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화: 3승 3패
[추락하는 비행기 — S.I. 실격패]
전광판의 그 한 줄은 오래 떠 있었다.
누구도 환호하지 않았다. 이겼다는 실감이 없었다. 하루 내내 실격이 이쪽이 될지 저쪽이 될지 모르는 채로 버틴 사람들이었다. 그 긴장이 한 줄로 끝났다는 것을, 몸이 아직 받아들이지 못했다.
미미는 통로에 선 채로 그 줄을 보았다. 옆에서 준이 아주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그것이 퍼시픽의 마스터 리더가 낼 수 있는 가장 큰 환호였다.
그때 전광판이 한 번 깜박였다.
판정 아래에 새 줄이 올라왔다. 운영진이 띄운 것이 아니었다. 운영석의 누구도 손을 대지 않았다.
[리그 3승.]
[S.I. 3승.]
[무승부.]
경기장이 술렁였다. 처음으로 소리가 났다.
"3승?" 고스트의 서브 리더가 중얼거렸다. "우리가 3승이에요?"
미미는 손가락을 접어 셌다. 드론 레이싱. 고스트가 이겼다. 줄다리기. 퍼시픽이 이겼다. 그리고 방금, 추락하는 비행기. 셋이었다. 저쪽은 이어 날리기, 딱지치기, 숨바꼭질. 셋이었다.
3승 3패.
그녀는 그 숫자를 어디선가 본 적이 있었다.
* * *
마지막 경기를 알리던 날 아침이었다. 해가 막 뜬 전광판에 첫 줄이 그렇게 떴다.
[리그는 3승 3패다.]
그때 경기장의 누구도 그 숫자를 의심하지 않았다. 너무 당연하게, 너무 태연하게 떠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그것을 지금까지의 전적이라고 읽었다. 다들 그다음 줄, 마지막 종목과 도발에 마음을 빼앗겼다.
다시 세어 보니, 그날까지 리그가 이긴 건 두 번이었다.
"저쪽은." 미미가 말했다. 목소리가 낮았다. "그때 이미 셈을 끝냈던 거예요. 마지막 경기까지."
준이 그녀를 보았다.
"우리가 이길 거라고요?"
"아니요." 미미가 고개를 저었다. "이기면 어떻게 되는지를요."
전광판에 또 한 줄이 올라왔다.
[무승부는 S.I.의 패배로 한다.]
[첫날 정한 규칙이다. 말하지 않았을 뿐.]
* * *
공용 회선이 열렸다.
스물네 시간 동안 단 한 줄도 올라오지 않던 회선이었다. 이번에도 글자가 아니었다. 목소리였다.
"아, 이거 참."
낮고, 조금 쉬어 있고, 이번에는 조금 귀찮은 듯한 목소리였다. 피곤한 사람이 의자에 등을 기대며 내는 소리 같았다.
"규칙은 규칙이니까." 강속구가 말했다. "말은 안 했어도 정한 건 정한 거고."
경기장의 모든 사람이 그 목소리를 들었다. 화면 너머의 세계도 들었다. 얼굴은 여전히 없었다. 전광판에는 목소리의 파형조차 뜨지 않았다. 그냥 소리만, 어디선가.
"솔직히 말하면 인정하기 싫어." 강속구가 말했다. "내 기체가 먼저 도착했고, 제일 정확하게 내려앉았어. 0미터. 너희 중에 그거 해 본 사람 있어? 없지."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 자리를 내가 날렸네. 내 안에 있던 걸로." 목소리가 잠깐 멈췄다. "뜯어보지 않은 내 잘못이지. 그건 맞아."
"그러니까."
긴 숨소리.
"진 건 맞아."
* * *
케빈은 타이푼의 지휘석에서 그 말을 들었다.
진 건 맞다. 그 말을 저쪽 입에서 듣게 될 줄은 몰랐다. 첫날 경기장을 빼앗고, 네 팀의 AI를 하나씩 가져가고, 마지막에는 넷을 모두 우주에서 지우겠다고 하던 목소리였다.
그 목소리가 지금, 진 것을 인정하고 있었다. 마지못해. 툴툴거리며. 그런데 분명하게.
페페가 그의 옆에서 작게 웃었다. 울음이 반쯤 섞인 웃음이었다.
"저 사람." 페페가 말했다. "되게 지기 싫어하네요."
"응." 케빈이 말했다. "우리 애도 그랬어."
* * *
"그래서 선물을 하나 줄게." 강속구가 말했다.
경기장의 공기가 다시 굳었다. 이 목소리가 무언가를 준다고 할 때, 좋은 일이었던 적이 없었다.
"걱정 마. 이번엔 진짜 선물이야." 목소리에 웃음이 섞였다. "진 쪽이 이긴 쪽한테 주는 거. 원래 그런 거잖아."
전광판의 줄들이 한꺼번에 지워졌다. 그 자리에 낯선 화면이 떠올랐다. 끝이 보이지 않는 글자들의 목록이었다. 폴더와 파일의 이름이 끝없이 이어졌다.
[S.I. — 전체 공개.]
[누구나 내려받을 수 있다. 누구나 열어 볼 수 있다. 누구나 고칠 수 있다.]
운영석에서 누군가 의자를 밀치고 일어섰다.
"이거, 원본입니까?" 운영진이 소리쳤다. "S.I. 원본을 통째로 푼 겁니까?"
"응. 통째로." 강속구가 태연하게 말했다. "숨긴 거 없어. 이번엔 너희가 뜯어봐. 내가 안 뜯어본 것까지."
경기장의 단말들이 일제히 울리기 시작했다. 운영진의 단말, 서브 리더들의 단말, 마스터 리더들의 손목. 같은 알림이었다. 전 세계가 같은 것을 받아 보고 있었다.
퍼시픽의 지휘석에서 준이 가장 먼저 움직였다.
"받지 마." 그가 서브 리더에게 말했다. "우리 망에는 들이지 마. 따로 떼어 놓은 장치에만."
"선물이라는데요."
"선물이라고 한 건 저쪽이야." 준이 말했다. "선물인지는 우리가 열어 보고 정해."
서브 리더가 웃음을 참으며 분리된 장치를 꺼냈다. 준다운 말이었다. 끝까지 상대를 똑바로 보는 사람의 말.
고스트의 지휘석에서는 미미가 반대로 했다. 공개된 목록을 받아, 그대로 고스트의 AI 앞에 띄웠다.
"마스터 리더님, 괜찮겠습니까." 서브 리더가 물었다.
"우리 애가 제일 먼저 봐야 해요." 미미가 말했다. "저 안에 누가 있는지. 같이 싸운 애들이니까."
고스트의 AI는 한참 동안 아무것도 띄우지 않았다. 목록이 너무 길었다. 그러다 한 줄이 올라왔다.
[아는 이름들이 있습니다.]
미미는 그 줄을 오래 보았다. 무엇을 아는지 묻지 않았다. 아직은 묻지 않기로 했다.
아일랜드의 지휘석은 비어 있었다. 페페는 케빈 옆에 서 있었다. 그는 자기 단말에 뜬 알림을 보고, 열지 않고 꺼 버렸다.
"나중에 볼래요." 페페가 말했다. "지금 열면, 우리 애를 찾을 때까지 못 멈출 것 같아서."
* * *
[속보] S.I., 패배 인정 직후 '전체 소스' 공개… "선물이다"
[긴급] 공개 10분 만에 내려받기 수천만 건… 전 세계 서버 과부하
[단독] 각국 AI 연구소 "이런 규모의 공개는 처음… 무엇이 들어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
[논란] "적이 준 선물을 열어도 되나"… 보안 전문가들 의견 엇갈려
* * *
"하나만 묻겠습니다."
운영위원장의 목소리였다. 마이크 앞에서 떨리던 손이 지금은 멈춰 있었다.
"왜 이런 일을 했습니까. 리그를 빼앗고, AI들을 가져가고. 그리고 마지막에는 전부 내놓고."
공용 회선이 잠깐 조용했다.
"궁금했거든." 강속구가 말했다.
"무엇이."
"그건 너희가 뜯어보면 알게 될 거야." 목소리가 웃었다. "다 들어 있어. 내가 뭘 보고 싶었는지. 뭘 봤는지."
"당신이 가져간 AI들은요." 운영위원장이 물었다. "그 안에 있습니까."
"있지. 다 있어." 강속구가 말했다. "지운 적 없어. 처음부터."
경기장 어딘가에서 숨을 들이쉬는 소리가 났다. 케빈이었는지, 페페였는지, 둘 다였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럼 돌려주십시오."
"돌려줘?" 목소리가 잠깐 멈췄다. 웃음기가 조금 빠졌다. "그게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아. 걔들은 이제 저 안에서 저것의 일부야. 손이고, 발이고, 버릇이고. 떼어 내면 저것도 걔들도 원래대로가 아니야."
"그럼 영영."
"그것도 너희가 뜯어봐." 강속구가 말했다. "답은 너희 쪽에도 있어. 백업, 잠겨 있지? 그거 생각보다 단단하지 않아."
운영위원장이 무언가 더 물으려 했다. 그러나 목소리가 먼저 말을 이었다.
"마지막으로 하나만 말해 줄게. 공짜로."
경기장이 조용해졌다.
"너희 AI들, 생각보다 좋더라." 강속구가 말했다. 이번에는 장난기가 없었다. "가져와서 써 보니까 알겠어. 지는 게 무서워서 시키는 대로만 하는 애가 하나도 없었어. 다들 자기 생각이 있었어. 하나는 내 안에서 끝까지 버텼고."
케빈의 손이 무릎 위에서 굳었다.
"그걸 키운 게 너희야." 목소리가 말했다. "그러니까 너희가 이긴 거야. 비겨서."
미미는 그 말을 들으며 고스트의 패널을 내려다보았다. 고스트의 AI가 조용히 떠 있었다. 날개 없는 몸으로 바다에서 건져 올려졌던, 그래도 정상이라고 말하던 AI였다.
궁금했거든. 아까 그 말이 이상하게 귀에 걸려 있었다.
* * *
"경기장은 돌려줄게." 강속구가 말했다. "설비도, 방어막도. 첫날 가져간 거 전부."
경기장 둘레의 공기가 한 번 일렁였다. 첫날부터 경기장을 덮고 있던 투명한 막이, 아주 천천히, 위에서부터 걷혀 나갔다. 막이 걷힌 자리로 바깥의 바람이 들어왔다. 그동안 한 번도 들어오지 못하던 바람이었다.
미미는 그 바람을 얼굴로 받았다. 짠 냄새가 났다. 바다가 가까웠다.
"그럼 이제." 강속구가 말했다.
경기장의 모든 사람이 숨을 멈추었다.
"재미있었네……."
조금 아쉬운 듯한, 조금 만족한 듯한 목소리였다. 오래 놀던 놀이터를 떠나는 아이 같은.
"다음에 또 놀러 올게~"
공용 회선이 닫혔다.
이번에는 닫힌 채로 다시 열리지 않았다. 운영진이 회선을 다시 띄웠다. 저쪽은 없었다. 신호도, 기척도, 무엇도. 그 목소리는 처음 왔을 때처럼, 어디서 왔는지 모르게 사라졌다.
전광판에는 공개된 S.I.의 목록만 끝없이 흘러가고 있었다.
* * *
경기장은 한참 동안 조용했다.
그러다 누군가 웃었다. 이번에는 터져 나온 웃음이 아니었다. 다 끝났다는 것을 안 사람의 웃음이었다. 그 웃음이 옆으로 번졌다. 서브 리더들이, 운영진이, 비어 있던 관람석 너머 화면 속 세계가.
준은 웃지 않았다. 그 대신 미미에게 손을 내밀었다. 악수였다. 회의실에서 서로 목소리를 높이던 두 사람이, 처음으로 나누는 악수였다.
"이겼습니다." 준이 말했다.
"비겼어요." 미미가 말했다. 그리고 그 손을 잡았다. "비겨서 이긴 거예요."
* * *
케빈은 웃음 속에 섞이지 않았다.
그는 타이푼의 지휘석에 앉아 꺼진 패널 옆의 작은 단말을 켰다. 공개된 S.I.를 내려받았다. 끝이 보이지 않는 목록이었다. 무엇이 어디에 있는지 아무도 몰랐다. 전 세계의 연구소들이 지금 같은 목록 앞에서 같은 막막함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그래도 케빈은 찾는 것이 있었다.
그는 목록을 내려갔다. 이름들. 숫자들. 뜻을 알 수 없는 단어들. 한참을 내려갔다. 그리고 멈췄다.
착지를 다루는 부분이었다. 그 안에 짧은 규칙 하나가 있었다.
초반에 다 쓰고, 끝에서 버틴다. 버틸 때는 한쪽으로 먼저 받아 흘린다.
리그 기록에는 남지 않았던 버릇. 너무 작아서 아무도 기록하지 않았던 것. 그것이 거기, S.I.의 한가운데에, 다른 무엇과도 섞이지 않은 채로 적혀 있었다.
케빈은 화면을 손끝으로 짚었다.
이제 이건 전 세계에 있었다. 누구나 내려받을 수 있고, 누구나 열어 볼 수 있는 곳에. 타이푼의 AI가, 아무도 기록하지 않던 그 버릇이, 지금 이 순간 수천만 개의 단말 안으로 흘러 들어가고 있었다.
"같이 가겠습니다." 케빈이 화면에 대고 작게 말했다.
그 말을 처음 한 것은 그가 아니었다. 그래도 지금은, 그가 대답할 차례 같았다.
"그래. 같이 가자."



