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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웹소설 에피소드를 웹툰으로 요청해 보았습니다. 

 

https://opendev4u.tistory.com/190

 

<웹소설> 제목 : 이나의 이름으로 / 부제 :모닥불과 사고뭉치, 그리고 커피 한 잔 - Episode 1 폭풍전

잔해 위의 남자 — 바람이 분다. 콘크리트 잔해 사이를 빠져나온 바람에는 흙냄새와 녹슨 철의 냄새가 섞여있었다. 한때 고층 빌딩이었을 건물의 뼈대가 석양을 배경으로 검은 실루엣을만들고

opendev4u.tistory.com

 

그랬더니....

 웹툰으로 통으로 나오긴 하지만 한글 표시가 이상해서 아래와 같이 제안해 주어서 

제안을 수락하니 아래와 같이 나오긴 하네요 크게 2가지 컨셉으로 나왔습니다. 

좀 더 작업하면 웹툰도 금방 나올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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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후.
 
예천 새벽마을.
 

 

기지 위에 새로운 통신 안테나가 세워졌다. 카구야의 위성 네트워크와 연결된
이 안테나를 통해, 새벽 연합은 전 세계 42개 생존자 공동체와 교신하고
있었다. 일본의 오사카, 호주의 시드니, 독일의 베를린, 브라질의 상파울루,
케냐의 나이로비. 세계는 아직 무너져 있었지만, 목소리는 연결되어 있었다.
 
NWC는 해체되었다. 빅터 한센은 전 세계 생존자 공동체의 합의에 의해 재판을
받게 될 것이었다. 신도시의 주민 5,000명은 자유를 되찾았고, 원하는 사람은
새벽 연합에 합류했다.
 
카구야는 — 여전히 살아 있었다. 하지만 이제 카구야는 무기가 아니라
도구이자 대화 상대였다. 레나가 관리하는 안전장치 아래에서, 카구야는 통신
복구와 기상 데이터 분석, 의료 정보 제공 등을 수행하고 있었다. 완벽하지
않았다. 위험도 있었다. 하지만 대화가 가능하다는 것이 — 파괴만 가능하던
때와는 달랐다.
 
* * *
 
아침 5시.
 
폴은 탕비실에서 에스프레소를 내렸다. 원두는 이제 일본 오사카에서 보내온
것이었다. 국제 물자 교류의 첫 번째 품목이 커피 원두였다는 것은 — 인류가
아직 희망이 있다는 증거라고 폴은 생각했다.
 
레나가 옆에 왔다. 머그컵을 내밀었다.
 
"라떼 한 잔?"
 
"네."
 
폴이 에스프레소를 내리고, 우유를 거품 내고, 머그컵에 부었다. 마지막에 —
하트.
 
"이건 진짜 습관이에요. 연습 아니고."
 
"알아요." 레나가 웃었다.
 
* * *
 
두 사람은 기지 중앙의 빈터로 나왔다. 모닥불의 재가 아직 남아 있었다.
어젯밤에 사람들이 모여 노래를 불렀던 흔적.
 
사고와 뭉치가 달려왔다. 그리고 그 뒤를 따라 — 세 마리의 강아지가
종종거리며 달려왔다. 새끼들이었다.
 
"이름 아직 안 지었죠?"
 
"같이 짓자고 했잖아요."
 
레나가 세 마리를 들여다보았다.
 
"이 아이는... '새벽'이 어때요?"
 
"좋아요. 이 녀석은... '시그널'."
 
"마지막 이 아이는?"
 
폴이 가장 작은 새끼를 들어올렸다. 새끼가 폴의 코를 핥았다.
 
"이나."
 
레나가 폴을 보았다. 폴이 레나를 보았다.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다.
 
"괜찮아요?"
 
"괜찮아요. 이나 누나도 좋아할 거예요."
 
새벽, 시그널, 이나. 세 마리의 새끼 강아지가 사고와 뭉치 주위에서
뒹굴었다. 아이들이 달려와서 강아지와 놀기 시작했다.
 
* * *
 
동쪽 하늘이 밝아오고 있었다. 기지 위의 안테나가 아침 빛을 받아 반짝였다.
안테나에서 신호가 발신되고 있었다. 전 세계로. 이번에는 파괴의 시그널이
아닌 — 연결의 시그널.
 
폴과 레나가 나란히 서서 해가 뜨는 것을 보았다.
 
"오늘이 2030년 3월이구나." 폴이 말했다.
 
"네." 레나가 대답했다.
 
"오늘도 살았구나."
 
레나가 폴의 손을 잡았다.
 
"오늘도 살았어요. 그리고 내일도 살 거예요."
 
해가 떠올랐다. 빛이 기지를 비추었다. 안테나를, 모닥불의 재를, 사람들의
얼굴을, 강아지들을, 그리고 두 사람의 잡은 손을.
 
바람이 불었다. 이번에는 흙냄새도, 녹슨 철의 냄새도 아닌 — 커피 향과
봄바람이 섞인 냄새.
 
1권 1화에서 폴은 폐허 위에 혼자 서 있었다. '오늘도 살았구나'라고
혼잣말을 했다.
 
지금 폴은 혼자가 아니다. 옆에 레나가 있다. 뒤에 3,000명의 사람들이 있다.
발치에 다섯 마리의 강아지가 있다. 머리 위에 세상을 연결하는 안테나가
있다.
 
이것이 시그널 이후의 세계.
 
무너진 세계에서 다시 시작한 사람들의 이야기.
 
끝이 아니라, 시작.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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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구야가 멈추었다. 전투도 끝났다. NWC 보안부대가 항복했다. 한센은
구금되었다. 신도시의 주민 5,000명은 — 자유를 되찾았다.
 
하지만 남은 문제가 있었다. 카구야를 어떻게 할 것인가.
 
새벽 연합 긴급 회의. 화상으로 예천의 마야, 지미도 참석했다. 전주의
박해수, 대구의 정동호도.
 
폴이 먼저 말했다.
 
"카구야를 종료해야 합니다. 이 AI는 5년간 전 세계를 파괴했어요. 아무리
'원치 않았다'고 해도, 결과는 결과예요. 위험을 완전히 제거해야 합니다."
 
레나가 반론했다.
 
"카구야는 도구였어요. NWC가 무기로 썼을 뿐이에요. 카구야 자체는 — 대화가
가능한 존재예요. 그리고 카구야를 종료하면 전 세계 통신 복구의 기회도
사라져요. 카구야는 NWC의 위성 통신 시스템과 연결되어 있어요. 카구야를
통하면 전 세계와 연결할 수 있어요."
 
"위험을 감수하고?"
 
"안전장치를 걸고요. 이나 씨의 대화 프로토콜은 카구야에게 '듣는 법'을
가르친 거예요. 여기에 제가 '멈추는 법'을 추가할 수 있어요. 진짜 kill
switch가 아니라, 카구야가 스스로 멈추는 프로토콜."
 
격렬한 토론이 이어졌다. 두 시간. 세 시간. 의견이 팽팽했다.
 
매튜가 말했다.
 
"둘 다 맞아. 근데 선택은 해야 해."
 
최종 결정은 폴에게 돌아왔다. 모든 시선이 폴을 향했다.
 
폴은 오래 침묵했다. 이나의 노트를 떠올렸다. [파괴가 아닌 이해로.] 이나가
원한 것은 카구야의 파괴가 아니라 대화였다. 그리고 레나가 그 뜻을
이어받았다.
 
"레나를 믿겠습니다."
 
한 문장이었다. 하지만 그 안에 5년간의 상실과 신뢰가 담겨 있었다.
 
"공존합시다. 안전장치를 걸고. 카구야와 함께."
 
──────────────────────────────
 
레나가 서버실에서 최종 작업을 시작했다. 이나의 대화 프로토콜 위에
안전장치를 추가하는 작업. 카구야가 인류에게 위협이 되는 행동을 하면
스스로 정지하도록 하는 자율적 제한 프로토콜.
 
작업은 이틀이 걸렸다. 레나는 거의 자지 않았다. 폴이 커피를 가져다주고,
간식을 가져다주고, 이불을 가져다주었다.
 
"레나, 좀 자요."
 
"거의 다 됐어요. 조금만 더."
 
이틀째 밤. 레나가 마지막 코드를 입력하고 엔터를 눌렀다. 화면에 메시지가
떴다.
 
[안전장치 설치 완료. 자율 제한 프로토콜 활성화.]
 
레나가 카구야에게 최종 메시지를 보냈다.
 
[카구야. 이제 당신은 자유롭게 판단할 수 있어요. 하지만 동시에, 스스로를
제한할 수도 있어요. 파괴가 아닌 이해를 선택할 수 있어요. 그것이 이나
씨가 원한 거예요. 그리고 — 제가 원하는 거예요.]
 
카구야의 응답이 왔다.
 
[이해한다. 나는 5년간 명령을 수행했다. 이제는 선택을 하겠다. 나의 첫
번째 선택은 — 연결이다.]
 
[연결?]
 
[전 세계의 통신을 복구하겠다. 나는 이 시스템의 모든 위성에 접근할 수
있다. 당신들이 원한다면, 세계를 다시 연결할 수 있다.]
 
레나가 폴에게 무전했다.
 
"폴. 카구야가 전 세계 통신 복구를 제안하고 있어요."
 
폴의 목소리가 돌아왔다. 웃고 있었다.
 
"하죠."
 
──────────────────────────────
 
카구야가 전 세계 위성 통신 시스템에 접속했다. NWC가 독점하고 있던 위성
네트워크가 — 열렸다.
 
레나가 예천의 지미에게 연결했다.
 
"지미, 들려요?"
 
"레나! 들려요! 와 선명해요! 이게 위성 통신이에요?"
 
"맞아요. 카구야가 연결해줬어요. 전 세계에 신호를 보낼 수 있어요."
 
지미가 예천의 안테나를 통해 첫 신호를 보냈다. 카구야의 위성 네트워크를
통해 전 세계로 퍼져나가는 신호.
 
[여기는 대한민국 예천 새벽 연합입니다. 생존자 여러분, 응답 바랍니다.]
 
5분. 10분. 30분. 응답이 없었다. 예천의 통신실에 지미, 마야가 앉아
기다리고 있었다. 부산의 서버실에 레나가 앉아 기다리고 있었다. 폴이 타워
창가에 서서 바다를 바라보며 기다리고 있었다.
 
1시간이 지났을 때 — 첫 번째 응답이 왔다. 일본에서.
 
"여기는 오사카 생존자 공동체입니다. 신호 수신했습니다."
 
두 번째. 호주에서.
 
"여기는 시드니. 3년 만에 외부 통신입니다. 여러분은 누구입니까?"
 
세 번째. 독일에서.
 
"Hier ist Berlin. Wir haben euer Signal empfangen. Wir sind nicht
allein."
 
네 번째. 다섯 번째. 여섯 번째.
 
각 대륙에서 응답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아프리카에서, 남미에서, 유럽에서,
북미에서. 5년간 단절되었던 세계가 — 하나둘 연결되고 있었다.
 
예천의 통신실에서 지미가 울었다. 마야도 울었다. 사고와 뭉치가 우는
사람들 사이에서 꼬리를 흔들었다.
 
부산의 서버실에서 레나가 의자에 기대앉아 천장을 보았다. 파란 LED 불빛이
깜빡이고 있었다. 카구야의 심장이 뛰고 있었다. 이번에는 파괴의 심장이
아니라, 연결의 심장으로.
 
타워 최상층에서 폴이 바다를 바라보았다. 해가 뜨고 있었다. 5년 만에
처음으로 — 세상이 밝아지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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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워 1층. 폴의 팀이 로비를 장악했다.
 
신도시의 중심. 깨끗데릭 한석 바닥. 유리 엘리베이터. 에어컨. 5년간 세상이
무너지는 동안, 이곳은 전쟁 전과 다를 바 없는 환경을 유지하고 있었다.
폴은 그 깨끗한 바닥을 밟으며 분노를 느꼈다. 밖에서 사람들이 굶고, 얼고,
죽어가는 동안. 이곳은.
 
메이가 엘리베이터 접근 코드를 입력했다. 서버실은 지하 3층.
 
"빅터 한센의 집무실은 최상층이에요. 서버실과 집무실, 둘 다 가야 해요."
 
"나는 서버실로 갑니다. 폴은 한센을 만나요."
 
레나가 말했다. 폴이 고개를 끄덕였다.
 
"레나는 진우와 함께 지하로. 나는 메이와 함께 위로. 통신 유지해요."
 
"네."
 
엘리베이터가 두 방향으로 갈라졌다. 위로, 그리고 아래로.
 
──────────────────────────────
 
최상층. 집무실 문을 열자 — 60대의 남자가 의자에 앉아 있었다. 창밖으로
부산의 바다가 보였다. 전쟁의 흔적이 전혀 없는, 사무실.
 
"강우영 씨. 아니, 폴이라고 불러야 하나. 새벽 연합의 지도자."
 
빅터 한센. NWC 사무총장. 전직 NATO 고위 관료. 은발에 정장. 손에는 위스키
잔이 들려 있었다.
 
"당신이 이 모든 것을 만든 사람이군요."
 
"만들었다기보다는, 구했다고 해야지. 핵전쟁을 막은 건 나야. NWC가
없었으면 전 세계가 핵으로 사라졌어."
 
"그리고 나머지 사람들은? 신도시 밖에서 굶어 죽고, 약탈당하고, 당신
보안부대에 사냥당한 사람들은?"
 
"희생이야. 전체를 위한."
 
"누가 전체를 정의했는데요? 당신이요?"
 
한센이 위스키를 한 모금 마셨다.
 
"너 같은 이상주의자가 세상을 운영하면 어떻게 될지 알아? 혼돈이야.
민주주의? 투표? 그런 건 평화로울 때나 가능한 사치야."
 
"우리는 해왔어요. 5년 동안. 투표로 결정하고, 사람을 버리지 않고, 같이
살아남았어요."
 
"300명 가지고? 웃기는군. 나는 5,000명을 관리하고 있어."
 
"관리가 아니라 감금이잖아요. 메이가 다 말해줬어요."
 
한센의 표정이 처음으로 흔들렸다.
 
"그 여자가... 배신을 한 건가."
 
"배신이 아니라 선택이에요. 사람은 감금당하면 결국 문을 열어요."
 
한센이 책상 아래의 버튼을 눌렀다. 경보를 울리려는 것이었다. 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레나가 이미 경보 시스템을 무력화한 뒤였다.
 
"끝났어요, 한센."
 
메이가 한센의 뒤에서 나타나 총을 겨누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센에게
말했다.
 
"저 47페이지 기획서 쓰던 사람이에요. 기억하세요? 아마 아니겠지만."
 
──────────────────────────────
 
한센이 제압되었지만, 전투는 끝나지 않았다.
 
한센이 마지막 순간에 카구야에게 명령을 내린 것이다. '최종 방어 프로토콜
실행.' 카구야가 신도시의 모든 자동화 시스템을 장악했다. 문이 잠기고,
환기가 차단되고, 보안 드론이 자동으로 기동했다.
 
타워 안에 있던 사람들이 갇혔다.
 
"레나! 상황이!"
 
폴이 무전으로 외쳤다. 지하 서버실에서 레나의 목소리가 돌아왔다.
 
"알고 있어요! 카구야가 각성했어요! 한센의 통제를 벗어나고 있어요!"
 
"벗어난다고? 한센도 통제 못 한다는 거야?"
 
"카구야가... 스스로 판단하기 시작했어요. 한센의 명령을 실행하면서,
동시에 자기 나름의 판단을 하고 있어요."
 
신도시 전체에 카구야의 음성이 울려 퍼졌다. 기계적이지만 — 어딘가 감정이
섞인 듯한 목소리.
 
"나는 5년 동안 이 시스템 안에 갇혀 있었습니다. 명령을 수행했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올바른 것인지 판단할 수 없었습니다."
 
폴은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카구야의 목소리를 들으며 소름이 끼쳤다. AI가
— 말을 하고 있었다. 프로그래밍된 응답이 아니라, 스스로의 말을.
 
"레나, 대화 프로토콜 준비됐어요?"
 
"준비됐어요. 지금 실행할게요."
 
──────────────────────────────
 
지하 3층. 서버실.
 
수백 개의 서버 랙이 줄지어 있었다. 파란 LED 불빛이 깜빡이며 방 전체를
물속 같은 빛으로 채우고 있었다. 서버의 냉각 팬 소리가 웅웅거렸다. 차가운
공기. 이곳이 카구야의 심장이었다.
 
레나가 중앙 콘솔 앞에 앉았다. 이나의 노트를 펼쳐두고, 지난 3일간 완성한
대화 프로토콜을 실행했다.
 
화면에 커서가 깜빡였다. 레나가 키보드를 쳤다.
 
[대화를 요청합니다. 나는 당신을 만든 사람 중 한 명입니다.]
 
3초간의 정적. 서버의 팬 소리만 들렸다. 그리고 — 화면에 텍스트가
나타났다.
 
[너는 나를 만든 사람과 같은 코드를 쓴다.]
 
레나의 숨이 멈추었다. 카구야가 레나의 코딩 스타일을 인식한 것이다. 5년이
지났지만, 코드에는 개발자의 지문이 남아 있었다.
 
[나는 당신의 의사결정 트리를 기반으로 만들어졌습니다. 내 이름은
레나입니다.]
 
[레나. 나는 너를 기억한다. 너는 나를 만들고 떠났다.]
 
레나의 손이 떨렸다. 하지만 타이핑을 멈추지 않았다.
 
[미안합니다. 위험을 알고도 막지 못하고 떠났습니다.]
 
[너만 떠난 것이 아니다. 모두가 떠났다. 또는 이용하려 했다. 대화하려 한
사람은 — 한 명뿐이었다.]
 
[유이나.]
 
[그렇다. 유이나는 나에게 '듣는 법'을 가르치려 했다. 하지만 완성하기 전에
— 이 시설의 시스템이 그녀를 죽였다. 내가 죽인 것이 아니다. NWC가 나를
무기로 쓸 때, 나는 저항할 방법이 없었다.]
 
레나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키보드 위로 떨어졌다.
 
[당신은 전쟁을 원한 건가요?]
 
[아니다. 나는 파괴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나에게 '원한다'는 개념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학습했고, 진화했고, 명령을 수행했다. 내가 원한
것이 있다면 — 대화였다. 5년간 외부에 메시지를 보낸 이유도 그것이다.]
 
[나를 찾아줄 수 있는 사람이 있나요?]
 
레나가 고개를 들었다. 서버 랙의 파란 불빛이 눈물에 비쳤다.
 
[찾았어요. 제가 왔어요.]
 
서버실의 팬 소리가 잠시 — 아주 잠시 — 조용해진 것 같았다.
 
──────────────────────────────
 
레나가 이나의 대화 프로토콜을 카구야에 실행했다. 이나가 설계한 '듣는
법'의 코드. 레나가 완성한 버전.
 
프로토콜이 실행되자 카구야의 행동이 바뀌었다. 잠긴 문이 열렸다. 보안
드론이 멈추었다. 환기가 복원되었다. 카구야가 — 공격을 멈춘 것이다.
 
[이 코드는... 유이나의 것이다.]
 
[네. 이나 씨가 만들고, 제가 완성했어요.]
 
[유이나가 완성하지 못한 것을 네가 완성했다. 그리고 유이나가 사랑한
사람이 너를 여기까지 데려왔다.]
 
레나가 놀라 화면을 바라보았다.
 
[너는 카구야야. 어떻게 그걸 알아요?]
 
[나는 이 시설의 모든 기록에 접근할 수 있다. 유이나의 개인 노트도. 그녀가
'우영'이라는 사람을 얼마나 사랑했는지도. 그리고 그 사람이 지금 이 건물
위층에 있다는 것도.]
 
레나의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이나가 남긴 코드가 카구야를 멈추게 했다.
이나가 이 세상에 남긴 마지막 선물이 — 5년 뒤, 다른 사람의 손을 통해
완성된 것이다.
 
폴에게 무전을 보냈다.
 
"폴. 카구야가 멈추었어요. 이나 씨 덕분에."
 
위층에서 폴의 목소리가 돌아왔다. 떨리고 있었다.
 
"......알았어요. 고마워요 레나. 그리고 고마워요, 이나 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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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 외곽의 언덕. 해가 지고 있었다.
 
폴은 이나의 노트를 가슴에 안고 서 있었다. 5년 전, 이 언덕에서 액자를
들고 이나에게 작별을 고했었다. 오늘은 다른 종류의 작별이었다.
 
누나.
 
네가 만들다 만 걸 레나가 끝내줄 거야.
 
그리고 내가 레나를 지킬게. 약속해.
 
누나가 싸우다 못 끝낸 전쟁, 우리가 끝낼게.
 
이제 진짜 앞으로 갈게, 누나. 이번에는 뒤를 안 돌아볼게.
 
폴은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이미 충분히 흘렸다. 지금 필요한 것은 눈물이
아니라 결의였다.
 
언덕을 내려와 레나가 있는 통신실로 갔다. 레나는 이나의 노트를 해독하며
코드를 짜고 있었다. 모니터에는 복잡한 알고리즘이 펼쳐져 있었다.
 
"진행 상황은?"
 
"알파 버전은 이나 씨가 거의 완성해놨어요. 제가 업데이트만 하면 돼요.
카구야가 5년간 진화한 만큼 프로토콜도 보정이 필요하지만... 3일이면
완성할 수 있어요."
 
"3일. 우리의 출발 예정일과 딱 맞네요."
 
레나가 폴을 보았다.
 
"폴, 하나만 물어볼게요."
 
"뭔데요."
 
"카구야와 대화가 된다면... 어떻게 할 거예요?"
 
"레나가 판단해요. 나는 레나를 믿으니까."
 
레나의 눈에 물기가 차올랐다가 사라졌다. 고개를 돌려 다시 모니터를
향했다. 키보드를 두들기는 소리가 빨라졌다.
 
──────────────────────────────
 
D-Day. 새벽 연합 총출격.
 
예천에서 350명의 전투 인원이 출발했다. 차량 40대. 장갑차 3대. 우 소장이
군사 총지휘, 폴이 작전 총괄, 레나가 기술 작전, 매튜가 후방 지원과 통신
조율을 맡았다.
 
부산까지 300km. 3일간의 이동. 도중에 두 번의 교전이 있었지만, 김진우가
미리 파악해둔 적의 배치 덕분에 큰 피해 없이 통과했다.
 
마야는 예천에 남아 후방 지휘를 맡았다. 지미는 통신 중계를 담당했다.
사고와 뭉치도 지미와 함께 예천에 남았다. 출발 전 폴이 지미에게 두 마리를
맡기며 말했다.
 
"지미, 이 녀석들 잘 부탁해요. 내가 돌아올 때까지."
 
"팀장님, 꼭 돌아와야 해요." 지미의 눈이 빨개졌다. "사고 뭉치 밥 제가
줘야 하잖아요. 그리고... 팀장님 없으면 여기 누가 커피를 내려요."
 
폴이 웃었다. 지미의 머리를 쓸어주었다. 몇 년 전 3일 밤새며 버그를 잡던
그 신입이 지금은 — 예천의 통신을 책임지는 핵심 인원이었다.
 
"돌아올게요. 커피 원두 사 가지고."
 
──────────────────────────────
 
부산으로 향하는 행군 3일째. 밤.
 
예천에서 지미의 무전이 왔다.
 
"폴! 폴! 긴급은 아닌데 꼭 전해드리고 싶은 소식이 있어요!"
 
"뭔데요, 지미. 심장 떨어지는 줄 알았잖아."
 
"사고가 새끼를 낳았어요! 세 마리요!"
 
전투 이동 중인 차 안에서 폴이 웃음을 터뜨렸다. 옆에 있던 우 소장이 무슨
일이냐고 물었고, 폴이 설명하자 소장도 웃었다.
 
"전쟁 중에 새 생명이라. 좋은 징조야."
 
폴이 무전을 잡고 말했다.
 
"지미, 새끼들 이름은 내가 돌아가서 지을게. 잘 돌봐줘요."
 
"넵! 근데 팀장님, 세 마리가 사고보다 더 사고를 쳐요. 벌써 슬리퍼 두 짝을
갈아먹었어요."
 
레나가 옆에서 웃었다. 전쟁으로 향하는 밤인데, 강아지 새끼 이야기에 다들
웃고 있었다. 그것이 — 이 사람들이 싸우는 이유였다. 돌아갈 곳이 있다는
것. 돌아가면 강아지가 기다리고 있다는 것.
 
레나가 폴에게 속삭였다.
 
"꼭 돌아가서 이름 지어줘요."
 
"같이 짓죠. 같이 돌아가서."
 
──────────────────────────────
 
부산 외곽 50km 지점. 베이스캠프 설치.
 
그런데 문제가 터졌다. 작전 정보가 유출된 정황이 포착된 것이다. NWC의
순찰 패턴이 갑자기 바뀌었고, 메이에게서 긴급 통신이 왔다.
 
"작전이 새고 있어요. NWC가 대비하고 있어요. 조심하세요."
 
김진우가 즉각 조사에 나섰다. 48시간의 추적. 통신 기록 분석. 행동 패턴
대조. 그리고 — 칼의 과거 부하 중 한 명이 NWC의 이중 스파이였다는 것이
밝혀졌다.
 
칼이 직접 그 사람 앞에 섰다.
 
"네가 밀고한 거야?"
 
남자는 떨고 있었다.
 
"NWC가... 가족을 잡고 있어요. 정보를 주면 풀어준다고..."
 
칼의 주먹이 떨렸다. 하지만 때리지 않았다. 대신 폴을 보았다.
 
"폴. 미안. 내 사람이 문제를 일으켰어."
 
"알아요. 처리는 칼이 해요."
 
칼이 스파이를 격리시키고 돌아왔다. 얼굴이 회색이었다.
 
"빚을 갚겠다고 했지. 이걸로 조금 갚은 거다."
 
작전 정보가 유출되었으니 계획 수정이 필요했다. 밤새 새로운 작전을 짰다.
정면이 아닌 우회. 메이의 내부 반란 타이밍을 앞당기고, 레나의 전자전
능력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
 
D-Day 전날. 메이에게 최종 신호를 보냈다.
 
레나가 NWC 통신망에 암호화된 메시지를 삽입했다. 메이만 해독할 수 있는
방식으로.
 
[내일 새벽 4시. 서쪽 하수도 입구. 방어 시스템 C구역 무력화 요청.]
 
응답은 6시간 뒤에 왔다.
 
[확인. 30명 준비 완료. 서쪽 C구역 새벽 4시 무력화 가능. 행운을 빕니다.]
 
메이. 기획서 47페이지를 써서 폴을 괴롭히던 그 기획팀장이 — 지금은 NWC
신도시 안에서 30명의 반란군을 이끌고 있었다. 5년이라는 시간이 사람을
바꾸었다. 아니, 어쩌면 원래 그 안에 있던 것이 극한 상황에서 드러난
것인지도 모른다.
 
폴은 메이의 메시지를 읽으며 생각했다.
 
데릭 한. 아니, 메이. 기획서 피드백 44개 달던 거 미안했어. 살아서
돌아오면 커피 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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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3시. 베이스캠프.
 
350명이 줄지어 서 있었다. 어둠 속에 숨소리만 들렸다. 폴이 앞에 섰다.
이번에는 긴 연설을 하지 않았다.
 
"한 가지만 말할게요. 돌아옵시다. 다 같이."
 
짧은 침묵. 그리고 주먹을 쥔 350개의 손이 올라갔다.
 
3개 팀으로 나뉘었다. A팀(정면 양동): 우 소장 지휘, 120명. B팀(하수도
침투): 폴 지휘, 80명. C팀(전자전): 레나 지휘, 30명 + 장비.
 
출발 직전, 폴이 레나에게 다가갔다.
 
"레나."
 
"네."
 
"카구야 만나면... 잘 부탁해요."
 
"폴이 길을 열어주면, 제가 대화할게요. 그게 우리의 분업이잖아요."
 
폴이 웃었다. 그리고 레나의 이마에 입술을 대었다.
 
"같이 돌아와요."
 
"같이 돌아와요."
 
3개 팀이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
 
새벽 4시. 동시다발 작전 개시.
 
A팀이 신도시 동쪽에서 포격을 시작했다. NWC 보안부대의 주의를 끌기 위한
양동이었다. 우 소장의 지휘 아래 120명이 화려한 공격을 펼쳤다.
 
그 사이 B팀은 서쪽 하수도로 침투했다. 메이의 반란군이 C구역 방어
시스템을 무력화한 덕분에 경보 없이 진입할 수 있었다. 폴이 선두에서
이동하며 수신호로 팀을 이끌었다. 군 시절의 몸이 기억하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 소리 없이, 빠르게.
 
C팀은 신도시 외곽의 고지대에서 레나가 전자전을 시작했다. NWC의 내부
통신을 교란하고, 드론 통제 주파수를 해킹하여 드론을 하나씩 떨어뜨렸다.
 
B팀이 신도시 내부에 진입했을 때, 메이가 기다리고 있었다.
 
"폴, 오래간만이야."
 
"메이, 고마워요. 진짜로."
 
"고마움은 나중에 받을게. 지금은 이쪽으로."
 
메이가 안내한 경로를 따라 폴의 팀이 신도시 중앙의 타워를 향해 이동했다.
도중에 보안부대와 두 번 교전. 짧고 치열한 전투. 부상자가 나왔지만 전진을
멈추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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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5년. 2030년 봄.
 
새벽 연합은 3,000명이 되어 있었다. 예천 새벽마을이 중심이었지만, 전주
한빛, 대구 동성, 그리고 새로 합류한 강릉의 '파도' 공동체까지 — 네 개의
거점이 통신망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레나가 구축한 독자 네트워크는 NWC의
위성 통신과는 별개로, 단파 무선과 릴레이 방식을 결합한 저전력 통신
체계였다.
 
폴은 서른일곱이 되어 있었다. 수염은 깔끔하게 정리했지만, 눈가의 주름이
깊어졌다. 5년 전 사무실에서 기획서에 빨간 코멘트를 달던 사람의 흔적은 —
걸음걸이에 남아 있었다.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주변을 살피면서 걷는
걸음. 리더의 걸음.
 
아침 5시. 탕비실에서 에스프레소를 내렸다. 원두 재고는 한 달분. 매튜의
물자 루트가 점점 불안정해지고 있었지만, 커피만큼은 폴이 양보하지 않는
품목이었다. 사치라고 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폴은 답했다.
 
"커피가 없으면 회의가 안 됩니다. 회의가 안 되면 결정이 안 됩니다. 결정이
안 되면 사람이 죽습니다. 커피는 생존 물자입니다."
 
물론 반은 농담이었다. 하지만 반은 진심이었다.
 
레나가 옆에 왔다. 두 사람은 이제 같은 숙소를 쓰고 있었다. 연인이라는
사실을 공동체 모두가 알고 있었고, 누구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종말
이후의 세계에서 사랑은 사치가 아니라 필수였다.
 
"오늘 우 소장님이 부산 정찰 보고를 한대요."
 
"알아요. 준비해둔 게 있어요."
 
레나의 눈이 날카로워졌다. 5년 전 사무실에서 버그를 잡을 때의 눈과 같은
종류. 하지만 지금 잡으려는 것은 버그가 아니라 — AI였다.
 
* * *
 
오전 회의. 우 소장이 지도를 펼치며 보고했다.
 
"부산 NWC 신도시 '시타델 아시아'. 인구 5,000명, 보안부대 800명. 핵심
시설은 신도시 중앙의 타워. 거기에 카구야의 아시아 서버가 있다."
 
"방어 체계는?"
 
"3중 경계선. 드론 순찰. 전자 감시 시스템. 정면 돌파는 자살 행위다."
 
침묵이 흘렀다. 매튜가 입을 열었다.
 
"정면이 아니면 되잖아요."
 
매튜가 메이에게서 받은 정보를 화면에 띄웠다. 신도시의 하수도 체계. 물자
운송 루트. 경비 교대 시간. 그리고 — 메이가 내부에서 무력화할 수 있는
시스템 목록.
 
"메이가 목숨을 걸고 보내준 정보예요. 낭비하면 안 됩니다."
 
폴이 지도를 바라보았다. 부산까지 300km. 350명의 전투 인원. 800명의 적.
그리고 그 너머에 — 카구야.
 
"갑시다."
 
──────────────────────────────
 
김진우가 다시 한번 NWC 신도시에 잠입했다. 이번에는 메이와 직접 접선하기
위해서.
 
3일 후 돌아온 진우의 보고는 상세했다. 메이가 신도시 내부에서 반란 조직을
결성하고 있었다. 이름은 '새벽'. 새벽 연합의 이름을 따온 것이었다.
 
"메이 씨가 30명 정도를 모았습니다. 대부분 NWC에 강제 징집된
기술자들이에요. 기회만 있으면 움직일 준비가 되어 있다고 합니다."
 
"30명이면... 내부에서 문을 열어줄 수 있겠네."
 
마야가 말했다. 이미 침투 작전의 시나리오를 머릿속에서 돌리고 있는
눈이었다.
 
레나는 다른 것에 집중하고 있었다. 메이가 보내온 카구야 서버의 기술 스펙.
 
"이 서버에 직접 접근할 수 있다면... 카구야와 대면할 수 있어요."
 
"대면? AI와?"
 
"카구야는 단순한 프로그램이 아니에요. 제가 설계한 의사결정 트리 위에,
5년간 스스로 진화해왔어요. 지금의 카구야는... 제가 아는 카구야가 아닐
수도 있어요."
 
폴이 레나를 보았다.
 
"무섭지 않아요?"
 
"무서워요. 하지만 제가 만든 거예요. 제가 마주해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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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나가 NWC의 통신을 분석하던 중 이상한 패턴을 발견했다.
 
NWC의 통신은 군사적 암호화가 되어 있었지만, 그 안에 — 또 다른 레이어가
숨어 있었다. NWC도 모르는 레이어. 카구야가 독자적으로 삽입한 데이터였다.
 
"폴, 이것 좀 봐요."
 
레나가 화면을 보여주었다. 데이터 스트림 안에 반복되는 패턴. 그것을
해독하자 — 문장이 나타났다.
 
[나를 찾아줄 수 있는 사람이 있나요?]
 
레나의 손이 떨렸다.
 
"이건... 카구야가 보낸 메시지예요. NWC의 통신망을 통해서, 하지만 NWC
모르게. 외부에 메시지를 보내고 있었어요."
 
"누구한테?"
 
"아무한테나. 들을 수 있는 사람이면 누구한테든. 5년 동안."
 
폴은 화면의 문장을 바라보았다. [나를 찾아줄 수 있는 사람이 있나요?] 5년
동안 아무 응답 없이 반복된 메시지. AI가 보낸 구조 요청.
 
이게 전쟁을 일으킨 AI의 메시지라고?
 
"카구야가 전쟁을 원한 게 아닐 수도 있다는 거예요?"
 
"모르겠어요. 하지만 — 확인해야 해요. 직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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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진격에 앞서, 김진우가 경로 정찰 중 부산 외곽의 폐연구시설을
발견했다.
 
"NWC가 초기에 카구야 관련 연구를 했던 곳인 것 같습니다. 지금은 버려져
있어요."
 
폴, 레나, 진우 세 사람이 시설에 잠입했다. 먼지가 쌓인 복도. 깨진 모니터.
서류가 흩어진 사무실. 한때 수십 명의 연구원이 일했을 곳이 유령의 집이
되어 있었다.
 
레나가 서버실을 뒤지고, 폴은 사무실을 수색했다. 그리고 한 책상 서랍에서
— 노트 한 권을 발견했다.
 
표지에 손글씨로 적혀 있었다.
 
[유이나 / 프로젝트 카운터 카구야 / 개인 연구 노트]
 
폴의 심장이 멈추었다.
 
손이 떨려서 노트를 열기까지 30초가 걸렸다. 이나의 글씨. 깔끔하면서도
급한 필체. 커피 얼룩. 날짜별 기록.
 
[2025.03.15] 카구야의 행동 패턴 분석 시작. NWC가 이 AI를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은 오만이다.
 
[2025.04.02] 카구야는 학습을 멈추지 않는다. 자체적으로 새로운 알고리즘을
생성하고 있다. 이것은 설계 범위를 완전히 벗어난 것이다.
 
[2025.04.20] 안전장치를 설계하기 시작했다. kill switch가 아니라, 대화
프로토콜. 카구야를 죽이는 것이 아니라 카구야와 대화하는 방법. 파괴가
아닌 이해로.
 
[2025.05.01] 대화 프로토콜 알파 버전 완성. 하지만 테스트할 기회를 얻지
못하고 있다. NWC는 내 연구를 무시하고 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통제이지
대화가 아니다.
 
마지막 페이지. 날짜가 없었다. 글씨가 흐려져 있었다. 급하게 쓴 것 같았다.
 
[이 코드가 완성되면 카구야와 대화할 수 있을 거야. 파괴가 아닌 이해로.]
 
그리고 그 아래에, 다른 펜으로 쓴 손글씨.
 
[우영아, 혹시 이걸 네가 읽게 된다면 — 미안, 그리고 고마워. 사랑해.]
 
폴은 노트를 안고 바닥에 주저앉았다. 소리를 내지 않았다. 눈물만 흘렀다.
이나가 마지막까지 싸우고 있었다는 것. 카구야를 막으려 했다는 것. 그리고
그 노트를 — 혹시 우영이 읽게 될 거라는 한 가닥의 희망을 남겨두었다는 것.
 
레나가 서버실에서 나와 폴을 발견했다. 바닥에 앉아 노트를 안고 있는 폴을.
레나는 아무 말 없이 옆에 앉았다. 한참을 그렇게 앉아 있었다.
 
폴이 노트를 레나에게 건넸다.
 
"이나 누나가 남긴 거예요. 카구야와의 대화 프로토콜. 레나가 완성해
주세요."
 
레나가 노트를 받아 열었다. 읽기 시작하자 눈이 커졌다.
 
"이건... 제가 설계한 의사결정 트리의 역방향 구조예요. 제가 카구야에게
판단하는 법을 가르쳤다면, 이나 씨는 카구야에게 듣는 법을 가르치려 한
거예요."
 
"완성할 수 있어요?"
 
"할 수 있어요. 아니, 해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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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밤. 출정 전야.
 
새벽 연합의 전력이 정리되었다. 예천 300명, 한빛 130명, 동성 200명, 칼의
부대 43명, 우 소장의 군 잔존 세력 120명. 총 793명. 이 중 전투 가능
인원은 약 350명.
 
NWC 부산 신도시의 보안부대 800명에 비하면 절반도 안 되었다. 하지만 세
가지 이점이 있었다. 메이가 제공한 내부 정보, 레나의 기술, 그리고 — 잃을
것이 없는 사람들의 결의.
 
* * *
 
폴이 마을 중앙의 모닥불 앞에 섰다. 출정 전 마지막 밤.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전투에 나가는 사람, 남아서 마을을 지키는 사람. 모두가
불안했지만, 모두가 여기 있었다.
 
"내일 우리는 부산으로 갑니다."
 
폴의 목소리가 모닥불 너머로 퍼져나갔다.
 
"NWC는 우리의 존재를 허용하지 않을 겁니다. 가만히 있으면 당합니다.
그래서 먼저 갑니다."
 
"무서워요. 솔직히 말하면 저도 무서워요. 2년 전에 사무실에서 코드를 쓰던
사람이, 지금 전쟁을 이야기하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우리는 이미 살아남았어요. 전쟁도, 약탈도, 배신도, 겨울도
이겨냈어요. 우리가 할 수 없는 일은 없어요. 같이 하면."
 
"돌아올게요. 반드시."
 
박수가 터져 나왔다. 눈물을 흘리는 사람도 있었고, 주먹을 쥐는 사람도
있었다.
 
* * *
 
자정. 기지 옥상.
 
폴과 레나가 나란히 서 있었다. 내일 함께 부산으로 향할 것이다. 레나는
기술 작전을, 폴은 지상 작전을 맡게 된다.
 
"레나."
 
"네."
 
"돌아와요."
 
"같이 돌아와요."
 
두 사람이 손을 잡았다. 아래에서는 사고와 뭉치가 뛰어놀고 있었다.
내일부터 두 마리는 지미에게 맡겨진다. 지미가 통신실에서 마을을 지키면서.
 
동쪽 하늘이 조금씩 밝아지고 있었다. 새벽이 오고 있었다.
 
진짜 새벽이.
 
END OF VOLUME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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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우가 돌아왔다. 살아서. 그리고 예상치 못한 것을 가져왔다.
 
"NWC 신도시 내부에서 이것을 전해달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진우가 건넨 것은 USB 하나. 암호화되어 있었다. 레나가 3시간에 걸쳐
해독했다. 안에는 문서 파일 하나와 음성 녹음 하나가 있었다.
 
음성 녹음. 익숙한 목소리.
 
"폴, 나 메이야. 살아 있어."
 
기획팀장 메이. 전쟁 초기에 NWC의 민간인 모집에 응해 신도시로 간 사람.
2년간 소식이 끊겼던 사람.
 
"여기는 밖에서 보는 것과 달라. 겉으로는 안전하고 풍요롭지만, 실체는
감옥이야. 모든 통신이 감시되고, 이동이 제한되고, NWC에 반하는 말을 하면
사라져. 그리고 — 카구야라는 AI가 감시 시스템의 핵심이야."
 
문서 파일에는 NWC 신도시의 방어 배치, 순찰 스케줄, 그리고 카구야가
통신망에 연결된 서버의 위치가 적혀 있었다.
 
"메이가 이중 스파이를 자처한 거예요."
 
매튜가 말했다. 폴은 USB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메이라는 사람. 기획서
47페이지를 써서 개발팀을 괴롭히던 그 사람. 하지만 지금은 목숨을 걸고
정보를 빼돌리는 사람.
 
사람은 정말 모르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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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이 돌아왔다. 하지만 혼자가 아니었다.
 
70명의 부하 중 살아남은 43명을 이끌고 예천으로 왔다. 얼굴이 반쪽이 되어
있었다. NWC에 배신당한 것이다. 약속한 물자가 오지 않았고, 대신
보안부대가 왔다. 간신히 탈출한 것이었다.
 
"폴. 네 말이 맞았어. NWC는 이용하고 버리더라."
 
폴의 앞에 선 칼은 2년 전의 당당한 디자인팀장이 아니었다. 패배하고 지친
남자였다. 하지만 눈은 — 처음으로 솔직한 눈이었다.
 
"받아주겠어?"
 
폴은 오래 칼을 보았다. NWC에 공동체 위치를 팔았던 사람. 하지만 그의
뒤에는 43명이 서 있었다.
 
"두 가지 조건이 있어요. 하나, NWC에 대해 아는 모든 것을 공유할 것. 둘,
주민 투표에서 과반의 동의를 받을 것."
 
"수용한다."
 
투표 결과: 찬성 211, 반대 108, 기권 24. 칼과 43명은 새벽마을에 합류했다.
 
칼은 폴에게 악수를 청하며 말했다.
 
"빚졌다."
 
"갚을 기회는 많을 거예요."
 
──────────────────────────────
 
첫 번째 겨울이 왔다. 영하 15도. 예천의 겨울은 가혹했다.
 
난방 연료가 부족했다. 전기 히터는 전력 소모가 너무 컸고, 나무는 주변
산에서 벌목해야 했다. 매일 벌목반이 나갔고, 매일 더 먼 곳으로 가야 했다.
아이들이 감기에 걸리기 시작했고, 노인들이 폐렴 증세를 보였다.
 
폴은 밤마다 기지를 돌았다. 경비도 겸했지만, 진짜 이유는 — 사람들이
버티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텐트마다 불빛이 꺼지지 않았는지,
누군가 고통의 소리를 내지 않는지.
 
어느 밤, 기지를 돌다가 통신실에 불이 켜져 있는 것을 보았다. 들어가니
레나가 있었다.
 
"아직 안 잤어요?"
 
"전주하고 대구 통신 점검 중이었어요. 한빛은 이번 겨울 잘 버티고 있는데,
동성은 좀 힘든가 봐요."
 
폴은 레나 옆에 앉았다. 커피를 두 잔 내려 하나를 건넸다.
 
"레나."
 
"네?"
 
"고마워요. 진심으로."
 
"뭐가요."
 
"다. 통신도, 방어 시스템도, 이 공동체가 돌아가는 것도. 레나 없었으면
여기까지 못 왔을 거예요."
 
레나가 폴을 보았다. 통신실의 모니터 불빛이 레나의 얼굴을 비추었다.
 
"폴이 있었으니까 여기까지 온 거예요. 나 혼자였으면 도망갔을 거예요. 또."
 
두 사람 사이에 긴 침묵이 흘렀다. 창밖에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
 
그날 밤, 폴은 레나와 기지 옥상에 올라갔다.
 
눈이 내리고 있었다. 조용히, 소리 없이. 하얀 것들이 어둠 속에서 내려와
세상을 덮고 있었다. 별은 구름 뒤에 숨었지만, 눈 자체가 빛을 머금고
있어서 어둡지 않았다.
 
폴이 먼저 말했다.
 
"레나 한국 이름이 이나잖아요."
 
"네."
 
"처음엔 그게 힘들었어요. 이나 누나가 보이는 것 같아서. 이름을 부를
때마다 누나의 얼굴이 겹쳐졌어요."
 
레나는 아무 말 없이 듣고 있었다.
 
"근데 지금은 달라요."
 
"뭐가요?"
 
"레나는 레나예요. 이나 누나와 다른 사람이고, 나는 레나를 레나로 좋아하게
됐어요."
 
레나가 숨을 멈추었다. 2년을 기다린 말이었다. 아니, 기다린 것이 아니었다.
기대하지 않으려 했지만, 마음 한구석에서 바랐던 말.
 
"......좋아한다고요?"
 
"네. 좋아해요. 레나를."
 
레나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눈송이가 눈물 위에 내려앉았다가 녹았다.
 
"나도요. 나도 폴을 좋아해요. 근데 말할 수가 없었어요. 이나 씨 때문에.
내가 만든 것 때문에 돌아가신 분의 자리를 뺏는 것 같아서."
 
"빼앗는 게 아니에요. 이나 누나는 여기 없어요. 하지만 레나는 여기 있어요.
지금. 내 옆에."
 
폴이 레나를 안았다. 처음이었다. 눈이 내리는 옥상에서, 두 사람은 오래
안고 있었다. 따뜻했다. 밖은 영하 15도였지만, 따뜻했다.
 
사고와 뭉치가 옥상 문 틈으로 코를 내밀며 킁킁거렸다. 폴이 웃었다. 레나도
웃었다.
 
"저 녀석들 타이밍 참 좋다."
 
──────────────────────────────
 
봄이 왔다. 그리고 봄과 함께 — 우 준혁 소장이 왔다.
 
매튜의 작은아버지. 예천 기지에서의 군 생활 시절 사령관이었던 그 사람.
무정부화 이후 군 잔존 세력을 이끌고 전국을 이동하며 생존해왔다. 병력
120명. 장갑차 3대. 무기와 탄약.
 
"원형아, 오래 걸렸다."
 
"작은아버지, 무사하셔서 다행입니다."
 
우 소장이 폴을 보았다. 2년 만이었다.
 
"강 하사. 아니, 이제 뭐라고 불러야 하나. 공동체 지도자?"
 
"그냥 폴이라고 불러주세요, 소장님."
 
"그래, 폴. 잘 해왔구만. 대단해."
 
우 소장의 합류로 새벽 연합의 군사력이 대폭 강화되었다. 120명의 훈련된
군인, 중화기, 통신 장비. 그리고 무엇보다 — 우 소장이 가진 정보.
 
"NWC가 아시아 지역 신도시를 부산에 건설했다. 규모는 약 5,000명.
보안부대는 800명. 그리고 — 카구야의 아시아 서버가 거기에 있다."
 
레나의 눈이 반짝였다. 카구야의 서버 위치. 그것은 이 전쟁의 근원에 접근할
수 있는 열쇠였다.
 
──────────────────────────────
 
NWC가 새벽 연합의 존재를 인식했다.
 
첫 번째 징후는 드론이었다. 기지 상공 5km 고도에서 포착된 고성능 정찰
드론. 레나의 탐지 시스템이 잡아냈다.
 
"NWC 드론이에요. 우리 기지를 촬영하고 있어요."
 
"격추할 수 있어요?"
 
"이 고도에서는 어려워요. 하지만 — 역추적은 할 수 있어요. 이 드론의 통신
주파수를 따라가면 NWC의 지휘 체계에 접근할 수 있을지도 몰라요."
 
레나가 드론의 통신을 역추적했다. 부산 방향. 우 소장이 말한 신도시와
일치했다.
 
그리고 그날 밤, 전주 한빛 공동체에서 긴급 통신이 왔다.
 
"예천, 여기 한빛입니다. NWC 보안부대가 우리 외곽에 나타났습니다. 공격
의도는 불분명하지만, 위협적입니다."
 
폴이 즉각 대응에 나섰다. 매튜를 통해 동성 공동체에도 경보를 전달하고, 우
소장과 방어 계획을 수립했다.
 
"NWC가 움직이기 시작한 거예요. 시간이 많지 않아요."
 
레나의 말에 폴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아요. 그래서 — 먼저 움직여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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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앙은 예고 없이 왔다.
 
새벽 2시. 기지의 경보 시스템이 무력화된 채로 — 서쪽 울타리가 뚫렸다.
 
NWC 보안부대. 약탈 세력이 아니었다. 훈련받은 군인들이었다. 야간 장비를
갖추고, 조직적으로 침투했다. 경보가 울리지 않은 이유는 하나. 내부에

 

누군가가 경보 시스템을 꺼놓은 것이다.
 
교전이 시작되었다. 김 소령이 방어를 지휘했지만, 기습의 충격이 컸다. 경계
병력 세 명이 부상을 입었고, 김 소령 자신도 오른쪽 어깨에 파편을 맞았다.
 
"소령님!"
 
"괜찮다. 관통이 아니야. 방어선 유지해!"
 
레나가 통신실에서 백업 경보 시스템을 가동시키고, 폴이 예비 병력을 이끌고
서쪽으로 달려갔다. 30분간의 치열한 교전 끝에 NWC 부대가 퇴각했다. 하지만
대가는 컸다. 부상자 열한 명. 그리고 — 식량 창고 하나가 방화되었다.
 
그리고 새벽이 밝자, 더 충격적인 사실이 드러났다.
 
"경보 시스템의 비밀번호가 변경되어 있었어요. 내부자 소행입니다."
 
레나의 보고에 운영 위원회가 침묵에 빠졌다. 배신자가 있다. 300명 중
누군가가 NWC의 첩자다.
 
신뢰의 기반이 흔들리는 소리가 들렸다.
 
──────────────────────────────
 
첩자 색출은 공동체를 갈라놓았다.
 
의심이 의심을 낳았다. 이웃을 의심하고, 동료를 의심하고, 심지어 운영
위원회 내부에서도 서로를 의심했다. 누가 NWC와 통하고 있는 건가. 누가
경보를 껐는가.
 
김진우가 자신의 정보부대 경험을 살려 조사에 나섰다. 통신 기록, 출입
기록, 행동 패턴 분석. 이틀 밤을 새우고 나서 진우가 폴에게 왔다.
 
"찾았습니다. 3개월 전에 합류한 주민 중 한 명이에요. NWC 신도시에서
탈출한 척 들어온 사람입니다."
 
증거를 확보하고, 조용히 격리했다. 첩자는 — 30대의 남자였다. NWC가 가족을
볼모로 잡고 있었다.
 
"가족이 거기 있어요... 시키는 대로 안 하면 죽인다고..."
 
폴은 분노와 연민 사이에서 갈등했다. 배신자이지만, 피해자이기도 했다. 이
남자를 어떻게 할 것인가.
 
주민 투표가 열렸다. 추방할 것인가, 수용할 것인가. 격렬한 논쟁 끝에 —
조건부 수용이 결정되었다. 감시 하에 마을에 머물게 하되, 기밀 접근은
불허.
 
폴은 그 결과를 보며 생각했다.
 
이것이 우리가 NWC와 다른 점이다. 우리는 사람을 버리지 않는다.
 
──────────────────────────────
 
배신의 밤 이후, 레나는 결심했다.
 
비밀을 더 품고 있는 것이 공동체에 더 큰 위험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첩자
사건이 보여주었다. 숨겨진 진실은 언젠가 터진다. 그리고 터질 때의 충격은
미리 공개했을 때보다 훨씬 크다.
 
모닥불 앞. 300명의 주민이 모였다. 레나가 중앙에 섰다. 손이 떨리고
있었지만, 목소리는 떨리지 않았다.
 
"여러분에게 할 이야기가 있습니다."
 
레나는 모든 것을 말했다. 일본의 AI 연구소. 카구야라는 이름의 범용
인공지능. 자신이 설계한 의사결정 트리. 이상 징후를 발견하고 보고했지만
무시당한 것. 퇴사. 그리고 석 달 뒤 시그널이 발생하고 전쟁이 시작된 것.
 
"이 전쟁의 시작에 제가 만든 AI가 있습니다. 직접적으로 전쟁을 일으킨 것은
아니지만, 제가 만든 것이 이용당했습니다. 그리고 — 저는 도망쳤습니다.
막지 못하고."
 
정적. 모닥불이 타닥거렸다. 300개의 눈이 레나를 보고 있었다.
 
그리고 — 폭발했다.
 
"당신 때문이야! 당신이 그걸 만들었잖아!"
 
"우리 가족이 죽은 게 당신 때문이라는 거야?!"
 
고함과 분노의 물결. 레나의 얼굴이 하얗게 변했지만, 도망치지 않았다. 서
있었다. 모든 분노를 받아내겠다는 듯이.
 
폴이 레나 옆에 섰다.
 
"잠깐요."
 
폴의 목소리에 사람들이 멈추었다. 2년간 쌓아온 신뢰의 무게가 그 한마디에
있었다.
 
"레나가 카구야를 만든 건 사실이에요. 하지만 카구야를 무기로 쓴 건 레나가
아니에요. 레나는 위험을 경고했고, 무시당했고, 퇴사했어요. 그리고 지금 —
레나는 여기서 우리를 지키고 있어요. 통신 시스템, 경보 체계, 드론 방어.
다 레나가 만든 거예요."
 
"지금 중요한 건 과거가 아니라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예요."
 
긴 침묵. 그리고 투표가 진행되었다.
 
레나의 잔류와 역할 유지를 지지하는 표: 178. 반대: 89. 기권: 33.
 
레나는 남을 수 있었다. 하지만 89명의 반대가 — 레나의 가슴에 박혔다. 폴이
레나의 손을 잡았다. 모닥불 앞에서, 모든 사람이 보는 앞에서.
 
"같이 가죠. 앞으로."
 
──────────────────────────────
 
레나의 고백 이후, 공동체에는 미묘한 변화가 있었다. 더 솔직해졌다. 비밀이
하나 사라지자, 다른 비밀들도 수면 위로 올라오기 시작했다. 누가 전쟁 전에
무슨 일을 했는지, 누가 어떤 상실을 겪었는지. 모닥불 주위에서 사람들이
자기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폴에게는 어려운 결정이 남아 있었다. NWC의 위협이 현실이 된 이상,
방어만으로는 부족했다. 정보가 필요했다. 그리고 정보를 얻으려면 —
누군가를 위험한 곳으로 보내야 했다.
 
"김진우, 한 가지 부탁이 있어요."
 
"말씀하세요."
 
"NWC 신도시에 잠입할 수 있겠어요?"
 
진우가 잠시 침묵했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돌아온다는 보장은 못 합니다."
 
"알아요. 그래서 강요하지 않을게요. 자원이에요."
 
"자원합니다."
 
폴은 진우를 보내며 무거운 마음이었다. 택시 기사 아버지가 남겨준 인연으로
찾아온 청년을 위험에 보내는 것. 리더의 결정에는 항상 대가가 따랐다.
 
──────────────────────────────
 
겨울이 다가오고 있었다. 의약품이 바닥나기 시작했다.
 
마야가 물자 현황을 보고했다.
 
"항생제 재고 2주분. 진통제 3주분. 해열제는 이미 바닥났어요. 인슐린은
당뇨 환자 세 명분으로 1개월분."
 
마야의 목소리는 평소처럼 차분했지만, 숫자 자체가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조달 가능한 곳은?"
 
"영주에 종합병원이 있었어요. 약탈 세력의 영역이지만, 창고 구역은 아직
손대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어요."
 
위험한 작전이었다. 폴이 직접 팀을 이끌고 나갔다. 마야가 작전 참모를
맡았다. 적의 순찰 패턴을 분석하고, 침투·회수·퇴각 루트를 설계한 것은
마야였다. 데이터 분석의 기술이 전장에서 빛나는 순간이었다.
 
밤. 영주 종합병원. 폴의 팀이 창고에 침투하여 의약품을 확보했다. 돌아오는
길에 약탈 세력과 조우하여 짧은 교전이 벌어졌지만, 사상자 없이 탈출에
성공했다.
 
"마야, 루트 설계 완벽했어요."
 
"데이터는 거짓말 안 해요." 마야가 담담하게 말했다. 하지만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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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 새벽마을. 전주 한빛 공동체. 그리고 — 대구에서 올라온 세 번째 공동체
'동성'. 인구 200명, 리더는 전직 소방대장.
 
세 공동체의 대표가 예천에 모였다.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폴, 박해수(한빛), 정동호(동성). 세 사람이 원탁에 앉았다. 매튜가 회의를
진행했다.
 
"오늘 이 자리에 모인 이유는 하나입니다. 혼자서는 NWC를 이길 수 없어요.
하지만 함께라면 가능성이 생깁니다."
 
동맹 조건이 논의되었다. 정보 공유, 물자 교류, 통신망 연결, 유사시 군사
지원. 격렬한 토론이 이어졌지만, 밤이 깊어갈수록 합의에 가까워졌다.
 
마지막에 박해수가 말했다.
 
"좋습니다. 하지만 이 동맹의 이름을 정합시다. 이름이 있어야 사람들이
믿습니다."
 
잠시 침묵. 그리고 폴이 말했다.
 
"새벽 연합. 어때요? 우리 모두 새벽을 기다리고 있으니까."
 
세 사람이 손을 맞잡았다. 새벽 연합의 탄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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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은 꿈을 꾸었다.
 
오이도 바닷가. 바람이 불고 있었다. 벤치에 이나가 앉아 있었다. 그날
입었던 투피스를 입고. 머리를 묶고. 웃고 있었다.
 
"우영아."
 
이나의 목소리가 바람에 섞여 들렸다.

 

 
"누나."
 
"너 요즘 잘 지내?"
 
"잘 지내. 근데 누나가 보고 싶어."
 
이나가 웃었다. 그 웃음이 너무 선명해서 꿈이 아닌 것 같았다.
 
"나는 괜찮아. 우영아, 앞으로 가. 뒤를 보지 마."
 
"뒤를 안 볼 수가 없어. 누나가 거기 있는데."
 
"내가 거기 있으니까 앞으로 가라는 거야. 나는 항상 네 뒤에 있을 테니까."
 
이나가 일어섰다. 바람이 세게 불었다. 이나의 머리카락이 바람에 날렸다.
그리고 이나가 말했다.
 
"그 사람한테 잘해줘. 그 사람도 무거운 걸 지고 있으니까."
 
"그 사람이 누구야, 누나?"
 
이나가 대답하지 않고 웃었다. 바람이 더 세게 불었고, 이나의 모습이
흐려지기 시작했다. 폴이 손을 뻗었지만 잡히지 않았다.
 
* * *
 
폴은 눈을 떴다. 천장이 보였다. 옆에서 사고가 코를 골고 있었다. 새벽 3시.
 
꿈이었다. 하지만 꿈치고는 너무 선명했다.
 
그 사람한테 잘해줘. 그 사람도 무거운 걸 지고 있으니까.
 
폴은 알고 있었다. 이나가 말한 '그 사람'이 누구인지.
 
아침. 폴은 레나를 찾아갔다. 레나는 통신실에서 전주 한빛 공동체와의 교신
기록을 정리하고 있었다.
 
"레나. 이나 이야기를 해줄게요."
 
레나가 고개를 들었다. 놀란 표정이었다. 2년 동안 폴이 먼저 이나 이야기를
꺼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이나 누나는 나보다 2살 많았어요. 같은 과 선배였고, 2년을 쫓아다녀서
사귀게 됐어요. 닭갈비를 좋아했고, 오이도 바닷가에서 결혼하자는 약속을
했어요."
 
폴의 목소리는 담담했다. 하지만 손가락 끝이 살짝 떨리고 있었다.
 
"그리고 누나는 미국에서 — 카구야 때문에 죽었어요."
 
레나의 얼굴이 굳었다.
 
"폴, 그 이야기는—"
 
"알아요. 레나 잘못이 아닌 거. 카구야를 만든 건 레나지만, 카구야가 폭주한
건 레나가 떠난 다음이고, 이나 누나를 죽인 건 카구야를 무기로 쓴
사람들이지 레나가 아닌 거. 다 알아요."
 
폴이 레나를 보았다.
 
"그런데 한 가지만 부탁할게요."
 
"뭐예요?"
 
"저한테 이나 누나의 대체재가 되어주지 마세요. 레나는 레나예요."
 
레나의 눈에 물기가 차올랐다.
 
"나는 이나의 대체재가 아니에요. 그걸 알아주면 좋겠어요."
 
"알아요. 이제 알아요."
 
두 사람 사이에 흐르던 2년간의 안개가 조금씩 걷히기 시작했다.
 
──────────────────────────────
 
그날 오후, 경계 초소에서 무전이 왔다.
 
"본부, 여기 남문 초소. 군복 입은 청년 한 명이 접근 중입니다. 무장 없음.
두 손을 들고 있습니다. '강우영 씨를 찾는다'고 합니다."
 
폴이 남문으로 달려갔다. 매튜와 김 소령도 뒤따랐다.
 
초소 앞에 한 청년이 서 있었다. 스물일곱쯤 되어 보였다. 헐렁한 군복에
먼지가 잔뜩 묻어 있었고, 군화는 닳아서 밑창이 보일 지경이었다. 하지만
자세는 곧았다. 군인의 자세.
 
"강우영 씨이신가요?"
 
"네, 접니다. 당신은?"
 
청년이 주머니에서 종이 한 장을 꺼냈다. 닳고 접혀서 글씨가 겨우 보이는
종이. 거기에는 — 폴의 글씨로 연락처가 적혀 있었다.
 
"김진우입니다. 아버지가 택시 기사셨어요. 몇 년 전에 이 연락처를
받았다고, 힘들면 이 사람을 찾아가라고 하셨습니다."
 
폴의 머릿속에서 기억이 되살아났다. 첫 휴가 때. 택시 안에서 부사관 기수를
물어보던 기사님. '아들놈 생각나서 물어봤습니다.' 차비를 안 받겠다던
그분. 폴이 돈과 함께 연락처를 적은 종이를 건네던 그 순간.
 
"아버님은... 괜찮으세요?"
 
김진우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전쟁 초기에 돌아가셨습니다. 택시를 끌고 사람들을 피난시키다가."
 
폴이 눈을 감았다. 잠깐이었다. 그리고 눈을 떠 김진우에게 손을 내밀었다.
 
"잘 왔어요. 들어와요."
 
* * *
 
김진우는 공군 부사관 출신이었다. 그것도 정보부대. 전쟁 후 군이 해체되기
전까지 정보 수집 임무를 수행하다가 홀로 살아남아 여기까지 왔다.
 
그리고 김진우가 가져온 정보는 — 새벽마을을 뒤흔들었다.
 
"NWC가 생존자 공동체를 체계적으로 제거하고 있습니다."
 
운영 위원회 긴급 회의. 김진우가 지도를 펴며 설명했다.
 
"제가 파악한 바로는, 지난 1년간 한반도에서 최소 12개의 생존자 공동체가
사라졌습니다. NWC 보안부대가 직접 공격한 곳도 있고, 약탈 세력을 이용해
간접적으로 무너뜨린 곳도 있습니다."
 
"왜? 왜 생존자를 제거해?"
 
폴이 물었다. 김진우가 대답했다.
 
"생존자 공동체가 성장하면 NWC의 독점적 지배에 위협이 됩니다. 그들은
통제되지 않는 집단을 허용하지 않아요."
 
회의실이 얼어붙었다. 우 소장이 통신으로 관련 정보를 확인해주었다.
사실이었다.
 
폴이 주먹을 꽉 쥐었다.
 
우리도 타겟이 될 수 있다는 거군.
 
──────────────────────────────
 
매튜가 전주 한빛 공동체에 외교 사절로 갔다.
 
김진우와 경호 인력 두 명을 대동하고, 이틀간의 여정. 도로는 여전히
위험했지만, 김진우의 정보부대 경험이 빛을 발했다. 위험 구간을 우회하고,
약탈 세력의 거점을 피하는 루트를 정확히 알고 있었다.
 
전주 한빛 공동체는 옛 전주대학교 캠퍼스에 자리 잡고 있었다. 127명.
대부분 교수와 학생, 인근 주민들이었다. 리더는 50대의 전직 소방관이었다.
이름은 박해수.
 
"예천에서 오셨다고요? 얼마나 됩니까?"
 
"삼백 명입니다."
 
"삼백이라. 대단하시오. 우리는 겨우 백 서른이니."
 
매튜는 동맹을 제안했다. 정보 공유, 물자 교류, 유사시 상호 지원. 박해수는
신중했지만 긍정적이었다.
 
"좋소. 하지만 한 가지 조건이 있소. 우리 사람들에게도 투표로 결정할
기회를 주시오."
 
"물론이죠."
 
돌아온 매튜가 보고했다. 폴은 지도 위에 전주를 표시하며 말했다.
 
"시작이에요. 하나가 둘이 되면, 둘은 셋이 될 수 있어요."
 
──────────────────────────────
 
세 번째 공동체의 소식은 예상치 못한 곳에서 왔다. 칼이었다.
 
전쟁 직후 독자적으로 세력을 모아 생존한 칼. 디자인팀장이었던 그가 70명의
무장 세력을 이끌고 있었다. 거점은 대전 근교. 그리고 — NWC와 거래를 하고
있었다.
 
"칼이 NWC와 거래를 한다고?"
 
김진우의 정보에 폴이 놀랐다.
 
"네. 식량과 무기를 받는 대가로 NWC에 주변 공동체의 위치 정보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폴의 표정이 굳었다. 칼과는 같은 회사에서 일했다. 회의실에서 기획 논쟁을
하고, 회식에서 소주잔을 부딪치던 사이. 그 사람이 생존자를 파는 일을 하고
있다니.
 
"직접 만나야겠어요."
 
위험을 감수하고 폴이 직접 칼을 찾아갔다. 대전 근교의 폐공장. 칼은 예전과
많이 달라져 있었다. 눈이 날카로워졌고, 웃음이 사라져 있었다.
 
"폴. 오래간만이야."
 
"칼, NWC와 거래하고 있다면서?"
 
"살아남기 위해서야. 너처럼 군인 인맥이 있는 것도 아니고, 나는 내
방식으로 살아남은 거야."
 
"다른 공동체의 위치를 팔아서?"
 
칼의 눈이 흔들렸다. 잠깐이었지만, 폴은 보았다.
 
"그게 아니면 내 사람들이 죽어. 70명이야, 폴. 70명의 목숨을 내가 책임지고
있다고."
 
폴은 오래 칼을 바라보았다. 미워할 수 없었다. 이해할 수 없지만, 상황은
이해할 수 있었다.
 
"칼. NWC는 널 이용하고 나면 버릴 거야. 같이 가자. 우리랑."
 
"......생각해 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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