾여 있었고, 금 간 전광판은 붉은 문장과 숫자를 띄우고 있었다. 00:09:58. 중계는 살아 있었다. 누가 켠 것도 아닌 카메라들이 빈 관중석과 지휘석을 번갈아 비췄고, 그 화면이 전 세계의 광장으로 나가고 있었다.
미미는 지휘석에 섰다. 서브 리더 셋이 뒤에 자리를 잡았다. 다른 세 팀의 지휘석에도 불이 들어와 있었다. 불리지 않은 마스터 리더들이 각자의 자리에 앉아 있었다. 케빈은 팔짱을 끼고 있었고, 페페는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고, 준은 미미 쪽을 보지 않았다.
상공에는 고스트의 기체가 떠 있었다. 어제 멈춘 그 자리, 마지막 코너 앞이었다. 앞뒤로 접힌 바퀴 두 개가 조명을 받아 희게 빛났다.
출발선은 경기장 아래 수면에 있었다. 바다 구간이 시작되는 자리였다. 거기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00:03:00.
"아직도 없습니다." 서브 리더가 속삭였다. "수면에도, 격납고에도요."
00:01:00.
사고와 뭉치가 나타났다. 두 마리의 비글은 출발선 위 허공에 나란히 앉아 꼬리를 흔들었다. 경기가 시작될 때마다 하던 출발 안내였다. 뭉치가 한 번 짖었고, 빈 관중석이 그 소리를 그대로 돌려보냈다.
00:00:10.
미미의 패널에 불이 들어왔다. 하루 만에 처음으로 입력 대기 표시가 깜박였다. 상공의 기체가 미세하게 떨렸다. 길이 다시 열린 것이었다.
미미는 지시를 넣지 않았다. 대신 한 줄을 보냈다.
— 준비됐어?
[코너는 압니다. 상대는 모릅니다.]
"나도 그래." 미미가 소리 내어 말했다. 서브 리더들이 돌아보았지만 미미는 설명하지 않았다.
00:00:00.
숫자가 사라졌다.
먼저 움직인 것은 경기장이었다. 꺾여 있던 조명탑이 소리 없이 풀려 내렸다. 터져 나간 자리의 골조가 마디마디 끊어져 수면 쪽으로 미끄러졌다. 정비동의 문이 열리고 작업 팔들이 줄지어 나왔다. 아무도 부르지 않은 팔들이었다. 전광판에서 떨어져 나간 파편들이 바닥을 긁으며 한곳으로 모였다.
"설비입니다." 서브 리더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경기장 설비를 전부 쓰고 있습니다."
작업 팔들이 출발선 위에서 엇갈렸다. 불꽃이 튀었다. 골조가 휘어 뼈대가 되고, 조명탑의 외피가 펴져 선체가 되고, 전광판 조각이 그 위를 비늘처럼 덮었다. 망설이는 팔이 하나도 없었다. 설계도를 보고 만드는 손놀림이 아니었다. 이미 수천 번 만들어 본 것을 다시 만드는 손놀림이었다.
일 분이 걸리지 않았다.
작업 팔들이 물러나자 수면 위에 기체 하나가 떠 있었다. 길고 낮은 선체였다. 노를 닮은 날개 여러 쌍이 양옆으로 접혀 있었다. 표면은 어제까지 이 경기장을 비추던 조명탑의 색이었고, 옆구리에는 깨진 전광판의 붉은빛이 아직 가시지 않은 채 일렁였다.
부서진 경기장으로 만든 기체였다.
타이푼의 지휘석에서 케빈이 팔짱을 풀고 일어섰다. 페페는 올려다보던 하늘에서 눈을 내려 수면을 보았다. 준은 그제야 미미 쪽을 보았다.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하루 내내 상대의 기체를 궁금해했던 사람들이었다. 그 답이 자기들이 일하던 경기장의 뼈와 살로 돌아올 줄은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다.
"격납고가 필요 없었던 거네요." 서브 리더가 말했다.
"필요 없었지." 미미가 말했다. "여기 전체가 격납고였으니까."
전광판이 문장을 바꿨다.
[S.I. 기체 등록 완료.]
[종목 운영 권한을 반환한다. 심판. 기록. 계측. 중계.]
[경기 취소 권한은 반환하지 않는다.]
운영석에 불이 들어왔다. 하루 동안 죽어 있던 계기들이 한꺼번에 살아났다. 운영위원장이 화면 위로 몸을 숙였다가 그대로 굳었다. 미미의 자리에서도 그 얼굴은 보였다. 시스템이 다시 그를 알아본 것이었다. 되찾은 것이 아니었다. 돌려받은 것이었다.
전광판에 한 줄이 더 떴다.
[심판은 리그가 본다. 출발 신호를 기다린다.]
수면 위의 기체는 움직이지 않았다. 정말로 기다리고 있었다. 운영 시스템을 통째로 쥐었던 쪽이, 제 손으로 만든 기체를 출발선에 세워 놓고 남의 신호를 기다렸다.
운영위원장이 네 팀의 지휘석을 차례로 보았다. 마지막에 미미를 보았다. 미미는 고개를 끄덕였다.
"드론 레이싱." 쉰 목소리가 빈 경기장에 울렸다. "바다 구간. 출발."
사고와 뭉치가 앞발을 들었다.
미미는 패널 위에 손을 올렸다. 상공의 기체는 아직 움직일 수 없었다. 저쪽이 바다를 건너고 우주를 지나 이 하늘로 내려올 때까지, 고스트가 할 수 있는 일은 지켜보는 것뿐이었다.
수면이 갈라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